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감자옹심이 하기 쉽다 했습니까!?

by 페르세우스



어제는 야간근무를 마치고 난 뒤 맞는 휴무일이었습니다. 보통 휴무일이라고 하면 하릴없이 놀고 싶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습니다. 일정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어제는 제가 일부러 일정을 만들지 않고 계속 집에서 글만 썼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마냥 집에서 탱자탱자 신선놀음을 할 수는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일하고 공부하는 가족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제 스스로가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죠.


고민을 하다가 거슬리던 한 곳의 장소가 제 레이더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베란다였죠. 보통 가정의 베란다는 잡스러운 물건들이 쌓여있기 때문인데요.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정리를 미뤄두던 베란다를 모두 정리하고 물청소까지 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Before 사진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시겠지만 정말 기염을 토했다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됩니다. 정리가 된 모습을 보니 개운합니다. 며칠 동안 씻지 않고 샤워를 한 느낌이랄까요.




그런데 저쪽 끝에 밀어둔 꾸깃꾸깃한 박스가 눈에 계속 밟힙니다. 맞습니다. 바로 감자입니다. 이 감자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친가에서 보내주시고 처가에서 사서 보내주시고 지인분이 텃밭에서 캐셨다며 나눠주신 걸 모두 모은 것들이죠.



이 더운 날씨에 한 달이 넘도록 버텨준 감자들에게 참 고맙기는 했습니다. 베란다 정리하느라 피곤해진 저는 이 감자들을 계속 외면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저를 부른 느낌이 들더군요.


이리 와~ 이리 와~

가지 마~ 가지 마~



결국 저는 홀린 듯이 감자를 한 아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이 감자로 무엇을 해 먹어야 잘해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하고 말이죠.


얼마 전에도

감자,

양파,

우유,

버터를 활용한 감자수프를 제가 만들어서 가족들이 맛있게 먹은 적이 있었기에 어깨는 더욱 무거웠습니다.



그러다가 이웃 중 한 분께서 최근에 감자옹심이를 해먹은 기록을 자신의 SNS에 남겨놓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그 글이 어떤 분이 언제 올린 글인지를 제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죠.


혹시 그 사람이 나다! 하시는 분은 꼭 댓글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때 본 그분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접한 감자옹심이에 대한 이미지는

1. 건강하겠다

2. 맛있겠는걸?

3. 생각보다 쉽겠는데?

였습니다.


그래서 부랴부랴 검색을 통해서 재료를 준비했죠.



그러고는 숙제를 하고 있는 2호를 긴급히 소환합니다.

"아빠 좀 도와주라"

2호가 흔쾌히 감자칼로 감자를 깎아주는 역할을 맡아주었고




저는 부랴부랴 육수를 만들고 국물을 만듭니다.





그리고서는 가장 핵심적인 과정인



감자갈기에 돌입합니다.

감자를 갈면 가는 것보다는 맛이 없겠죠?라고 쓰여있더라고요.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감자옹심이였는데 이 과정에서 제 얼굴에서 웃음기가 점점 사라집니다.



이때 갈아놓은 감자를 체로 걸러서 물은 버립니다.

놀랍게도 바닥에는 전분도 함께 남아있는데요.

체에 있는 감자 갈아놓은 것과 합쳐줍니다. 이렇게 하면 점성이 좀 더 생기게 됩니다.


이 글을 읽고 따라 하실 분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만드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2호는 감자칼에 손톱 사이살에 피가 났고 저는 채칼에 상처가 나기도 했으니까요.





아이들의 도움으로 손이 많이 덜어지기는 했습니다. 물론 손이 쉴 수 있었던 만큼 말은 더 해야 했지만요.




후반 작업부터는 다른 일정을 마치고 귀환한 1호가 투입됩니다. 본격적으로 옹심이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한 입 크기로 뭉쳐서 접시에 올려놓는 거죠. 큰 덩어리를 1호가 제게 주면 제가 분할하는 방식으로 분업화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그냥요"





이제는 정말 막바지입니다. 끓여놓은 육수에 열심히 뭉쳐놓은 옹심이들을 투하!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비주얼을 보니 고생한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이들이 국물을 떠먹어보더니 맛있다고 말해줍니다.


"니들도 일했으니 맛있게 먹어라"라고 말해줍니다. 막판에 팽이버섯까지 넣으니 팔아도 되겠다는 아주 거만한 생각까지 드는군요.



감자옹심이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제 스스로도 맛있다고 생각이 들었고 가족들 모두 제가 지금까지 한 요리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고 했으니까요..



요리는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운전과 더불어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요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활동 중 하나입니다. 요리를 통해서 많은 능력을 키울 수도 있죠. 문제집을 푸는 시간보다 요리를 돕는 시간이 더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많은 분들은 놓치고 계시죠.


그리고 아이들이 요리에 참여를 해봐야 요리를 해주는 부모님, 특히 엄마에 대한 감사함을 더 느낄 수 있기도 하다는 점에서 아이의 요리참여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많은 역할을 해준 이번 옹심이는 여러모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감자를 아홉 개나 사용했으니 그 점에서도 좋았고요.


다만 옹심이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줄 진작에 알았다면 안 만들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한 줄 요약 : 누가 옹심이를 하기 쉽다 했습니까?! 얼굴 좀 봅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