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광장

트라팔가 광장과 푸치니의 토스카

by 아인슈페너

런던의 뱅크(bank) 역은 이름처럼 은행과 사무실이 밀집된 지역이다. 정장 차림의 직장인을 많이 볼 수 있고, 금요일 오후가 되면 와이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이제 막 주말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햇살과 함께 맥주를 마신다.


주를 열심히 보낸 나 역시 그들과 섞여 창이 많이 나 있는 곳에서 주말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창 밖을 보니 공원은 어느새 사람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연인이 와인과 맥주를 곁들여 음식을 먹고 있다. 평소보다 유난히 많이 모인 것 같아 종업원에게 물으니,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하는데 이곳에서 생중계를 해 준다는 것이다. 더불어 알려주는 정보가 트라팔가 광장에 가면 더욱 생생히 볼 수 있다 귀띔해준다.

그리고 보니 밖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드레스를 입은 가수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는 둥 마는 둥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나를 일으켰다. 트라팔가 광장으로 가자!

런던의 지하철 노선이 머리 위로 그려지며 가장 빠른 코스로 광장을 향해 달렸다. 이 생소한 열정을 더 넓은 곳에서 경험해 보자!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인파가 계단과 바닥에 가득 차 있었고, 광장 둘레에는 바리 게이트가 쳐져 있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그곳을 통제하고, 경찰도 보였다. 와인이나 맥주를 가져온 사람은 플라스틱 통에 옮겨 담아야 입장할 수 있었다. (유리 용기에 담긴 음료는 가지고 들어 갈 수 없고, 그곳에는 충분한 플라스틱 통과 종이컵이 준비되어 있었다) 적당히 빈자리를 찾는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진지하게 '푸치니의 토스카'를 관람하는 것이었다. 주름진 노부부에서 껄렁해 보이는 십 대 청소년, 부모의 손을 잡고 이제 막 오페라에 입문한 어린아이까지 그곳에는 어떠한 경계, 이념, 세대의 차이도 없고 늘 그래 왔듯이 그들은 그렇게 넓은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문화의 충격이었다.

알고 보니 영국에서는 흔히 있는 일로 우리가 월드컵 축구를 장 외에서 응원하듯, 이들은 오페라를 도시 가운데 공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관람할 수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은 해가 넘어가고, 넬슨 제독의 50m짜리 동상에 걸린 대형 스크린에서는 탄식하는 여주인공의 노래가 한참이었다.

토스카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로마가 처한 상황을 배경으로 1800년 6월 17일에서 다음 날 새벽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다. 푸치니는 이 외에도 ‘라보엠’ ‘나비부인’ ‘투란도트’를 작곡했고 ‘공주는 잠 못 들고’ ‘별은 빛나건만’ 등 우리에게 익숙한 곡들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오페라 작곡가이다.


'예술은 일종의 병이다'라고 말한 푸치니의 고뇌가 작품에 녹아들어 사람들을 눈물짓게 할 때 광장을 떠나 완전히 어두워진 거리로 나섰다.



광장이 갖는 의미는 무한하다.

먼저 최인훈 작가의 ‘광장’이 떠오르고,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터’라 되어 있다. 또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 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란 뜻도 있다.


두 번째, ‘뜻을 같이 하여’에 마음이 와 닿는 것은 그동안 광장이 해온 일 들 때문이다. 트라팔가 광장도 영국의 넬슨 제독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을 해전에서 이긴 기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뜻을 같이 하여 사람들은 광장에 모이고 전쟁을 한다. 광장에서는 혁명도 일어나고, 새로운 문화가 생성되기도 한다.

광장의 힘은 사람을 모으는 데 있고, 빈 공간이라는 여지는 변화를 암시한다.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에서는 예술의 기능을 기억, 희망, 슬픔, 균형 회복, 자기 이해, 성장, 감상의 7가지 영역으로 나눈다. 우리는 단지 하루하루 선해질 동기를 찾지 못할 뿐이며, 이때 예술은 인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예술의 기능과 광장의 역할이 합쳐질 때 그의 순기능은 인간의 회복에 있다.


비어 있는 공간,

빈 터.

‘뜻을 같이 하여’란 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볼 때 축구를 응원하고 오페라를 감상하는 곳으로 광장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은 다양한 모습으로 말을 걸고, 광장은 비어 있음으로 가능성을 준다.

예술과 광장의 만남. 그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예술은 죽지 않고 기어이 살아내기 때문이다.



광장이 예술을 품어야 하는 아름다운 이유이다.





2014. London

photo by 원정


*알랭 드 보통- 196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독특한 연예 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로 주목을 받았다. 대표작으로 불안, 여행의 기술, 행복의 건축, 일의 기쁨과 슬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