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서 저는 하루에 만 걸음 정도를 걷고 많이 걸을 때는 1만 5천 걸음까지도 달성할 때도 많습니다. 근무지를 옮기면서부터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가 늘고 휴무일에는 여기저기 다닐 일이 많다 보니 걸음수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그런 와중에 걷기 챌린지가 저를 위한 이벤트처럼 열리니 어찌 참여하지 아니하겠나이까!
일단 예전에 깔았다가 지워버렸던 어플인 빅워크를 다시 설치했습니다. 이 어플은 지구촌, 환경, 노인, 어린이, 장애인, 동물과 관련된 걷기 챌린지를 통해 걸음 기부로 좀 더 나은 지구를 만들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네요.
로그인을 해서 제가 기부한 걸음이 다시 0이 되었음을 확인하고 (예전에 기부를 한 뒤 삭제를 해서 그런 모양입니다) 본부에 근무하는 분들 중에서 상위 랭커들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상위권은 제가 넘볼 수 없는 수준이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되었습니다. 0걸음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한 달 만에 백만 단위의 수치를 달성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루에 만 걸음씩 기부를 한다 해도 한 달을 꽉 채워봐야 30만 걸음입니다. 그야말로 넘사벽의 수준입니다. 경이로움을 느낌과 더불어 존경심마저 샘솟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아래쪽으로 스크롤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제가 사정권에 둘만한 수치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20위부터는 20만 걸음 이하의 실적이라는 걸 알고 나니 갑자기 저 정도의 순위는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며 의욕이 솟구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결심한 뒤 며칠 동안 열심히 한 결과 100위권 밖에 있던 순위가 60위권까지 올릴 수 있었습니다.
의욕은 이제 한껏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웬만하면 집에서 지하철 역까지 버스를 이용했는데 이제는 걸어서 가고 최대한 기회가 닿는 대로 걷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심지어 집에서마저 휴대폰을 들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저를 보며 다른 가족들은 혀를 차면서 쳐다보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여러모로 의미 있는 활동이라 생각하며 스스로 합리화를 해봅니다. 어찌 보면 이렇게 상품보다 등수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면 저야말로 주입식 교육이 폐해가 낳은 산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의 자매버전인 일명 주낳괴(주입식 교육이 낳은 괴물)인 셈이죠.
놀라운 사실은 이런 걷기 챌린지가 토스만보기라는 이벤트로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인데요. 이것도 함께 해볼까 싶습니다. 하지만 더 황당했던 점은 이 만보기 퀘스트를 달성해서 받는 포인트를 얻기 위해 자동걷기기계라는 제품이 판매되고 그걸 구매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저는 그나마 반려동물이 있다는 전제하에 그 녀석의 몸에 휴대폰을 연결해서 걸음수를 올리는 상상을 한 것이 다였는데 세상은 역시 넓고 기발한 아이디어 역시 많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렇게 해서 걸음을 달성한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많이 걸어서 건강해지라는 취지의 이벤트인데 말이죠. 잠시 자동걷기기계를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평생 정직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제가 직접 걸은 걸음으로만 목표치(30위 이내)를 달성해 보리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