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평소 우울증이라는 단어를 저는 많이 쓰지 않습니다. 일단 좋은 의미도 아닐뿐더러 말이 기분과 행동을 바꾼다는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굳이 써왔다면 무기력증이라는 표현 정도를 써보기는 했죠.
그런데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우울한 감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급작스럽게 늘어난 몸무게 때문인데요. 어제 저녁에 측정을 하고 나서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저녁 내내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거의 급성우울증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죠.
제 키를 감안한 적정 몸무게는 62~63kg입니다. 평소 야식을 하지 않고 살았기에 생활습관이 좀 좋지 않았지만 체중을 유지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많이 올라갔을 때도 66kg 정도였으니 완벽하게 절제되고 관리하는 생활습관이 아니었더라도 어느 정도의 믿음이 있었죠.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씻을 때마다 매번 측정을 하고는 했었는데 체중계의 수은전지가 방전되어 꽤 두 달 넘게 몸무게를 재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이유였죠.
그러다가 지난 연말에 찜질방을 가서 체중계에 올랐을 때는 62.1kg이었습니다. 이후 새해가 밝고 3주가 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측정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측정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생활습관을 잘 챙긴다는 자신은 있었습니다.
야식은 여전히 먹지 않았으며
식사약속도 거의 만들지 않았고
가끔 먹던 술은 더 줄였으며
탄산음료는 완전히 끊은 데다가
끊었던 운동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제저녁 부서 회식을 오랜만에 하고 와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고기는 고기대로 실컷 먹고 후식 냉면까지 알뜰하게 처묵처묵하고 돌아왔던지라 불안하기는 했습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건전지를 사 와서 넣고 그 위로 올라서는 순간 태어나서 처음 보는 숫자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정말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습니다. 20일 만에 5kg이 늘었으니까요. 머리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죠.
정신이 번쩍 들어서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이런 상황이 생겼는지 곰곰이 되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먹은 음식들까지 말이죠. 기억이 나지 않을 때는 일기장까지 뒤져가면서 찾았습니다.
여러 요인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추가적인 특이사항이 없어서 저는 1번이 가장 유력해 보였습니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두 가지 이유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방학 기간 동안
아이들을 챙기고 춥다는 이유로 바깥 활동이 많이 줄었고
덩달아 매번 밥을 챙기기 힘들다는 이유로 평소보다 채식보다는 육고기를 먹는 횟수도 늘었고 외식도 많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물론 이런 원인이 늘어난 몸무게와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유력해 보였습니다.
몸무게를 확인을 한 뒤 자기 전까지는 첫 고백에 실패한 모태솔로남처럼 급작스러운 실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동안 적어도 체중관리에 대해서만은 고민하면서 살지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충격이 적지 않았습니다. 탄산음료 끊기처럼 식습관을 바꾸겠다는 의지도 보였던 차에 생긴 문제니 더욱 그럴 수밖에요.
그래도 감사한 일은 가족들이 놀리거나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옆에서 많은 격려를 해줬습니다. 특히 건강이는 고맙게도 시간을 내서 편지까지 써주면서 저를 북돋워주기 위해 애를 쓰더군요. 제가 이러고 있는 모습이 생소했던 모양입니다.
그냥 편지를 쓰면 밋밋할까봐 안에 또 방.탈.출퀴즈를 넣어놓는 센스까지 발휘더군요.
빨간 글씨를 보면 새로운 암호를 확인할 수 있다더라고요. 다만 LOVE는 LOOVE로 해석해야 된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급성우울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실의에 빠졌지만 다행히 하루 자고 일어난 뒤 정신은 금세 차렸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말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운동하고 음식도 조절하겠다고 말이죠.
계획 목표 의지 노력이 있다면 절대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며 오늘부터 체중관리에 들어갑니다. 목표한 몸무게로 돌아오면 한 번 더 그간의 소회를 쓸 수도 있겠군요.
한 줄 요약 : 인생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네 가지. 계획, 목표, 의지, 노력! 내 다이어트 또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