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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 계란은 원래 돈 주고 사 먹는 거 아니었어요?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얼마 전에 난감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달걀 때문이었는데요.


25개 들이 계란을 사서 집에 들여놓은 지 이틀 만에 지인에게 25개 짜리 한 판을 얻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닭의 알이 50개가 냉장고에 들어있었죠.


평소에 해 먹는 요리는 정해져 있습니다. 굳이 꼽자면

달걀프라이

달걀말이

계란찜

게살덮밥

삶은 계란(떡볶이 먹을 때)

정도였죠.


부지런히 먹는다고 먹었는데 선물 받은 스물 다섯개를 다 먹고 제가 사놓은 계란을 먹으려고 하다 보니 소비기한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절반 이상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되지 않을까 싶어 걱정이 생겼습니다. 엄청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잠시 동안 고뇌에 차있다가 나름대로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해결책은 바로 구운 계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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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구운 계란은 태어나서 만들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언제나 이런 상황을 해결해 주는 소중한 레시피어플이 있습니다. 만드는 방법이 나와있더군요. 일단 열 개 정도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목욕한 녀석들을 보니 이미 반 정도는 해낸 듯합니다.


그런 뒤에는 밥솥 안에 차곡차곡 하나씩 넣습니다. 물은 허리 높이까지 붓고 소금도 쳐줍니다. 구운 계란을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다니 이 또한 문화충격입니다.





여기까지 했다면 사람이 할 일은 거의 끝입니다. 백미쾌속 코스를 눌러서 20여 분간 한 바퀴 돌려봤습니다. 자작하게 넣은 물은 모두 증발해 버렸고 밥솥 안의 열기는 마치 사우나처럼 후끈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여세를 몰아 한 번 더 물을 부은 뒤에 다시 인고의 시간을 가집니다.


이렇게 눌러두고 다른 일을 해도 되는데 생각보다 이게 뭐라고 시간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새로운 간식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두 번째 쾌속모드 후 마지막 세 번째 조리까지 마치고 밥솥을 열어봅니다. 밥솥 안은 소금의 흔적이 바닥에 남아 마치 사막처럼 보입니다. 달걀은 거기서 버텨낸 생존자처럼 보이고요.


집게로 바짝 익어버린 달걀을 하나씩 옮기는데 살짝 집는데도 껍질이 바사삭 부서질 듯 약해져 있습니다.


적게는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 밥솥을 돌리면 된다고 하더니 역시 인터넷 선생님은 모르시는 지식이 없습니다.





껍질이 부서진 녀석의 껍질을 살짝 까보니 그토록 기다리던 구운 계란의 자태가 드러납니다. 물론 하얀색의 계란도 맛과 영양에서 모자람이 없지만 개인적인 취향은 구운 계란의 갈색 쪽을 선호하다 보니 좀 더 먹음직스럽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달걀이 남아서 버릴까 싶어 만들었습니다. 만들다가 생각해 보니 어른들이 없을 때 아이들의 간식으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도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퇴근을 하자마자 앉은자리에서 세 개를 먹습니다. 누가 먹으면 어떻습니까. 맛있게 먹으면 되죠.


어른들에게도 인기가 좋으니 잠깐의 고민으로 찾아낸 아이디어로 맛있는 간식을 만든 제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너무 간단한 방법이어서 이걸 요리를 했다고 말하기에 민망하기는 하군요.




평소처럼 닭의 알을 사고 먹었다면 아마 남을 일도 소비기한을 넘길 일도 없었을 테죠. 때마침 계란 선물이 들어왔기에 남는 달걀을 한꺼번에 소진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소소하지만 위기가 새로운 기회를 낳아줬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쉬운 조리법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고 만들었다니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훈제 메추리알을 비싼 돈을 주고 사서 간식으로 먹여왔던지라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짧았지만 간단하고 즐거웠으며 뿌듯했을뿐더러 강렬한 깨달음까지 준 요리시간이었습니다.


한 줄 요약 : '위기는 새로운 기회다'라는 말은 경험해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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