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인슈페너 Feb 19. 2021

런던의 쌀국수

맛집과 몸살

2014년 8월 어느 날.

나는 쌀국수 집을 찾아 런던의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약 기운이 떨어졌는지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허기진 몸이 바닥에 드러누울 것만 같았다.

결국 딸에게 전화를 했다.


, 그때 우리 같이 갔던  국숫집이 ‘본 스트리트(Bond Street)’ 있는  맞지? 아무리 찾아도 없어!”

엄마! 아니지! 어디서 내린 거야!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내리면 바로 오른쪽에 나이키가 있고,  길로  가다 보면 식당이 보일 거야.”

“아! 맞다! 지하철을 거꾸로 탔네!”


딸은 쌀국수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냐고 깔깔거리며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 나는 쌀국수가 나의 생명의 양식이라도 되는 듯 그 식당을 간절히 찾고 있었다.

1월에 영국에 온 둘째는 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갔고, 그 후로 큰  아이가 잠시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갔다. 결국 나만이 런던에 남아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무슨 짐이 그렇게 많고 정리할 것이 쌓였는지,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그때 절절히 먹고 싶은 것이 쌀국수였기에,  영국에 있는 엄마가 한국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의 위치를 물어보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영국의 음식은 맛이 없다. 매우 짜거나 달고, 대표적인 음식이라고 해야 피시 앤 칩스(Fish & Chips) 정도이다. 여행 중 음식과 숙소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숙소이다. 배가 고프면 적당히 끼니를 때워도 되지만 숙소는 깨끗하고 예뻐야 한다. 취향이 비슷한 둘째와 나는 지나가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으면 들어갔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영국의 음식은 맛이 없다!’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달랐다. 서울의 지도를 맛집으로 기억한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큰 아이가 런던에 오고 나는 그렇게 많은 맛집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스페인, 베트남, 중국, 멕시코 등 다양한 나라의 식당을 데리고 갔다. 그중 하나가 쌀국수 집이었는데 아직까지 내 인생 최고의 쌀국수이다!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에서는 ‘로널드 B. 토비아스의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에 대해 소개를 하는데 ‘추구의 플롯’이 가장 오래된 플롯이라고 이야기한다

.

여행을 할 때는 누구나 자기 만의 플롯을 가지고 길을 떠난다. 해외여행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여행사를 통해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개인의 플롯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선진화의 대열에 들어서며 확실한 플롯을 추구하는 여행이 주를 이루었다. 혼자 배낭여행을 하는 것은 물론 문학이나 음악, 미술, 와인, 스포츠 등 특정 제목의 패키지 상품이 나왔다. 이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그만큼 다양한 욕구가 여행을 통해 충족되길 바란다는 뜻이다.

 

들인 만큼 보상을 바라는 양적 충족(더 많은 곳을 보기 위해 짐짝처럼 버스에 태워져 달린다거나, 루브르 박물관을 1시간 만에 나오는 것 등)에서 질적 충족(와이너리에서 다양한 와인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고, 오르세 미술관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 즉, 자신의 플롯에 따라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영국에 왔을 때는 ‘나만의 독립된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과 최대한 다양한 예술에 나를 노출시켜 공허한 결핍을 채워보자!’ 는 것이었다. 세 모녀가 시간 차이를 두고 영국에 머무르며 각자가 추구하는 플롯은 달랐고, 서로의 플롯을 넘나 들며 풍부한 영국의 이야기는 다채로와졌다.


맛집은 나의 관심 밖이었고 심지어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했지만, 음식은 문화의 중요한 한 형태로 여행자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고 때로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처음 영국에 도착 한 4월의 날씨는 스산했다. 시리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았다.

냉랭한 거리는 ‘왜? 넌 뭐야?’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알 수 없는 몸살 기운에 시달리며 매일 타이레놀을 먹고 학교에 갔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향수병(homesick)이라는 단어가 떠 올랐다. 이런 게 향수병인가? 집 떠난 마음의 호소가 이런 것인가!  

독일로 유학을 온 후 30년 가까이 살고 있는 여동생의 말대로 유학생은 한 달 이상 더럭더럭 이유 없이 아파야 낫는다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영국에서의 시간은 몸살과 외로움 그리고 나의 플롯을 다 이루지 못한 후회로 메워져 어색하게 출국 날짜를  앞에 두고 있었다.




딸의 설명대로 쌀국수 집은 그 자리에 있었다. 빼꼼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종업원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추운 겨울, 난로가에 꽁꽁 얼은 몸을 녹이고 뜨거운 가락국수 국물을 홀훌~~ 소리 내어 마시듯 땀을 흘리며 쌀국수를 먹었다. 진한 국물과 인심 좋게 들어 있는 큼직한 고기 덩어리가 내 몸 곳곳에 영양분을 실어 나르는 기분이었다. 열이 나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서럽게 끙끙거렸는데, 쌀국수 한 그릇으로 신기하게 나는 기력을 회복하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방구석 여행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