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사 업무승인 시스템과 관련해서 비슷한 사례로 전혀 다른 결과가 생긴 일이 있었습니다.
보통 제가 일하는 중앙관제실(실제 명칭은 배전센터)에서는 정전이 났을 때 원격으로 정전 구간을 축소한 뒤 복구를 지원하며 기자재 교체공사에 대한 통제 및 관리를 합니다.
기자재 교체공사는 사전에 공사부서에서 작성한 작업계획서를 수령 및 검토한 뒤 진행을 하는데 보통 2~3일 전에 공사관리 시스템에 올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내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 최종책임자인 저희가 반송을 해서 재검토를 요청하고 재등록을 할 수 있는 여유를 위해서죠.
하지만 사람의 일이 그렇듯 매번 그렇게 하기가 어디 쉽습니까. 하루 전에 급하게 서류를 올려놓고 검토를 하고 진행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잦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하다 보니 실수가 발생할 위험성이 높아지는 거죠.
아직은 그런 경우가 많지 않았지만 이런 일이 빈번해지자 저희 부서에서는 사흘(4일 아니고 3일입니다) 이전에 작업계획서를 업로드하지 않을 경우는 작업승인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업무요청이 공지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게도 하루 전에 업무요청서가 등록되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저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반송을 하고 담당자에게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냈죠.
당연히 이 문자를 받은 담당자는 전화를 합니다. 왜 반송되었냐 물으면 안내는 해줍니다. 이러저러한 사정이 생겨서 급하게 진행하게 되었다고 말이죠. 사정은 알지만 제 입장에서는 원칙을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들어보니 충분히 고려할 만한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대화를 하는 상대방의 태도는 충분히 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힘이 있었죠.
다행히 제가 다음 날에도 출근해서 해당 업무를 할 예정이었기에 다음번에는 그러지 않기로 약조를 받은 뒤 진행을 시켰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조곤조곤 다 했으니 크게 불만은 없었습니다.
이날의 이야기를 같이 근무하시는 분들과 나눴는데 다른 분의 경험담은 많이 달랐습니다. 공사담당자의 태도가 특히 그랬죠. "고객 측에서 그때 밖에 안 된다고 해서 급하게 잡힌 건데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 공사 못해서 문제 생기면 ㅇㅇ님이 책임지실 거냐?, 이렇게 하는 거 갑질 아니냐"라고 해서 감정적인 대화가 오고 간 것이죠. 상황은 알겠지만 이미 통보된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공사감독자인데 되려 큰소리를 치면서 상대방을 압박하는 태도를 취한 것입니다.
결국 상황은 원칙적으로 하자는 결론으로 귀결되었으며 그 담당자와 부서장까지 와서 상황을 설명하고 진행하는 것으로 해결이 되었습니다. 이 일에 얽힌 모든 사람들은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사람의 말은 '아'다르고 '어'다릅니다. 하물며 이런 예민한 상황에서는 더할 나위 없겠죠.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다 알고 있지만 그걸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고개를 숙이는 것이 죽고 사는 문제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래서 당장이라도 상처 입은 이리처럼 상대방을 향해서 으르렁거리듯 말을 합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주인공인 무슈 구스타프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례함은 그저 두려움의 표출입니다.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가지지 못할까 봐서."
다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부탁을 하는 경우에는 모두 처리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는 전혀 인정하지 않으며 안하무인격 태도로 말하는 사람에게는 더 단단해져서 원칙적으로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는 영화 속의 명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점에서 이틀 전에 유튜브를 제 허락 없이 무단 시청하다가 적발된 ㅇ호의 태도는 바람직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변명하지 않고 잘못을 인정한 뒤 순순히 반성문 한 장을 잘 써냈거든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부분입니다. 지금 저는 상대방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이해해 주겠다는 갑의 위치에서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도 생길 겁니다. 이 글을 통해서 좀 더 스스로의 인격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한 줄 요약 : 일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두가 안다. 다만 그것을 실천하지 못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