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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르세우스 Mar 05. 2023

모델하우스에서의 박 부장님과 벌인 메소드 연기 대결


 길 가다가 할머니에 의해 모델하우스 현장으로 납치된 사건에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https://brunch.co.kr/@wonjue/548




  할머니의 점심을 보장해 드리기 위한 저의 선의는 모델하우스 입장으로 자연스레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모델하우스 안으로 들어가니 한 분이

라는 표정을 지으시며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의 느낌을 풍기며 다가옵니다.




 저는 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잘 모르지만 제가 실제로 보면 귀도 얇고 사람도 좋아 보이는 모양입니다.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은데 말이죠. 안타깝게도 그분의 첫인상에서 저의 경계심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을 만큼의 신뢰감을 찾기는 어려웠습니다.


 일단 부장이라는 직함이 적혀있는 명함을 먼저 받습니다. 가만히 둘러보니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관계자 또는 바람잡이로 보였습니다. 저의 일거수일투족을 곁눈질로 파악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물론 이 또한 확실하진 않은 느낌입니다.


 조금 비약적일 수도 있지만 마치 악당들이 모여있는 소굴로 들어가는 주인공 같은 생각도 듭니다. 여기서 곧장 나와버린다면 할머니의 점심에 피해가 갈까 싶어서 기왕 들어온 거 딱 몇 분만 듣고 가자고 마음먹습니다.

 어차피 그분들이 뭘 얼마에 어떻게 팔려고 하든 간에 완벽하게 저는

모드니까요.




 지난 글에서 설명했듯 이 모델하우스는 지방에 있는 도시에 건설한 레지던스형 호텔에 대한 회사분 분양을 홍보하기 위해 마련된 곳입니다. 3,000만 원 정도 투자해서 월 140만 원의 임대료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레지던스를 관광객들에게 숙소로 빌려주면 1박당 20~3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고 열심히 설명하시는데 들으면서도 계속 제 입이 근질거립니다.

절대 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부동산 투자는 언제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죠.




 제 입이 이렇게 가려움증이 심했나 싶었지만 저는 경찰도 검찰도 지자체 공무원도 공정위도 아니기에 견뎌냅니다. 아이들에게도 토론숙제를 할 때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는 객관적인 근거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 된다고 지도하는데 이 분이 제게 하는 말들에는 그 근거가 너무도 빈약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괜히 질문이라도 했다가는 이야기가 더 길어질 듯해서 질문의 스킬은 잠시 접어두고 경청의 스킬을 최대한 발휘합니다. 질문이 나오는 순간 여기서 머무는 시간은 길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죠. 박 부장님의 입이 좀 풀리려 할 때쯤 저는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고 운을 띄웠고 다급해진 김 부장님은 제게 묻습니다.


"혹시 투자 같은 건 해보신 적 있어요?"

뭔가 무시하는 듯한 말투처럼 느껴집니다. 원래 하고 싶었던 말은 "지금도 생각이 없고 앞으로도 생각이 없어요!"지만 이는 정답이 아닙니다.


"네, 와이프가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아서 두어 군데 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라며

불꽃 연기를 펼칩니다. 이렇게 되면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헷갈립니다.


 뭔가 그분의 어장에 남을 수 있는 물고기처럼 보이기 위한 나름대로의 연막작전이죠. 그런데 그다음 말이 가관입니다.

"아, 결혼하셨어요? 아직 학생인 줄 알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하는 거짓말이 아주 일품입니다. 메소드 연기에는 메소드 연기로 대처해야겠죠.

"아, 예~ 저 올해 마흔셋입니다. 카탈로그나 하나 주세요. 한 번 읽어보고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라고 하며 미션을 완수하고 밖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이제 나이 든 아저씨인데 학생이라고 생각해 줬다고 해서 기분이 좋다는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습니다.

믿어주세요~




 그보다는 진짜 학생이었다면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설명을 한 건지에 대한 의구심이 더 강하게 들었죠. 당장 여력이 없는 사람들도 관심만 있다면 돈을 빌릴 수 방법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건가 라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그나마 없던 부족했던 신뢰감마저 사라지며 찝찝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가짜이름과 가짜 전화번호를 넣은 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제가 적은 번호가 광고 메시지를 받을 테니 그건 죄송스러운 부분이네요. 약속장소로 향하며 세 분의 할머니를 더 마주쳤지만 제가 든 모델하우스 비닐봉지를 보시더니 아쉬운 눈빛을 보이시며 비켜주시네요.


 짧지만 강렬했던 반강제적 모델하우스 체험기는 이렇게 대단원에 막을 내립니다.


한 줄 요약 : 할머니, 그때 그 총각이에요. 그날 박 부장님이 혹시 별다른 말씀은 없으셨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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