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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인슈페너 Jan 25. 2021

나는 테러리스트입니다

악명 높은 히드로 공항

그는 중동의 어느 나라, 부유한 집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영어교육을 위해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출국날짜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아들에게 몇 개의 문장을 알려 주었다.

Yes! No! Thank you! 그리고 I am a tourist!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아들은 입국심사를 받게 되었다. 머물게 될 집 주소, 학교 추천서, 돌아갈 비행기 티켓, 여권 등 서류 준비는 완벽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

"당신은 투어리스트입니까?"

"네, 저는 테.. 어.. 리스.. 트입니다."

"테러리스트라고요?"

"아니, 저는 투.. 러.. 리스트입니다."

"테러리스트?"

"Yes! I am a terrorist!"


그는 곧바로 공항 경찰에 연행되었고, 그곳에 억류된 채 철저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 삼엄한 분위기에 기가 질린 학생은 질문을 할 때마다 "테러리스트"라 일관했고, 한번 꼬여버린 발음은 더 이상 "투어리스트"라 말할 수 없게 되었다. 10시간 이상이 지나고 옥스퍼드 학교에서 나온 관계자의 도움으로 간신히 공항에서 풀려 날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영국에 머무는 동안 단 한차례도 다른 나라를 여행한 적이 없었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유학생들은 한참을 웃었고, 나 역시 그들과 함께 깔깔대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나 역시 비슷한 일을 겪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런던을 떠나기 보름 전, 파리로 여행을 갔다. 저녁 비행기로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고, 입국심사를 받게 되었다. 서류 준비는 완벽했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독일에 사는 동생집에 한 달간 머물다 갈 예정이었다.


금발의 중년 여자는 서류가 부족하다며, 입국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이 없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한국으로 보내기 위한 짐들을 여러 개의 박스에 포장해놓은 상태였고, 지인들에게 나누어 줄 물건 등 정리할 일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나는 영국에 남지 않는다! 독일행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며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녀는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

NO!

당황하여 다시 설명을 잘해보려는데, 일그러진 얼굴을 한 그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어학연수를 온 학생이 그렇게 영어를 못하고, 못 알아듣느냐! 순간 내가 서 있는 창구에 모든 사람의 시선이 쏠렸고, 옆 창구의 직원들도 달려와 그녀를 말리고 있었다. 눈물이 날 거 같았다. 이대로 못 들어간다면 부치지 못한 짐들과 학교 일정 그리고, 그리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오직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무서운 그녀는 거센 영국식 발음으로 신경질을 내며 억세게 몰아붙이고, 나는 입술을 바들거리며 알고 있던  단어마저 생각이 안 나 버벅거렸다. 이미 입국장은 나와 그녀를 중심으로 무대가 형성되어 런던으로 들어오려던 사람도 그곳의 직원들도 모두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많은 나라를 여행했지만 이런 모욕은 처음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갑자기 그녀는 벌떡 일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때 옆의 젊은 직원이 다가오더니 들어가도 좋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입국이 허락된 거냐고 묻고 또 물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끔찍한 그곳을 통과하고, 모욕으로 부들거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의자에 주저앉아 눈물을 쏟았다. 다른 직원이 달려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머리가 아프다 호소했고, 직원은 약을 가져다주었다. 그 아슬한 경계의 곳을 통과하고 마음을 다잡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무엇부터 해야 할까..

통과되었으니 지하철을 타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돌아갈까?

아니면  지금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모지?

주변의 학생들에게 수 없이 이야기를 듣고, 조심하라는 딸의 잔소리가 진짜 나의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음..

사과를 받아야겠다!


다시 괜찮으냐 물으러 온 직원에게 아까 그녀를 불러 달라 했다.  기다려 보라며 사라진 직원은 혼자 돌아왔다. 그녀는 오지 않겠다 한다. 그럼 더 높은 사람 그러니까 슈퍼바이저, 캡틴을 불러 달라 했다. 잠시 후 직책이 있어 보이는 여자 간부가 왔다. 최대한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 떨리는 마음을 다 잡고 또박또박 말을 이어 나갔다.

"너희 직원이 나를 모욕했으며,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나라를 방문했지만 이런 모욕은 처음이다. 이것은 인종차별이다! 사과를 받아야겠으니 그 직원을 불러 달라!"

결국 그 직원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 간부가 대신 사과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히드로 공항 공식 사이트에 항의의 글을 보내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고 그녀가 알려준 사이트에 항의의 글과 그 직원에게 페널티를 주라는 내용을 보냈다. 아주 강렬하게!(나보다 영어를 10배는 잘하는 딸이 썼다)

차츰 마음도 가라앉고 기억도 가물가물해지고 있을 때, 답이 왔다.

깊은 사과와 함께 약간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것이다.


히드로 공항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유학생이나 여행객은 입국심사를 받을 때 긴장한다. 특히 혼자 오는 여자는 요주의 인물인데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운이 안 좋아 까다로운 사람에게 걸리면 입국이 안 되는 사례가 많고, 정말로 아주 가끔은 테러리스트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서슴지 않는 영국인(특히 중 노년의 금발)도 많고, 미국식으로 영어 하는 것 또한 경멸한다.


여행은 더 행복하기 위해, 이렇게 거창하기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쁨과 설렘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느긋함과 여유로운 여행의 기대는 이런저런 예기치 못한 상황과 맞닿으며 심각한 불쾌감을 주기도 한다. 인종차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탱탱한 자존심의 탄력이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며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경험이다.







P.S.

그 후로 7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시간도 1주년? 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지라 다시 히드로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싶다. 악몽 같은 기억이 그리움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런던의 거리를 활보하고, 기억에 남아있는 지하철 노선을 곱씹으며 뮤지컬을 보고, 미처 가보지 못한 박물관과 갤러리를 방문하고 싶다. 쨍한 햇살이 눈부셔 선글라스를 쓰고 이마를 찡그리다,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에 우산을 펼쳐보고 싶다.

무엇보다 마스크 없이 빨간 버스를 타고, 흔들리는 몸을 부대끼며 의심 없이 런던의 거리를 냄새 맡고 싶다.




photo by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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