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MBC에서 <공부가 머니>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던 적이 있습니다. 교육비는 반으로 줄이고, 교육 효과는 배 이상 높이겠다는 취지를 가진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주로 연예인이 자녀들과 출연해 일상을 유심히 관찰하고 진로나 교육방식에 대해 전문가들이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입니다. 일명 에듀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죠.
상대적 박탈감, 사교육 조장, PPL 논란 등 비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순효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청률 저조로 인해 1년을 채우지 못하고 2020년 10월에 종영했죠.
그러고 나서 3년 만에 이와 비슷한 취지의 프로그램이 지난달부터 방영되고 있습니다. 바로 <금쪽같은 내 새끼> 제작진에서 만들고 수능 일타강사인 정승재 선생님(수학)과 조정식 선생님(영어)이 참여해서 화제가 된 <티처스>입니다.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바쁘신 분들이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하길래 저 역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습니다.
먼저 의지와 노력이 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거나 사교육 비중이 높은 아이들을 회차별로 선별합니다. 학생들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선생님들이 한 달 동안 집중관리를 해서 유의미한 효과를 유도하는 영수 중심의 공부법 지도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왜 공부해야 하는 과목들이 많은데 굳이 영어, 수학만으로 한정했느냐고 물으신다면 답은 간단합니다. 국어의 중요성이 요즘 강조되고 있지만 결국 우리나라 사교육비의 가장 큰 기둥뿌리는 영어와 수학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기도 하죠. 저만 깨달아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중학생이 될 아이들에게 사정사정해서 함께 봅니다. 이제는 아이들이 더 집중해서 보죠.
프로그램 안에서는 두 선생님들이 틈틈이 선행학습에 대한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심지어 대치동에서 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이 의미 있는 공부를 하고 있는 비율을 5% 정도밖에 보고 있지 않다는 말은 제게도 충격이었죠. 저는 책에서 선행학습을 소화해 낼 수 있는 아이들의 비율을 10% 정도로 평가했었는데 더 냉정하시더군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많은 전문가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 아이는 다르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내 아이는 선행학습을 충분히 소화해 내는 5% 안에 들어가 있다고 굳게 믿는 분들이 그만큼 많으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 아이도 해야 중간은 가지 않겠느냐는 불안감이라고 봐야겠죠.
내가 그리고 내 배우자가 그동안 어떻게 공부해 왔고 어떤 성향인지를 보면 아이를 어떻게 이끌어가면 좋을지 감이 잡힐 텐데 경험으로 쌓아온 사전지식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학교폭력심의위원회에 참석할 때면 유심히 관찰하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친한 친구에 대한 내용입니다. 학부모진술서 란에 자녀의 친한 친구 이름을 적는 란이 있는데 의외로 아이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내 자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부모가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물며 아이의 인지능력이나 학습능력에 대해 과연 제대로 파악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그 부분 역시 저는 그리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아이들의 같은 반 친구들은 못해도 절반 이상은 2개 학년 이상을 넘은 선행교육을 하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그 아이들이 학원 숙제를 학교에 보란 듯이 가져와서 푼다고 하더군요.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런 선택은 결과적으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확률이 높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고등학교 진도를 나간다며 자랑하고 있지만 정작 현행학습에서는 죽을 쑤는 광경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이 현행이나 중학교 1학년 공부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비웃는 경우도 왕왕 생긴다는 점입니다. 진도가 자신의 실력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택의 결과는 아마 당장 중학교 시험에서 나타날 테고 고등학교 때는 밑천이 드러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생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서 중학교 도형수업을 해주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말하는 정승재 선생님이 방송 중에 했던 이야기는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문제는 아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부모가 깨달아야겠죠. 아이의 실력과 잠재력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면 잃게 되는 것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시간,
돈,
아이의 자존감,
아이의 미래,
부모자식 간의 유대감
공부는 평생 해야 하고 19세가 되기 전의 공부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역량과 정서 등을 진지하게 고려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자녀를 이끌어나가는 부모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공부로 인한 우울감을 내 아이가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이런 이야기는 제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한 줄 요약 : '내 아이는 다를 거야'라는 믿음으로 아이가 소화하기 힘든 과업이 주어져 있지는 않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