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바퀴벌레 챌린지라는 독특한 제목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엄마, 내가 만약에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할 거야?"라고 아이가 부모에게 물은 뒤 그 답을 인증하는 방식이죠. 대부분 아시겠지만 이 이야기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인 <변신>에 언급되는 내용입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아이들이 자신이 부모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궁금해서 이를 확인하는 방법으로 이 이야기를 차용한 질문을 한 것이죠. 예전에 @그대로동행 님께서는 이 질문을 받으셨을 때 아름답게 답변을 잘하셨더라고요. 저도 하나마나한 질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답에 가까운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네가 바퀴벌레가 되어도 계속 널 아까고 사랑할 거야"라고 말이죠.
그런데 인터넷상에 돌아다니는 경험담들을 보면 생각보다 재미난 내용들이 많았습니다.
비바는 비혼주의 바퀴벌레의 줄임말
우리나라에 이렇게 유머감각이 넘치는 분들이 많으셨다는 부분이 참으로 고무스럽지만 상황에는 맞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 한마디가 큰 의미를 가질 때도 있는데 그런 상황 같았거든요. 물론 이런 내용이 제삼자에게는 웃음이 되었겠지만 질문을 한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아이들이 물어봐주질 않아서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제가 진지하게 대답한다면 아이들은 감동이라고 할지 아니면 노잼이라고 할지 궁금하긴 합니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시험에 처하게 된 일이 생겼습니다. 말 한마디로 빚을 갚을 수 있느냐 아니냐는 그런 상황말이죠.
바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닥터 차정숙]이라는 드라마 때문인데요. 극 중에서 주인공을 맡은 차정숙(엄정화 역)은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까지 경험했지만 가정을 위해 일을 그만두고 20년 넘게 가정(유난스러운시어머니 포함)을 위해 헌신한 인물입니다. 그런 차정숙이 간에 문제가 생겨 이식을 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죠. 천만 다행히도 때마침 남편이 간이식이 가능하다는 검사결과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의사인 남편과 시어머니는 놀라우리만큼 간이식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부인이자 며느리에게 결국 간이식을 해주지 않게 되죠.
드라마를 참 잘 만들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남편인 저조차도 눈치를 보면서 함께 욕을 해주고 싶더군요. 물론 옆에서 눈치를 보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묻지도 않은 말을 자연스럽게 내뱉습니다.
"걱정하지 마!나는 저런 상황이 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식해 줄게"
그렇게 말을 해놓고도 경솔했던 건 아닌지 잠시 되돌아보기도 했습니다. 최근 어린이집 선생님을 하시다가 뇌사판정을 받으신 선생님께서 장기이식으로 세 명의 환자에게 새 생명을 나눠주셨다는 기사를 보면서 말로 이런 이야기를 너무 가볍게 내뱉은 건 아니었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봅니다.
사실 저는 운전면허증에 장기기증 동의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기는 합니다. 그런 일을 생길 거라는 상상 하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는 혹시라도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큰 의미가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동의를 했죠.
큰 수술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그런 결정에 조금은 무뎌진 모양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각자의 가진 소신과 사정들이 있을 수 있으니 단순히 애정이나 신뢰의 문제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만 이 주제를 글로 쓰게 만들었던 드라마 상에서 이식을 하고 싶지 않아 하는 남편의 모습은 제가 봐도 꼴 보기가 싫게 잘 표현되기는 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그런데 제가 만일의 상황이 생긴다면 간을 이식해 주겠다는 말을 아내에게 해놓고 나서 두 번의 흥미로운 반전이 있었습니다.
극 중에서는 혈액형이 다르면 간이식이 안된다는 내용이 있던 거죠. 저와 아내, 아이들 모두 혈액형이 달랐거든요. 그 내용을 잊지 않고 눈치 없이 그 이야기를 했더니 아내가 눈을 심하게 흘깁니다. 두 번의 감동은 힘드네요.
그리고서 다시 검색을 해보니 요즘은 혈액형이 달라도 의술이 발전해서 간이식이 가능하다는 내용이 있음을 찾아냈습니다. 다행입니다. 물론 그 시점에서는 이 누구를 위한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결과적으로는 오늘도 가정의 평화를 지켜냈습니다.
한 줄 요약 : 세상에 시간, 행복, 건강,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
※ 이 글이 비슷한 건강상의 문제를 앓는 분들께 희화화된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해서 행여나 상처가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소하더라도 그런 오해가 생길까 싶어 그런 의도가 절대 아님을 마지막에 한 번 더 밝혀둡니다. 혹시라도 그러셨다면 사과의 말씀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