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만 해도 주류시장에서 없어서 못 마시던 술이 있었습니다. 바로 가수 박재범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원소주입니다.누적 판매량이 400만 병을 넘는 등 인기를 구가하며 품귀현상까지 있었지만 이제는 편의점에서 쉽게 눈에 띄고 쉽게 살 수 있습니다.
술이 출시된 초창기, 한창 유행할 때는 '그 소주 혹시 마셔봤냐'는 말이 많았지만 이제는 아예 이름 자체가 잊힌 느낌입니다. 아마 경쟁사들이 비슷한 제품들을 앞다퉈서 출시한 이유도 있을 테지만 유행을 타는 시기가 지나서이기도 할 겁니다.
포켓몬빵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온 나라가 포켓몬빵에 들썩들썩했고 브런치에서조차 포켓몬빵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포켓몬빵은 편의점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때 당ㅇ마켓에서 최고 인기상품이었던 이 빵은 판매목록에서 뜸해진 지 오래입니다.
사실 저는 유행과 관련된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예전에 94년 월드컵 때 저는 중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오리온에서는 '치토스'라는 과자에 월드컵 따조라는 사은품을 함께 넣어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그 따조를 모으는 것이 유행이었고 저도 그 열풍에 동참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치토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따조를 모으기 위해 과자를 산 뒤 따조만 빼고 과자는 버리는 만행까지 서슴지 않았죠. 지금 포켓몬빵을 먹지도 않고 띠부실만 가지고 버리는 행태와 똑같았습니다. 제가 이런 나쁜 짓의 대선배였던 셈이죠.
그 시절의 경험은 제 인생에서 정말 부끄러웠던 기억입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정신을 차려서 이런 행동을 하지도 않고 유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게 되었습니다.지금 되돌아 보면 그 따조라는 물건이 정말 제 취향이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유행에 휩쓸렸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가만히 보면 유독 한국이 유행에 민감한 편입니다. 실제로 유행에 민감한 사람은 자신이 좋아해서 유행을 좇기보다는 다른 사람보다 더 앞서 나가면서 나를 더 세련되고 우월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기대감이 가장 크게 작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유행에 지속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에게 보이는 겉모습을 의식하는 체면 문화의 영향도 큽니다. 이런 세태는 우리 사회를 계속 좀먹고 병들게 하고 있지만 세대가 바뀌어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이 늘 안타깝습니다. 적어도 저는 그리고 아이들은 진짜 멋진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잊지 않고 살려고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도 한 가지 고치고픈 나쁜 취향이 있네요. 가격이 저렴하다고 쉽게 옷들을 사서는 막상 입지 않고 옷장에 넣어두는 습관이네요.반성합니다.
한 줄 요약 :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차, 좋은 옷, 좋은 가방이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증하는 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