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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11. 2023

아듀! 전기사랑 기자단!

진짜 안녕~



 제가 만나 뵙는 분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 중에는 이런 내용이 많습니다.

"언제부터 글을 쓰게 되었느냐?"라고 말이죠.


 글을 쓴 것을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글을 쓰시는 어머니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덕도 조금은 있었을 테고 23년 동안 써온 일기가 가장 영향을 많이 끼쳤겠지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의 시작을 말하자면 아무래도 홍보실에서 운영하던 사내기자단 활동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회사 홍보실에서는 대외적인 홍보에 힘을 싣기 위해 2014년부터 전기사랑 기자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사기업처럼 홍보비용을 마음껏 쓸 수 있는 환경이 아니기에 사내(직원)와 사외(대학생) 기자단을 개별적으로 선발하고 회사 홍보활동을 위한 각종 콘텐츠를 제작해서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맡겼죠.




 저는 2015년 기자단 2기에 신청하여 선발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연말에 온라인으로 제 이름을 건 첫 번째 기사라갔습니다. 되돌아보면 아직도 첫 번째 기사는 제게 많은 있습니다.

 홍보실 담당 차장님이 제 첫 원고를 세 번이나 반송을 했던 것이죠.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는데 그 유혹을 이겨내고 네 번째 시도만에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제 첫 기사를 제출하고 난 뒤 바로 이어진 3기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3기부터는 인원이 대폭 었죠. 사내직원 20명, 대학생 50명으로 운영이 됩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1926

이 사진 안에 제가 있습니다. 찾아보세요~




 제 기자단 전성기는 굳이 따지자면 3~6기였습니다. 그렇게 활동을 하는 동안 우수 사내기자상을 계속 받았고 우수팀으로도 선정되었습니다. 내기자 중에서는 압도적인 실적이어서 제가 속한 팀이 항상 우수활동팀이 되었습니다.

3기 워크숍 때 팀 대표로 발표

4기 우수기자단 시상식




 3~6기를 거치는 동안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작가님과 명사들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하며 기사를 썼습니다. 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기사를 썼기에 재미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7기가 시작면서부터 본격적인 위기를 맞기 시작했죠. 사내 기자들이 50명으로 늘었다가 다시 20명 줄어든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내기자들의 기사 생산량이 기대치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쓴 기사의 양 나머지 기사 49명의 기사보다 더 많았으니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거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내기자에게 주던 실비 수준의 원고료(돈 때문에 쓴 건 결코 아닙니다)도 국민권익위의 지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사장님의 주제도 회사에 관련된 것만 다루라는 지시가 내려온 것이죠. 

  지시의 유탄으로 방송인 타일러 라쉬와의 인터뷰 기사가 발행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통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양한 주제의 흥미로운 글을 쓰고 싶었던 제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습니다.

기사 못 내서 미안해요, 타일러~!




 그렇게 저는 점점 기사를 쓰겠다는 동기를 잃어갔고 8기 모집을 하는 2021년이 되자 결국 <사내기자>라는 제도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마저 손을 놔버리니 실적이 거의 없는 사내기자를 유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죠.

대학생만 모집해서 운영한 8기




 그런데 다음 해에는 한술 더 떠서 2022년부터 전기사랑기자단이라는 명칭 아예 없애버리고 KEPCO 프렌즈라는 이름으로 바꾼 뒤 근거지(웹사이트)마저 옮겨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자단 이름이 없어진 건도 놀라웠지만 다음에 일어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마 전 블로그로 이동하면서 7기 이전에 썼던 제 기사를 비롯한 예전의 기사들이 으로 사라져 버린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트를 이전하면서 예전의 기록들이 유실되는 사건이 생긴 것이죠. 검색해도 나오지 않게 된 겁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 하실 수도 있지만 담당자는 매년 바뀌고 담당 업체도 매년 입찰을 하는 구조라서 얼마든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던 모양입니다.


 정말 현타가 어마어마왔습니다. 기자단 활동을 했다는 이력을 이제는 쓰기도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가 썼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사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따져봐야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져서 참으로 착잡한 마음뿐이네요.


 그나마 그동안 받았던 임명장과 상장은 남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흔적도 없어져버린 제 기사들을 기리며 위령제와 함께 한 잔 해야겠어요.


 이제 진짜 기자단의 추억과도 안녕이네요.


한 줄 요약 :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거늘 이제 더 이상 내 이름을 남긴 기사는 온데간데없으니 이 어찌 비통하지 아니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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