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일기가 가끔은 쓰레기통이라고 하신 분도 계셨고 한편으로는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라고 말씀하신 작가님도 계셨습니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제 일기는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한 번 고민을 해보았는데 가장 큰 두 가지의 가치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었고 아이들의 교육에 큰 효과를 얻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세 남자가 모두 일기를 씁니다. 아이들에게 일기 쓰는 습관을 갖추게 한 것은 제 일기 쓰는 습관의 덕이 확실히 컸습니다. 함께 앉아서 쓰니까 아이들이 핑계를 대거나 도망갈 수가 없었죠.
원래 일기 검사가 일선 학교에서는 아동권리침해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초등학교에서는 일기쓰는 활동을 중요하게 관리해 오긴 했습니다. 하지만 고학년이 되면서부터 일기 숙제도 단순한 권장사항이 되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워낙 해야 할 일들이 많으니까요.
결국 되돌아보면 일기라는 습관을 만드는 건 저학년 때뿐이며 계속 이어나가려면 부모의 노력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것이죠.
어릴 때 아이들이 일기 쓰기가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에는 자주 확인을 하면서 챙겨주었지만 5학년 때부터는 따로 내용을 검사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글씨체만큼은 엉망이 되지 않게 가끔 함께 일기를 쓸 때 챙기긴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기를 만족스러워하며 읽어 보라고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말로 전하기 힘들 때 그 내용을 써서 보여준 적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6학년이 되면서 아이들과 상의 끝에 일기에 쓰는 내용을 좀 더 추가시키기로 합의를 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ㅇ 21줄 분량에서 절반까지는 쓰기로
ㅇ 하루 한 줄 명언 책의 글 중에 마음에 드는 문구를 영어, 한글 쓰기
ㅇ 감사한 일 세 가지 쓰기
ㅇ 착한 일 세 가지 쓰기
ㅇ 오늘 읽은 책의 이름과 얼마나 읽었는지 쓰기
이렇게 보면 일기가 아니라 글쓰기 숙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강제로 시키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중요한 부분들에 한해서는 단호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의 합의에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저도 쓰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나가다 보면 아이들의 공부와 삶에 많은 힘이 되지 않을까 믿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