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중국 서진(西晉) 시대 문인인 육기라는 사람이 쓴 <탄서부(歎逝賦)>에 나오는 글입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비슷하다 보니 보통 가까운 벗을 비유하기도 하죠. 이 사자성어는 조금 더 풀어서 해석하면 친구의 좋은 일을 기뻐해주는 진정한 벗이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합니다.
저는 책을 내고 나서 사실 최근에 이런 벗이 두 명이나 있음을 기뻐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고등학교 동창이고 또 한 분은 학부모가 되어서 사귄 인생선배입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는 저와 학교 다닐 때 공부로 친하기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라이벌이었던 사이였습니다. 저는 성균관대로 진학을 했고 그 녀석은 해군사관학교로 진학을 해서 현직 해군 중령으로 활약 중이죠. 고맙게도 그 친구는 제 출간소식을 먼저 접한 뒤 자신의 카톡 프로필을 제 책으로 해주었습니다.
서로 바쁘다 보니 가끔씩 연락을 하기는 하지만 자주 만나지도 못하는데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모습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어찌 보면 제 주제에 감당하기 힘든 멋진 친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두 번째 벗은 좀 더 특별합니다. 바로 현직 교장선생님이기 때문이죠.
지금은 임기가 마무리되었지만 저는 아이들이 1~4학년을 다니는 동안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학부모위원을 맡아서 활동했습니다. 그때 담당 교감선생님이셨는데 그분께서 다른 학교로 교장 승진을 하시면서 전근을 가실 때 제게 이런 말씀을 남겨 주셨습니다. "부위원장님, 우리는 앞으로도 영원한 친구입니다."
열다섯 살 이상 나이 어린 인생 후배에게 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을 때 제가 느낀 최초의 감정은 감동보다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나이가 비슷해야만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제 그동안의 편견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도 깨달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제 책을 위한 추천사 가장 앞 페이지를 써주시는데도 흔쾌히 귀한 시간을 할애해 주셨습니다. 여러모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결코 낮지 않았죠.
사실 그분과의 인연과 소통 덕분에 브런치에서 알게 된 인생 선배님들과의 소통도 훨씬 가볍고 친근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모로 많은 가르침을 주셨죠.
언젠가 그 호의를 갚을 기회가 있기를 빌어봅니다.
그렇지만 이 두 명의 벗 말고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제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고 함께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벗들도 많음을 이번 기회에 많이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고단하고 힘들 때면 우리는 외롭다고 느낍니다. 내 주위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나 홀로 버려졌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저도 제 자신을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산 적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온 출간이라는 기회를 통해 좀 더 제 주위의 벗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축하해 주며 공감해 주는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핵개인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호모 사피엔스는 사회성이라는 능력을 통해서 살아남았고 인간과 인간은 관계를 맺지 않고 생존할 수 없을 테니까요.
한 줄 요약 : 有朋自遠授助, 不亦樂乎 (유붕자원수조 불역락호) 벗이 먼 곳에서 도움을 주니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