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야간근무를 위해 급하게 집을 나서는 길에 떡 몇 개를 집어 들고 나왔습니다. 이웃이 먹어보라고 주신 감사한 떡이었는데 그때 허기짐이 심해지고 있던 때여서 바로 두 개를 연속으로 허겁지겁 먹은 거죠.
공복에 먹는 음식은 뭐가 맛이 없겠냐마는 이번 떡 역시 큰 만족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저는 저녁 내내 속쓰림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떡을 먹으면 속쓰림을 겪는 특이한 체질입니다. 떡국이나 증편 같은 종류는 괜찮은데 백설기, 절편, 송편 등 유독 이런 떡에 곤란한 경험들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대를 어긋나지 않았죠. 저녁 시간 동안 운동도 하고 탄산음료도 먹고 소화제도 먹어봤지만 결국 크게 나아지지 않은 채 밤에도 꽤 고생을 했습니다.
호의로 떡을 주신 분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먹으라고 강요한 것도 아닌데요. 모든 잘못은 계속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흰 떡을 포기하지 못했던 제게 있었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 지내보고 싶은 사람이나 잘 지내야만 하는 사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계속 노력을 해봐도 관계가 나아지기는커녕 이래저래 상처만 받고 정신건강에까지 악영향을 끼치는 관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제가 계속 흰 떡과 잘 지내보려 계속 먹었으나 나아지지 못했던 것처럼요.
"이렇게까지 노력해도 맞지 않는 데 억지로 맞출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볼 법도 한데 그러지 못했던 거죠.
인간관계론에서는 상대를 억지로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먼저 바꿔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분명 이 말이 주는 교훈을 통해 상대방과의 관계개선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도 힘든 사람도 분명 존재합니다.
아이 친구 A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친하게 지내던 친구 B가 너무 대화할 때 욕을 많이 하길래 "미안한데 욕을 좀 안 해주면 안 될까?"라고 했다죠.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A라는 친구는 결국 B에게 절교, 일명 손절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 지적이 아이 입장에서는 꽤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아이들과 그 일화를 주제로 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 생각과 비슷했습니다. 어차피 그 정도 말로 멀어질 사이였다면 이렇게 빨리 멀어진 것이 다행이라고 말이죠.
불편한 진실에 대해 용기를 내어 이야기하는 걸 우리는 많이 어려워합니다. 어쩌면 '괜찮겠지', '그래도 뭐 어쩌겠어', '말하기 부담스러운데'라고 생각하면서 무뎌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에게 상처가 될까봐 말이죠.
그렇다고 계속 힘듦을 감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점에서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인간관계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제가 흰 떡을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해서 흰 떡이 저를 미워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