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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로 지켜낸 가정의 평화

by 페르세우스



안녕하세요, 자녀교육에 진심인 쌍둥이아빠 양원주입니다.




저는 평소 비인지능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파이브 포인츠>에서도 비인지능력에 대해서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인지능력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수치화할 수 없는 능력을 뜻하며 열정, 끈기, 성실함, 참을성, 눈치 등등 다양한 요소를 망라합니다.


그중에서 저는 눈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자주 언급을 합니다. 어른들은 '눈칫밥 먹는다', '눈치 주지 마라'는 말들로 눈치를 나쁜 어감으로 표현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눈치는 예로부터 인간이 생존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정말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 눈치는 사회생활은 물론 저처럼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욱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최근에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새해 첫날을 맞아 아침을 먹고 아이들이 수학 문제집을 풀고 도와주고 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베란다 청소를 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더군요. 평소에 청소는 각자가 할 수 있을 때 조금씩 하다가 다 함께 해야 하는 영역은 사전에 협의를 통해서 해오고는 했습니다.


미리 이야기 없이 시작했던 데다가 저도 하고 있는 일이 있었던지라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죠. 이상하게도 아내도 딱히 제게 뭘 하라는 이야기 없이 묵묵하게 혼자서 하고 있더라고요. 맞벌이기에 평소에 저도 집안일을 많이 하고 있음을 자부하기에 이번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특별히 문제 될 일도 없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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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상했습니다. 동물적인 감각이 저를 깨우기 시작했습니다. 군소리하지 말고 함께 치워야 한다고 말이죠. 아내가 베란다에 있는 물건들을 거실 쪽으로 옮기려 할 때 저는 거실 쪽에서 일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기에 조심스럽게 구시렁거리는 일도 잊지 않습니다.


그리고서는 마지막으로 다 치워진 베란다 바닥을 물로 청소하기 위해 대야로 물을 받아와서 뿌렸습니다. 문제는 날씨가 추운 시기라 베란다에서 물청소를 하면 바로 마르지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투입되어 마른걸레로 바닥의 물기를 제거하는 일을 맡았죠. 정말 군대에 있을 때의 기억이 나는 듯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하니 바로 알아채는군요. 이 사진이 어떻게 쓰일지 말이죠.





확실히 치우기 전에는 몰랐지만 정리를 하고 나니 속이 시원하기는 합니다. 결국 이렇게 마무리를 함으로써 거대한 베란다 정리에 밥숟가락을 얹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조금 뒤 아내가 베란다 청소를 한 이유가 컨디션이 매우 좋지 않은 예민한 시기여서 그랬다는 사실도 곧 알 수 있었습니다. 컨디션이 예민해지면 청소를 하는 습관이 있는데 그런 상황이었던 거죠. 아마 제가 계속 가만히 있었다면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도 잔소리나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았겠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제 영민한 판단과 행동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 셈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인 레나홍 작가는 눈치를 다룬 자신의 저서에서 이를 '다른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고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필요하며 다른 사람의 생각과 느낌을 가늠하는 미묘한(subtle) 기술'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눈치라는 요소에 요령, 재치, 상황을 바라보는 안목과 순간적인 판단력 등 여러 의미가 포함된다고 덧붙였죠.


아이들에게도 누누이 이야기를 합니다. 머리가 똑똑해서만은 살아남을 수 없다. 눈치가 빨라야 한다고 말이죠. 오늘도 이렇게 아내의 예민한 시기를 눈치껏 잘 이겨내서 생존했고 가정의 평화도 지켜냈습니다.


한 줄 요약 : 아들아,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능력은 국영수보다 눈치라는 사실을 잊지 말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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