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배틀은 저녁에 아이들이 방에서 일기를 쓸 때 제가 아이들의 사이로 들어가 같이 쓰게 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일기 쓰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그 시간을 줄여보고자 제가 옆에서 앉아 함께 쓰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좀 더 집중을 해서 빨리 마무리할 수 있게 돕기 위한 목적이 컸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보니 아이들과 '일기를 누가 빨리 쓰느냐'의 시합을 하자고 내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특별히 뭘 걸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은 일기가 시합처럼 되어버리니 갑자기 열심히 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이 속도를 올린다 해도 매일 일기를 쓴 지 4년이 조금 넘은 아이들과 22년이 넘은 저의 글씨 쓰는 속도나 노하우가 아무래도 같을 수는 없겠죠. 금방 속도와 분량의 차이가 나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해 저도 나름 자존심을 걸고 열심히 쓰기 때문입니다.
뜻하지 않게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속도를 올리기보다는 저를 방해하기 위한 공작을 하기 시작한 거죠. 저도 아이들의 사기진작과 재미를 위해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습니다. "아빠가 속도가 빠르니 일기를 세줄씩 쓰고 운동을 한 세트씩 하고 하겠다."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제안을 합니다.
제가 일기를 세 줄 쓰면 멈추고서 운동을 옆에서 한 세트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일기를 쓰는 거죠. 저의 희한한 제안에 아이들은 한술 더 떠서 제가 일기 쓰는 것을 막기 위해 일기장도 몰래 숨겨놓고 펜도 숨겨놓으며 되려 일기 쓰는 시간이 노는 시간처럼 느껴지는 약간의 부작용도 있기는 합니다. 며칠 함께 일기를 쓰는 동안 웃고 떠들면서 그런 실랑이를 하다 보니 그냥 조용히 쓰는 것보다 오래 걸리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죠.
그래도 점점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할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 나름대로 유대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참 좋습니다. 아이들이 저와 함께 일기를 쓰면서 분량이나 글씨모양, 띄어쓰기에 대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 좀 더 신경 쓰는 듯하기도 하고요.
호기롭게 시작한 아이들과의 일기 배틀은 결국 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지만 제가 얻는 점이 더 많은 배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