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세우스 Feb 24. 2023

사장님, 여기 광어연어 세트 추가요~!

혹시 필렛을 아시나요?



 어제는 오랜만에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만찬을 가졌습니다. 인사이동을 하고 얼마간 바빴던지라 시간을 조율하기가 쉽지 않았던지라 더 뜻깊은 모임이었죠. 모임을 아무래도 집에서 주관하다 보니 제가 대부분의 세팅을 하게 되었습니다.


회를 따로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족발 배달어플로 주문하고

떡볶이는 직접 가서 사 오고

치킨 가라아게도 에어 프라이어로 조리하기로


결정하니 음식은 사람들을 초대하기에는 크게 부족함 없이 구색이 갖춰진 느낌입니다. 그런데 준비를 하려던 차에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배송이 된 연어, 광어회 세트에 큰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인터넷 쇼핑몰에서 먹음직스럽게 잘린 회 사진을 보고 구매를 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한 스티로폼 박스(재활용..... ㅜㅜ)를 약속시간을 두 시간 남기고 뜯어보니 덩어리 채로 들어있었던 겁니다. 두 팩의 회가 저렇게 배송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저는 멍해졌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판매되는 제품을 필렛이라고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생소한 용어들




 반대로 한 젓가락에 먹기 좋게 한 점씩 잘라져서 보내지는 상품을 슬라이스로 기재한다는 사실도 배울 수 있었죠. 다음에 주문할 때 참고하면 되겠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럴 여유는 없습니다. 제가 덩어리 상태로 된 연어와 광어를 손님들이 곧 방문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씻고 비닐장갑 끼고 도마를 꺼낸 뒤 오랜만에 휴대용 칼갈이로 칼도 갈았습니다. 생선회는 부엌칼이 무디면 잘 썰리지 않으니까요. 광어는 포장지를 뜯어보니 흡습지에 쌓여있었고 조심조심 흡습지를 제거한 뒤 칼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운데 부분을 잘라내서 두 덩이로 나눈 뒤에 비스듬히 어슷썰기를 시도해 봅니다. 어디서 주워듣고 배운 건 많으니까요. 썰어보니 두께는 그럭저럭 균일하게 나오는데 아직은 많이 어설퍼 보입니다. 막회(막 썰어서 넣은 회)처럼 썰어볼까도 싶지만 괜한 호승심이 생깁니다.




한 덩어리의 광어를 한 점씩 모두 썰어 먹기 좋게 한 줄씩 쌓다 보니 어느새 접시를 모두 채습니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던데 담아놓고 보니 가지런히 쌓아놓은 모양에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이런 일조차 잘한다면 회사 때려치우고 횟집으로 가야 될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연어를 뜯은 뒤  칼을 한 번 더 씻고 광어를 썰듯이 정성스럽게 썰어봅니다. 손님 입뿐만 아니라 제 입에도 들어갈 음식이니 더 조심스럽게 더 깨끗하게 잘라야죠.  





 두 덩어리의 광어, 연어 필렛을 진땀을 흘리며 썰고 나니 한 삼십 분 정도 걸린 듯합니다. 비닐백에 싸서 냉장고에 넣고서야 이벤트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 만찬을 가졌습니다. 다행히 손님들께서 맛있게 드시고 제 노고를 알아주셔서 힘들게 준비한 보람은 있었네요. 덕분에 오랜만에 칼질도 했으니 제 실수가 마냥 나쁜 결과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줄 요약 : 실수를 통해서 인간은 새로운 경험을 얻기도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마감에 쫓기다 보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