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아무래도 2024학년도 수능시험 성적발표로 인한 뉴스들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제가 시험을 치르지도 않았음에도 학부모의 한 사람인 지라 꽤 진지한 심정으로 그 기사들을 챙겨봤죠.
사람들에게 가장 관심을 많이 끌었던 기사는 수능 만점자와 전체 수능 표준점수 수석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 두 학생의 약력을 간단히 정리하면
수능 만점학생 : 재수생,ㅅ재수종합학원 출신
수능 전국 1등 : 재수생,서울대 의대 지원ㅅ재수종합학원 출신
그 두 사람은 놀랍게도 재수생이며 강남 유명 재수종합학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이 학원은 이미 아실만한 분들께는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한 곳이죠.
킬러문항을 없애겠다고 정부에서 공언한 직후의 시험에서 일어난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참 공교롭기는 합니다.
2023학년도 수능에서는 만점자가 세 명이었는데
만점자 학생 1 : 울산, 재학생,서울대 의대 지원
만점자 학생 2 : 포항, 재학생,서울대 의대 지원
만점자 학생 3 : 서울,재수생,서울대 의대 지원,ㅅ재수종합학원 출신이었습니다.
작년과 올해 수능 만점자들만 단순히 놓고 봤을 때 이제는 절반 이상의 공식처럼 되어가고 있는 듯한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1.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이 추구하는 최종 진로는 결국 의대다.
2. 재수는 이제 정말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변해가고 있다.
3. 재수종합학원은 이미 웬만한 대학보다 들어가기 힘든 곳이 되었다.
물론 수능 만점자의 일부 사례만으로 전체의 결과를 일반적으로 도출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학생들이 언론에 노출되면 그 방식이 유행처럼 퍼져왔다는 경험에 비춰봤을 때 전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도 아닙니다.
우수한 인재가 의대로만 가는 이 현상은 이제 국가경쟁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수준입니다. 프랑스의 전쟁영웅인 나폴레옹은 뛰어난 용병술을 지닌 전략가이자 용맹한 지휘관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면도 있었습니다. 바로 과학기술에 나라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았고 그 분야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부분입니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현실은 아주 위태롭다고 볼 수 있겠죠.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의 "예전엔 내신이나 수능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받은 학생만 의대를 준비했지만, 지금은 이과 최상위권 30%가 의대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는 인터뷰도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필수과정처럼 변한 재수 또한 재학생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부담과 더불어 부모의 부담을 늘리는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지인의 자녀마저 1학기 내신성적을 망쳤다는 이유로 "엄마, 저 재수할래요"라는 말을 했다고 하니 이런 분위기가 과연 올바른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재수는 또 한 번의 시험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기회비용을 포기해야 하는 선택입니다. 남학생 기준으로는 군대, 취업, 결혼 등등 모든 성인이 되었을 때의 새로운 경험이 최소 한 해 이상 미뤄지게 되죠.
게다가 재수종합학원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게 된다면 결국 평등해야 할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게 될뿐더러 서열화를 부추기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 달에 3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교육비는 부모 세대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해서 '에듀푸어'가 빠르게 되는데 일조하게 되겠죠.
안타깝지만 바로 며칠 전에 대학입시전형이 끝나지도 않았음에도 재수학원에는 문의전화가 폭증한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이런 문제는 아직 정시제도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회 분위기가 가져온 문제도 일조했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2024학년도 수시모집과 정시모집의 비율은 79대 21입니다. 정시의 폐해로 도입된 수시제도에 대한 신뢰도 부족과 함께 복잡한 전형방식은 다시 정시 확대 요구를 거세게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렇지만 야금야금 수시비율은 다시 80% 수준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결국 수시에서 답을 찾겠다는 전략적인 선택이 확률적으로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가장 좁지만 가장 깔끔한 방식인 수능시험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되죠. 그 선택에는 재수라는 부담스러운 단어도 함께 따라옵니다.
사실 수천 가지가 넘는 복잡한 전형방식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대학에게 맡겨진 전형에 대한 자율권을 국가에서 통일되고 명확한 기준을 통해 재정립한다면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죠.
수시제도가 너무 복잡해서인지 전략실패에 대한 문제인지 지나친 불안감 때문인지 아니면 언론환경 탓인지 교육제도 자체가 지닌 문제인지 이런 상황을 하나의 원인으로만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 이 나라 대학입시는 한참 희한한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곧 수험생의 부모가 될 사람의 한 명으로서 걱정이 벌써부터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누가 나서더라도 이 오래된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교육제도는 심각한 저출생률과 더불어 정말 이 나라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되고 말 테니까요.
한 줄 요약 : 우리 아이들이 재수 없는 삶, 의대에 집착하지 않는 세상을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