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름이 알려진 편인 사립대를 2007년에 졸업했습니다. 출신학교를 밝히지 않고 블라인드 방식으로 채용을 하던 시기에 공기업에 입사했고 입사를 한 뒤에도 출신학교를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굳이 말하고 다닌 적이 없기에 학벌의 덕을 본 적은 전혀없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제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1999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이제 학교가 아닌 학과를 보고 대학을 가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학과가 전자전기컴퓨터 공학부였죠. 제진짜 적성과는 멀었지만 학교보다는 학과 선택을 잘한 것이 취업에는 도움이 된 셈입니다.
그로부터 20년도 더 지난 지금은 어떨까요? 이번에 본가에 내려갔을 때 근처 고등학교에는 명문대 진학을 자랑하는 플래카드가 3개년 치나 걸려있었습니다.
서울대부터 지거국(지방거점국립대)까지 꽤 자랑을 할만해 보였습니다. 이런 홍보는 비단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아마 전국적으로 손쉽게 찾아볼 수 있을 겁니다.
아시다시피 이젠 좋은 대학을 간다고 해서 취업이 보장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대학들의 취업률은 소위 명문대라고 불리는 종합대학들조차도 70%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죠.
세월이 많이 지나고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도 친척이나 지인들이 어느 대학을 다니는지는 기억하지만 무슨 학과인지까지 아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직 껍데기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시류가 바뀌지 않은 거죠.
세부 학과 별로 나눠서 취업률을 살펴보면 껍데기에 대한 열망이 꼭 좋은 결과(취업)를 보장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의치한(의대, 치의대, 한의대)을 비롯해 의료계열을 빼면 취업률이 높은 학과들은 수가 많지 않습니다. 마냥 학교 간판만 보고 진학을 선택한다면 취업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뜻합니다.
아직도 이렇게 대학의 간판에 연연하는 건 왜일까요? 우리나라 특유의 남에게 보이는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도 한몫합니다. 거기에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자신이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겁니다. 그러니 대학 간판이라도 확보하고자 하는 마음이 큰 것이겠죠. 이는 진로지도의 부실함과 사회구조적인 문제도 크다고 봐야 하겠죠.
아마 둥이들이 대학을 가는 시점에도 대학 간판에 연연하는 문화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저는 단언컨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 확언하지 못한다는 점도 참으로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