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가락이 숟가락에게 물었다.
“너는 얼굴이 왜 그렇게 동글동글해?”
숟가락이 뽀로통한 표정으로 묻는다.
“너는 왜 그렇게 비쩍 말라 길쭉해?”
뽀얀 밥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나오자, 숟가락은 얼른 몸을 일으켜 동그란 얼굴에 정성스레 담아, 주인의 입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러자 젓가락은 금방 묻혀 풀 냄새가 가득한 봄나물을 날쌔게 잡아, 주인의 입 속에 담아 준다. 주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러기를 반복하며 경쟁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밥그릇이 비웃듯이 이야기한다.
“정말 한심하다. 주먹만큼도 안 되는 것들이. 내가 없으면 이 맛난 밥을 담을 곳이 없어! 주인은 굶고 말 거야.”
하얀 쌀밥을 담아서 인지, 매끈매끈한 질감의 광채가 흐르는 밥공기가 눈을 반짝이며 웃는다. 한눈에 보아도 도도한 자태의 도자기이다. 옆에는 한 쌍으로 보이는 비슷한 빛깔의 국그릇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 도도한 자태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데, 묵묵히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밥공기의 말씨름을 네 개의 다리로 바치고 있던 테이블이 한 마디 한다.
“내가 말을 안 하려 했는데, 내가 없어 봐! 너희들은 어디에 놓일 것이며, 주인은 어디서 식사를 하지?”
나무의 결을 그대로 간직한, 은은한 갈색 빛의 테이블은 한눈에 보아도 힘이 잔뜩 들어간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작품 같았다. 그의 아우라에 기가 죽고, 듣고 보니 맞는 말 같아 숟가락과 젓가락 그리고 밥공기는 고개를 숙이고 죄지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사는 휴식이야! 너희들이 무엇을 모르는 모양인데 서서 밥을 먹을 수는 없어! 하루 종일 고생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가 없어 봐. 주인은 어디서 쉬니?”
금빛 프레임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비단 천을 두른 의자가 말했다.
모두가 숨을 죽이고 화려한 의자를 바라보는데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거 같다.
그 우아한 장식 앞에 모두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해야만 할 까? 저런 곳에 나의 엉덩이를 기대고 쉴 수만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아닐까? 자신도 모르게 모두들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어디선가 화려한 불빛과 조명이 춤을 추더니, 음악과 유쾌한 말소리가 쩡쩡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하하하하!!!! 정말 미치겠네!”
모두 그 소리와 조명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TV가 우스워 죽겠다는 듯 배를 움켜쥐고 있다.
“주인은 나를 제일 좋아해! 나를 보며 웃고 울고 박수도 치고, 모든 대화를 나하고 해! 삶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소통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부터 찾아!”
그러고 보니 주인은 현관문을 열고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TV 리모컨부터 손에 쥔다.
“알겠지? 아마도 주인은 너희들 없이는 살아도 나 없이는 못 살을 걸?”
다시 한번 찬란한 빛을 쏘아 대며,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주인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젓가락과 숟가락이 회의를 했다.
“아무래도 우리가 이 집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거 같아.” 숟가락이 훌쩍이며 말했다.
“내 생각도 그래. 외모도 형편없고, 우리가 가장 초라해.”
“주인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아. 왜냐하면 우리보다 훌륭한 물건들이 많아,”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새 젓가락이 울고 있었다.
둘은 조용히 가방을 싸고 집을 나왔다. 아직 동이 터 오기 전이라 밖은 파랗기만 했다.
아침이 되자 주인은 다시 TV를 켜고 아침 뉴스를 듣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려는데 아무리 찾아도 숟가락과 젓가락이 없다. 밥공기와 테이블, 의자 그리고 이제는 TV까지 초조히 기다리는데 주인은 휑하니 아침 상을 그대로 두고 나가버렸다.
집안의 정적이 흐르고, TV만이 혼자 열심히 떠들고 있다.
그날 밤도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주인은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늦게 들어왔다.
집 근처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고, 저녁에는 맛 집으로 소문난 집을 찾아 식사를 하고, 늦은 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며 울고 웃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 온 주인은 TV 리모컨은 건들지도 안은 채, 잠자리에 들고 다음날 출근을 한다. 이와 같은 일상이 반복되자, 밥그릇과 테이블 의자 그리고 TV까지 모두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낸 어느 날,
주인이 갑자기 일찍 들어왔다. 현관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모두들 긴장하여 주인을 지켜보는데, 어디서 찾았는지 젓가락과 숟가락을 소중히 손에 쥐고, 싱크대 수돗가에서 열심히 닦고 또 닦는다.
말끔 해진 숟가락과 젓가락이 나란히 테이블 위에 놓이자, TV의 시끄러운 세상 소식과 함께 주인은 열심히 밥을 먹는다. 동그란 얼굴의 숟가락이 밥을 담아 입에 넣어 주고, 방금 구운 불고기를 젓가락이 날렵하게 입에 넣어 준다.
테이블은 있는 힘껏, 안정적으로 모든 것을 받쳐주고, 의자는 편안한 자세로 허리를 기댈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갑자기 TV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주인이 밥을 입안 가득 담고, 웃기 시작한다.
모두가 따라 웃는다.
뽀얀 밥공기와 우아한 테이블, 멋진 의자가 젓가락과 숟가락의 손을 꼭 잡는다.
다시 한번 모두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