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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끼 삼식이들을 챙기는 삼순이의 삶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붙여진 별명 중에 불명예스러운 표현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삼식이'인데요.


은퇴나 장기 휴가 등으로 집에 머무르는 남편들을 일컫는 일종의 은어입니다. '집에서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는 남편'이라는 뜻이죠. 여기서의 핵심은 스스로 차려먹지 않고 얻어먹는다는 점입니다.


삼식이가 있는 만큼 유사품들도 있습니다.

집에서 한 끼도 먹지 않으면 영식님

집에서 한 끼만 먹으면 일식씨

집에서 두 끼를 먹으면 이식이

집에서 세끼를 다 얻어먹어야 심식이 새ㅇ로 불린다고 하니 슬픈 일입니다.


한때는 하루에 세끼를 다 챙기는 일이 뭐 그리 부담스러운가 생각을 해본 적도 물론 있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제대로 된 식사 준비를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자취를 하면서 처음 요리를 해본 뒤에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 얼마나 번거롭기 귀찮은 일인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가끔 하니까 재미있을 때도 있고 잘 먹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서 계속해왔던 거죠.


그런데 이번 겨울방학에는 제 요리인생에서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학교를 가지 않는 아이들로 인해 제가 밥을 하루 세끼 모두 차려서 먹이는 날이 많아서입니다. 그야말로 아이들이 제게 삼식이가 둘이나 생긴 셈이죠.

내가 말하는 삼식이는 이 삼식이가 아니요!




제가 평일에 휴무일 때는 아침, 점심을 모두 챙기고 아내가 늦을 때는 저녁까지도 챙겨 먹입니다. 물론 모두 매 끼니를 요리해서 먹일 수는 없습니다. 포장을 해와서 먹는 날도 있지만 이렇게 한 달 중에서 보름을 해보니 어머니들께 경외심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제가 집에 하루종일 붙어 있는 날에 그릇 씻는 일은 무조건 둥이들에게 시킵니다. 식사준비를 하는 일도 당연히 아이들 몫이죠. 제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철학 중 하나가 '집안일을 아이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니까요.




무생채도 만들어보고

쌀국수(키트)도 먹이고

떡볶이(키트)도 먹이고

닭볶음.탕도 해먹이고

떡만둣국도 해먹이고

게살덮밥도 해먹이고

마파두부밥도 해먹이고

고기도 구워서 먹이고

어제는 소갈비찜도 만들어서 먹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부지런히 음식을 하는데 아직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기까지 3주가 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몇십 년 동안 묵묵하게 남편과 가족 식사를 챙겨 오셨던 어머님들께 존경심이 절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삼식이를 챙기는 삼순이의 삶이 어떤지 제대로 느낄 수 있었죠.

내가 말한 삼순이는 이 삼순이가 아니요!




집에 있는 날은 삼순이 역할을 해야 하니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느라 12월 말부터는 개인적인 점심 약속을 잡기도 어려웠습니다. 저도 낮에 출근을 할 때는 아이들끼리 스스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닙니다. 아직 차려먹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해서 보통 식당으로 가서 사 먹습니다. 더 많이 믿고 맡겨야 할 청소년 시기임에도 아직은 물가에 내놓은 애 같은 느낌입니다.


이번 글을 계기로 남은 방학 동안에는 기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간단한 요리는 직접 하고 스스로 식사를 차려먹을 수 있는 연습도 확실히 시켜야겠습니다. 학기 중에는 급식을 먹기도 하고 바쁘기도 하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계란 프라이라든지 라면 끓이기라든지 밀키트 정도는 할 수 있어야겠죠.




스스로 요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독립해서 내보내기도 어렵습니다.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을 테니까요. 거기다가 요리 하나 만들 줄 모른다면 나중에 제대로 된 여자친구 하나 못 사귈 테니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영어나 수학 같은 공부 역량만이 인생의 성공 방정식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삶의 재미와 행복, 성공을 위한 길은 훨씬 더 복잡합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능력이 있다면 공부와는 별개로 더 멋진 사람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한 줄 요약 :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아질수록 인생에서의 자신감과 자존감도 높아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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