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베트남의 푸꾸옥이라는 곳을 여행 중입니다. 둥이들의 초등학교 졸업기념으로 말이죠. 여담이지만 그런 와중에 글은 어떻게 쓰냐고 혹시 물으실 듯도 한데요. 떠날 준비는 뒷전으로 하며 주말에 몇 개를 몰아서 써놓고 출발했습니다.
어디 갈지를 정하는 일이나 숙소, 항공편은 아직 어른들의 몫입니다. 다만 재작년부터는 아이들에게 계획을 스스로 잡아보라고 권유하고 있습니다. 작년 여름과 가을에 다녀온 포항과 부산 모두 아이들의 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아이주도여행은 예상보다 얻는 교훈과 즐거움이 꽤 컸습니다.
이번에도 베트남 푸꾸옥으로 가자는 제안은 제가 먼저 했습니다. 작년에 아버지회 모임에서 아버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곳을 다녀오신 분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일본 후쿠오카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더군요. 생전 처음 접하는 지명인데 호평이 꽤 많아서 결정했습니다.
겨울방학이 중학교를 가기 위한 준비로 바쁘기는 하지만 또 추억을 만들기에도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먼저 제안을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도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장소를 정했으니 아내의 몫은 회사 일정에 맞춘 항공편과 숙소 예약입니다. 평소 불면증이 있으신 분이라 숙소에 대해서는 아내의 의견을 군소리 않고 전적으로 존중해 주는 편이죠.
그 뒤부터는 온전히 아이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구경하고 먹을지 말이죠. 지난번에도 제법 준비를 잘하고 그 의견을 80% 이상을 수용해 여행을 진행했기에 이번에는 더 익숙해진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일정을 짜고 진행하는 첫 번째 해외여행이라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뜻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준비가 부실해서가 아닌 열의가 지나쳐서였죠.
두 아이 모두 푸꾸옥의 관광지와 식당에 대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자료를 찾아보고 정식브리핑을 하듯이 준비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기특하다고 여겼는데 약간은 과한 감도 없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전염병에 대해서 알아본다면서 서 울 아 산 병.원 논문까지 읽더니 장티푸스 예방주사까지 맞자고 할 정도였겠어요. 장티푸스에 걸리면 탈모도 나타날 수 있다고 해서 더 신경이 쓰였던 모양입니다.결국 네 가족은 보건소에서 주사까지 맞았죠.
적당히 하면 물론 좋겠다 싶었지만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중간브리핑 때 적절한 수준에서 피드백을 해줬습니다. 아이들이 찾은 곳들 중에서 시간과 이동거리, 비용을 감안했을 때 물리적으로 힘든 개소는 제외하기로 말이죠.
다행히 아이들이 수긍을 해줬고 여행계획과 준비물까지 출발하기 전에 순조롭게 마무리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이곳에서 순조로운 일정을 보내고 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이들이 계획을 짜는 모습에서 예전 제 모습이 투영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지인들과 함께 오스트리아, 체코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계획표를 짜는 데 새벽 6시에 일어나서 5분 단위로 끊어서 진행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일행들이 힘들어하는데도 그때는 하나라도 더 보고 와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던 모양입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다행히 이제는 그런 방식이 즐길 수 있는 여행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더 여유를 가지게 되었죠.
아이들에게 제 예전 모습이 살짝 보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조율을 잘했습니다. 진짜 여행을 뭔지 제대로 알고 즐겨보자고 말이죠.
현재 둥이들이 세운 계획표는 변수가 있어서 변동이 생기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꼼꼼한 준비 덕에 모두 즐겁게 잘 보내고 있는 중이죠.
건강이의 수제 계획표
즐겁게 이번 여행을 잘 마무리해서 서너 개의 후기도 행복한 마음으로 쓸 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한 줄 요약 : 자기주도학습 뿐만 아니라 자기주도여행도 아이의 올바른 성장에 정말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