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몇 번의 해외여행을 해봤지만 이번 푸꾸옥 여행에서 내가 한 일은 제일 적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소와 항공은 아내가 예약하고 계획은 아이들이 짰다. 내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역할은 화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기억해 보면 여행 때마다 한두 번은 화를 낸 기억이 있다. 물론 화낸 사람은 그럴만했다고 말하지만 그 기억이 여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가족들의 건의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 손을 걸고 약속을 했다.
물론 여행을 하다 보면 다른 일행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표정만 보면 다 보인다. 나도 저런 얼굴일까 싶어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의 1차 목적지인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서 향한다. 공항에서 차를 맡기고 들어가야 하는데 이번엔 좀 특별한 방식이었다. 공항터미널 주차장에 차를 두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 주차장에서 사람이 나와 차를 가져가는 구조다.
비싸게 팔릴만한 차는 아니어서 가져가도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이렇게 신용거래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이 대단해 보인다. 사진과 함께 보낸 문자를 보내니 회신도 온다. 첫 번째 미션은 잘 마무리했다.
두 번째 미션은 해외용 와이파이 기기 수령이다.
선택지는 네 가지였다.
1. 통신사 로밍(비싸다)
2. 현지 유심(귀찮다)
3. 와이파이 기계(잘 안 될 때가 있다)
4. 현지 와이파이 활용(불편함)
여러 명이 쓸 수 있고 잘 안 터지면 사용량을 체크해서 환불도 해준다고 해서 3번을 골랐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니 정말 잘 안 터져서 내 속도 함께 터질 뻔했다. 결국 숙소의 와이파이를 더 많이 사용했다.
세 번째는 환전이었다.
현장에서 하지 않고 온라인 환전을 써봤다. 계좌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지정한 지점에서 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베트남 화폐인 동(DONG)으로 모두 교환하지 않고 달러를 80% 포함해서 환전했다. 현지에서도 환전을 할 수 있을뿐더러 베트남 돈이 남으면 사용하기도 어려워서이다.
이렇게 훌륭하게 미션을 완수하고 수속까지 잘 마치고 들어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들도 있었다.
일단 비행기가 40분이나 지연 출발했다. 그 시간대에 출발하는 수십 대가 넘는 비행기 중 유일한 지연 출발이었다. 그 정도 시간은 문제가 아니지만 베트남 현지 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하는 일정이라 숙소까지의 이동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가장 심각했던 문제는 푸꾸옥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일단 베트남은 입국신고서가 없는 편리한 나라여서 빨리 입국 확인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입국 신고를 받는 인원은 단 두 명. 속도는 현저하게 느렸다. 제일 뒷줄에 있었던 우리는 도무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는 줄을 보면서 애가 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제복을 입은 사람이 제일 뒷줄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입국심사원이었다. 그 사람이 계속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Where are you from?", "How many people?"
왜 저런 질문을 하나 했는데 그 사람과 질문을 나눈 가족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가 잠이 와서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제복쟁이에게 돈을 주고 우선입국대상자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이야기와 상관없는 사진임 (출처 : 아시안데일리뉴스)
결국 그 사람들은 돈으로 프리패스 이용권을 산 셈이었다. 대강 세어보니 다섯 팀이 돈을 주고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갔다. 우리 쪽으로도 왔지만 나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얼마인지 물어볼 생각도 없었지만 돈이 그리 많이는 들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그 정도 돈으로 네 명의 시간을 살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사람에게 돈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이었지만 아까웠을뿐더러 아이들 앞에서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주고 싶지도 않았다. 고맙게도 아이들은 돈을 내고 나가자고 말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서 신고를 할까 고민했지만 너무 피곤했기에 그 정도의 의협심까지는 없었다.
결국 기다린 지 1시간 반 정도가 되어서야 길고 긴 입국장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베트남 푸꾸옥에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첫인상은 몇 사람으로 인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시간이 많이 지연되었음에도 리조트에서 보내준 셔틀버스를 공항에서 탈 수 있었다는 점이다. 늦어진 시간을 감안했을 때 셔틀버스는 진즉 놓치고 택시를 타고 이동할 각오도 했었는데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소신을 지킨 보람이 있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저 쪽에 입국심사관에게 뒷돈을 주고 입국장을 20분 만에 진즉 빠져나가신 한 가족도 눈에 보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왠지 모르게 그들은 더 힘들어 보였다는 점이다.
50분 동안 버스를 타고 도착한 숙소는 예상보다 꽤 좋았기에 쌓였던 여독을 마무리하고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