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인터넷 그리고 공간의 의미
국내외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통해 나름 숙소에 대한 철학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경험은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게 되었을 때 교과서와 같은 역할을 하였고, 모든 여행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나의 스토리텔링에 공감하는 친구를 찾는 마음을 갖게 하였다.
숙소는 깨끗해야 한다.
예쁘면 좋고
전망이 멋지면 더욱 좋고
감성이 있으면 더더욱 좋고
문화와 예술이 있으면 더 더더욱 좋고
추구하는 미래의 가치가 있다면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숙소에만 있어도 좋다.
하지만 이것은 희망사항이고, 이 모든 것을 충족시키는 숙소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이 가운데 한 두 가지만 만족시켜도 좋은 숙소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른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여행객도 많다. 종교적 체험을 하는 성지순례나 스포츠를 즐기기 위한 여행, 좋아하는 예술가의 흔적을 따라 떠나는 여행, 세계적인 전시나 행사를 보기 위한 여행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여행이 있다. 그 가운데 숙소의 컨디션을 여행 자체의 목적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위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지만 나는 숙소를 예술적 감성이 묻어나는 공간으로 꾸몄다. 에어비앤비라는 플랫폼을 통해 숙소가 공개되자 대부분의 게스트는 만족하는 후기를 남겨 주었고, 감사의 편지를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주문진 시장에 다녀왔던 게스트 중에는 제철이었던 생선을 하나하나 손질해 냉동실에 넣어 두고 간 분도 있었다. 에어비앤비를 그만둔 지금도 가끔 숙소에 오고 싶어 하는 게스트가 있는 것을 보면 중간 점수는 되는 듯하다.
누군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나의 공간에 와서 쉬고, 즐기며 만족한 여행을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 너무 뿌듯하고 감동스러웠다. 그들은 나의 스토리 텔링을 이해하고 내 집에 머무는 순간 기꺼이 나의 친구가 되어 준 소중한 인연이었다. 간편하게 호텔을 이용하는 여행객도 있지만 호스트와 공감대를 유지하며 숙소 체험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 숙소는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닌 이야기를 만들고 자신의 맨 얼굴을 내어 놓고, 마음을 두고 가는 공간이 되고 있다.
초기 해외여행이 막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여행사를 통해 점선처럼 이어진 관광지를 짐짝처럼 버스에 실려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1994년 첫 미국 여행을 했을 때이다. 30명이 넘는 인원이 연령, 성별, 취향, 여행의 목적과 무관하게 시차로 비몽사몽 버스에서 잠을 자고, 관광지에 도착하면 사진을 찍었다. 어떤 날은 7시간 버스를 타고 그랜드 캐년에 가서 30분 사진을 찍고 온 날도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닌 그랜드 케년에서! 숙소의 기대는 고사하고 식사 또한 형편없었다. 새벽 4~5시에 일어나야 하는 것은 다반사이고, 눈을 비비며 먹었던 배춧잎 몇 장 둥둥 떠 있던 누런 된장국이 생각난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고역이었고,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가장 일찍 일어나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 타 계셨다. 대부분 효도관광을 오신 분들이었고, 언제나 지각은 젊은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불평을 늘어놓는 여행자는 없었다.
특가 상품으로 나온 아주 저렴한 패키지였고, 환대받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가지고 오지도 않았으며 대부분 미국 여행이 처음이라 이곳에 발을 디뎠다는 것만으로도 황홀할 따름이었다.
‘내가 미국에 왔어! 여기가 LA 공항이야! 이곳이 그 유명한 헐리우드야!’ ‘미국이라니까! 미국!!!
한마디로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고기 반찬은 없지만 밥은 고봉으로 퍼 주던 소박한 밥상 같은 여행이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 초창기의 패키지여행은 낭만을 배제한 노동과도 같았다.
지금의 시대는 웬만히 가보고 싶은 곳은 다 다녀왔고, 여행자의 수준도 너무 높아졌기에 저마다의 개성으로 기상천외한 여행을 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도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 상상도 못한 플랫폼을 통해 공간과 시간의 이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정보와 인간 그리고 인터넷의 연결은 공간에 대한 가치의 변화를 가져왔다.
여행자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공간을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호스트의 철학과 숙소의 사진, 주변 환경, 편의시설, 건강과 안전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또한 다른 게스트가 남긴 후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용자 경험’을 하게 되고, 객관적 평가를 하며 취향에 맞는 숙소를 인터넷을 통해 예약한다.
숙소의 다양성에 대한 호기심은 여행의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할 때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서 호텔의 작은 방은 견디기 힘든 장소가 되어 버렸다. 공간의 여력이 없고, 침대가 방의 반이상을 차지하는 호텔에서는 여행의 자유가 구속받는 느낌이 들고 상상력 역시 구겨지고 말기 때문이다.
포스트 코로나
공간의 미래
정보
인간
인터넷
공유 경제 등
이 모든 것들이 ‘여행하는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문득 궁금해진다.
집 근처 개울가에 발을 담그는 것만으로 만족하던 때가 있었고, 조금 멀리 바다나 산에라도 갈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었고, 해외여행을 한다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세상은 나의 속도와 달리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지난 일이 되어있다. 자꾸만 뒤처지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느낌일까.
여행이라도 골치 아픈 세상에서 생각이란 것을 안 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과 인터넷이 너무도 촘촘히 얽혀 있는 지금의 시대는 여행조차 낯선 공간에 '또 다른 나'를 만드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이란 마지막 남은 인간성에 호소하는 쉘터(shelter)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며 다시 어디론가 떠날 궁리를 한다.
photo by 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