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를 내려가서 아버지의 농장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의 농장은 산 중턱에 쯤이며 뒷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 근처에 있습니다. 이번에 가보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흉물스러운 구조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바로 산중턱을 양 옆으로 관통하는 어마어마한 너비의 도로였죠. 알고 보니 이 도로는 교통체증을 분산하기 위해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건설하는 대규모 도로였습니다.
휴일이라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저는 아버지와 아이들과 함께 공사현장을 가로질러 구경을 하러 가보기로 했습니다. 놀랍게도 정상적인 등산로는 이미 파괴되어 아직 제대로 된 우회로도 만들어지지 않아 엄청나게 불편하게 돌아서 올라갑니다.
이보다 더 불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까 말씀드렸듯 엄연한 등산로가 있었지만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막상 와보니 어른이 함께하지 않고 아이들끼리는 절대 못 다닐 길이네요. 흙이 움푹움푹 파여서 조심하지 않으면 발이 쑥쑥 들어가는 구간도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계셨기에 사진도 찍었지 어른이 저뿐이었다면 엄두도 못 냈을 겁니다.
탁 트여있는 고가도로를 보니 이 우회도로로 인해 시내 중심가의 오래된 골칫거리였던 교통체증을 해소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다 싶습니다. 사실 그동안 시내는 제가 몇 번 다니지 않았음에도 도로정체가 심한 구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도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산을 깎아내고 나무를 베었는지도 제 눈앞에 적나라하게 들어옵니다. 그동안 문명의 이기가 완성되어 사용하기만 되는 상황에서 편리함만 누려오다가 직접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현장을 직접 보니 눈살이 찌푸리지 않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띈 부분은 주위에 사는 수많은 새들이었습니다. 근처 나무에 있는 딱따구리도 눈에 띄고 까마귀와 까치는 앉을 데가 모자라는지 도로 난간에 날아와 앉아있습니다. 그마저도 앞으로 속도가 빠른 차들이 본격적으로 다니게 된다면 이 근처에는 아마 얼씬도 하지 못하겠죠.
재미있는 사실은 까마귀와 까치, 고라니 같은 동물들이 현재 유해동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삶에 많은 피해를 입히기 동물들이기에 심의를 거쳐 협회에서 지정하는 것이죠. 실제로 야생생물관리협회 홈페이지에 가보면 유해동물에 대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씩 살펴보면 우리에게 친근한 동물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유해동물로 지정되는 건 멧돼지처럼 인명피해 우려가 있기도 하고 농작물 피해를 입히기도 하며 정전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새들은 직접 포획을 하면 마리당 얼마간의 돈을 지불하는 제도까지 있죠. 인간에게 피해를 끼치는 동물들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보이네요.
우리 회사에서는 까치로 인한 정전이 전국적으로 연간 수십 건이 발생합니다. 정전으로 인해 발생되는 사회적 비용은 금전적으로 환산하면 결코 적지 않기에 그 횟수를 줄이기 위해 애를 쓸 수밖에 없습니다.
까치가 전주에 집을 만들면서 나뭇가지나 철제 옷걸이가 전선에 닿아서 생기는 정전도 관리대상입니다. 집을 지을 곳이 마땅찮아서 어쩔 수 없이 전주에 집을 짓는 까치임에도 언젠가부터는 까치집을 보기만 하면 담당자들은 조건반사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죠.
하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숲을 없애고 나무를 베며 동물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파괴했으면서 보금자리와 먹을 것이 없어진 동물들을 점점 더 극한의 상황으로 내모는 행태가 과연 옳은지에 대한 의문은 항상 듭니다. 언젠가는 까치도 유해동물로 마구잡이로 잡다가도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는 웃지 못할 날도 오겠죠?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분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하기가 어렵네요.
저는 자연을 파괴해서 얻는 편리함을 뒤로하고 공생할 수 있는 불편함을 감수하자고 큰 목소리를 용기나 의지가 없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라도 글로 남겨서 확신할 수 있는 올바른 답을 찾지 못한 제 자신의 무지함을 혼내고 되돌아보기 위해 글을 몇 자 써봅니다. 가만 보면 가장 무서운 동물은 역시 인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