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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Dec 15. 2022

폭설이 만들어준 뜻밖의 선행

선행은 역시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



 이른 아침, 저는 잠시 고민을 합니다. 오늘 눈이 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고 차를 두고 출근을 할지에 대해서였습니다. 아이들이 제 고민을 해결해주기 위해 바쁜 와중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예상 적설량이 2cm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말도 하나 남깁니다.

"아빠, 친구들이 그러는데 일기예보는 필리핀 예보가 훨씬 정확하대요."


 왜 아이의 저는 마지막 말을 흘려들었을까요? '눈이 오면 얼마나 오겠어?'라고 생각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릅니다.




 정오가 지나면서부터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굵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의 일기예보를 철석같이 믿고 있던 저는 개의치 않고 점심시간의 망중한을 즐겼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눈발은 전혀 잦아들 생각 없이 점점 쌓이기 시작합니다.


맞습니다. 또 당했습니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계속 당하면 그건 당하는 사람의 잘못입니다.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나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의 공통점은

집안에서 커피 마시면서 바라볼 때만 감수성을 충만하게 해 준다는 점입니다.

백설기처럼 쌓여있는 건물 옥상의 눈




 사무실에서 바라보는 폭설은 제 눈을 즐겁게 하며 겨울 감성을 충전시켜 주기보다는 퇴근길 걱정을 절로 하게 만듭니다. 3층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광경은 얼핏 보면 아름다운 색 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제 곧 퇴근 무렵에는 쌓여있던 보드라운 눈들이 사각사각 얼음처럼 굳어버릴 테니까요.

하얀 설빔을 입은 주차장의 자동차들




 한두 시간만 지나면 아마도 자동차의 앞 유리의 눈을 치우기 어려워질 테죠. 그런 상황이 되면 즐거운 퇴근길이 시작부터 엉망이 될 것이기에 부랴부랴 급한 일을 쳐내고 주차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제 차의 눈부터 치우기 시작했죠.

점점 겨울왕국처럼 얼어가고 있는 자동차들




 다행히도 제게는 장모님께서 하사하신 만능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바로 '차량 제설 브러시'입니다. 평시에는 트렁크에 넣고 다니면 그야말로 짐덩어리지만 폭설이 왔을 때 특히 차에 눈이 쌓여있을 때는 크게 힘이 되는 녀석이죠.


출처 : http://www.10x10.co.kr/shopping/category_prd.asp?itemid=4746592



 이 브러시로 제 차의 눈들을 치우고 후다닥 들어가려는데 이른 퇴근을 하시려는 분들이 하나둘씩 나오시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이미 얼어서 딱딱해져 버린 눈을 보며 멘붕에 빠져버립니다. 슬그머니 들어가려던 저는 다시 나와서 종이박스를 뜯어서 눈을 힘들게 치우고 계신 직원분들을 도와드렸습니다.


 정말 별 것 아닌 도움이지만 다른 분께는 도움이 된 듯해서 기분이 좋네요. 제대로 얼어있는 눈들을 치우지 않고 퇴근길을 재촉했다면 안전상의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아이들에게도 제 오늘의 선행에 대해 칭찬받을 수 있게 들어가서 자랑을 해야겠습니다.


한 줄 요약 : 남을 도울 기회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 기회가 아닌 단지 마음이 없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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