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는 재난 영화입니다. 그리고 그중에서 <투모로우>와 <2012>를 가장 많이 봤습니다. 그 스케일이 큰 데다가 실제로 겪지는 못하겠지만 언젠가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보니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이 두 영화는 인간이 파괴한 자연이 결국 부메랑처럼 되돌아온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재난영화보다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영화를 통해서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도 있으니까요.
어찌 보면 제가 이상기후와 같은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영화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재앙들이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상당히 안일하고 모순적인 생각이죠.
최근 메타(페이스북의 바뀐 사명) 회장인 마크 저커버그가 하와이에 있는 카우아이섬에 3500여 억 원을 들여 지하대피소를 포함한 대규모 복합단지를 비밀리에 짓고 있다는 재미있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5.7㎢(약 17,000평 규모)에 이르는 토지를 1억 7천만 달러(약 2,240억 원)를 들여 구입한 뒤 건설비로도 1억 달러(약 1298억 원)를 투입했다고 말이죠.
매체에 따르면 이 지하 복합단지는
ㅇ 약 464㎡ 규모의 자체 에너지 및 식량 공급이 가능한 지하 대피소
ㅇ 여러 개의 엘리베이터, 사무실, 회의실 및 산업용 규모의 주방을 갖추 축구장 5만 7000 제곱피트(약 5,295㎡)와 맞먹는 면적을 가진 두 개의 저택
ㅇ 30개 침실과 욕실을 갖춘 12개 이상의 건물로 구성된 복합단지
ㅇ 대형 체육관, 수영장, 사우나, 테니스 코트가 포함된 건물을 비롯해 게스트하우스와 운영 건물을 갖춘 숙소
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입니다. 억만장자가 지하벙커를 만든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그들의 생각은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사실은 돈이 쓸데가 없고 남아돌아서 그러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죠.
게다가 이번에 소식이 전해진 마크 저커버그뿐 아니라 샘 알트먼 오픈 AI CEO, 스티브 허프먼 레딧 CEO, 리드 호프만 링크드인 공동 창업자와 같은 이름난 기업가들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대규모 복합시설을 건설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가볍게는 들리지 않습니다.
리드 호프만이 예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 억만장자의 절반 이상이 지하 벙커와 같은 일종의 ‘아포칼립스 보험’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말한 부분은 과연 인류의 미래를 억만장자들이 그리 밝게 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죠. 그들 스스로도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을 했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영화 <2012>에서도 지구에 다가오는 재앙을 대비하기 위해 커다란 함선을 만드는데 그 함선에 탈 수 있는 존재는 우월한 능력을 지니거나 재산이 많은 사람들뿐입니다.
미국에서 이름난 미디어 전문가 더글러스 러시코프는 그의 저서인 <가장 부유한 자들의 생존>(Survival of the Richest)에서 “돈과 기술만 충분하다면 부유한 사람들은 신처럼 살 수 있고, 다른 모든 사람에게 닥친 재앙을 초월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의 행동이 썩 보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저는 돈이 없어서 지하벙커에 들어가지도 못할 테니까요. 그렇지만 혀만 차고 있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이미 대멸종, 생태계 멸종이라는 단어가 학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언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모두가 인류에게 스스로 초래하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 좀 더 심각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