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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03. 2023

백발전용카페 백수전용카페

백(白)다방의 의미

 아침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오는 나에게 아내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 오늘 우리 가볼 데가 있어. 멀리서 들려오던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막상 표정을 대하고 보니 밝게 웃는 모습이 나쁜 일은 아닌 듯 보였다. 난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내 쪽을 향해 눈과 귀를 모았다. 아내의 입에서는 예상 밖의 말이 툭 튀어나왔다. 저기 전통시장 입구에 중국집 있잖아? 아, 글쎄 얼마 전에 문을 닫고 인테리어 공사를 하더니 그곳에 카페가 새로 들어섰대. 조금 있다가 거기 한 번 가보자. 커피 값도 1,500원이라니 얼마나 좋아? 요즘 같은 불경기에 상가의 업종이 바뀌는 것쯤이야 흔한 일인데다, 유동인구가 좀 있다하는 곳이면 세 집 건너 한 집이 카페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에 그게 뭐 큰 뉴스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에 커피 한잔이 식생활만큼이나 습관화 되어있었을 뿐 아니라 동네 주변의 온갖 카페를 누비고 다니며 마셔대던 우리에게는 조금 달랐다. 더군다나 그 장소가 거의 매일 생쥐 풀 방구리 드나들 둣하는 전통시장 근처라니. 아내의 말에는 앞으로 그 카페를 단골로 삼음으로써 커피비용의 절감은 물론 더 이상의 무익한 카페방황을 종식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숨겨져 있었다.

 늘 그렇듯 낯설음은 호기심을 유발해 새로움과 신선함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카페의 노란색 건물외관과 하얀색 인테리어는 깔끔한 인상을 주었고 널따란 내부는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앞면은 전체가 유리로 되어있어 바깥풍경이 훤히 내다보였고 벽 쪽으로는 좌석마다 전원을 사용할 수 있는 콘센트까지 설치되어있었다. 또 한쪽구석에 설치된 화장실은 볼일을 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는 수고를 덜어줄 뿐 아니라 세면기며 거울 같은 것도 고급스러워 호텔을 방불케 했다. 입구에는 키오스크가 설치되어 굳이 종업원과 대면하지 않고도 음료를 주문할 수가 있었고 그것에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을 위해 별도의 주문코너도 있었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사용하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한 번 오면 두세 시간씩 시간을 보내다 가는 우리에게 그보다 더 좋은 환경이 있을 수 없었다. 거기다 아내의 말처럼 커피 값은 다른 카페의 3분의 1 수준인 1,500원이었고 빵이며 디저트의 가격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쌌다. 

 카페를 찾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잦아졌다. 입소문을 탄 탓인지 우리말고도 카페의 손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장바구니를 든 채 들르는 아줌마 부대가 있나 하면 산악자전거복장으로 자전거와 함께 온 동호회원들도 있었다. 돋보기안경에 주름 가득한 얼굴로 함께 모여 마음껏 수다를 떠는 할머니 무리들은 물론 입구에서 전동스쿠터를 주차시키는 할아버지도 보였다. 대부분이 백발이 성성한 중년 이상 노인들이었지만 드문드문 취업준비를 하는 듯한 젊은이도 끼어있었다. 그걸 보면서 우리끼리는 카페의 이름을 백(白)다방이라 불렀다. 스타벅스를 별다방으로, 엔제리너스를 천사다방으로, 투썸플레이스를 쌍다방으로 칭했던 것처럼 백발전용카페 겸 백수전용카페라는 의미로.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난 뒤였다. 근처의 사거리 모퉁이에 또 하나의 카페가 생겼다. 유명 프랜차이즈였다.  그곳도 백다방과 똑같이 1,500원이라는 싼 커피 값을 내걸며 영업을 개시했다. 도시의 인구가 갑자기 늘 리 없고 커피를 마시는 수요자가 급격히 늘 리 없는 상황에서 공급자가 두 배로 늘었으니 백다방의 매출이 줄어드는 건 당연했다. 시끌벅적하던 실내가 조금씩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드문드문 빈자리가 보이는 날이 늘어갔다. 그럼에도 백다방은 선전했다. 건너편의 가게에 비해 커피 이외 매출품목의 가짓수가 월등히 많은 까닭이었다. 새로운 카페라는 관점에서 우리 또한 단골을 바꾸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던 건 처음 맺은 인연이라는 의리감에서가 아니라 그곳에 비해 넓은 실내공간을 자랑하는 백다방이 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글쓰기를 일삼는 나에게는 손님이 줄어든 백다방이 오히려 더 나은 환경이기도 했다.   

 두 카페의 경쟁은 그럭저럭 소강상태를 유지하는 듯했다. 카페사회에도 물리학의 법칙이 작용했다. 그 어떤 체제든 안정적인 상태가 되면 엔트로피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균열은 근처에서 이미 영업 중이던 또 다른 카페로부터 생겨났다. 그곳의 커피 값은 4,000원이었지만 어느 날 불쑥 그 가게 앞에는 50퍼센트 할인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브랜드 인지도를 감안하면 파격적인 제안이 아닐 수 없었다. 증가한 엔트로피가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백다방은 일부 고객을 또 내주어야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위기감이 커져갔다. 그건 그들의 위기감이기도 했지만 우리의 위기감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가는 모처럼 찾은 좋은 생활공간을 잃을 공산이 컸다. 아무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생성, 발전, 성숙, 퇴화의 수순을 피할 수 없다지만 백다방의 퇴화만은 늦춰졌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지속성장가능하지는 않더라도 지속가능만이라도 해주었으면 바랐다. 

 어느새 백다방에 도착하기만 하면 손님 수를 세어보는 것이 버릇처럼 되었다. 빈자리가 늘어나 있으면 괜히 백(白)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자책이 일었다. 흰색이라는 말에는 비었다는 공백의 의미도 포함되어있기 때문이었다. 다소 우울해진 마음으로 키오스크 앞에 서서 주문을 할 때였다. 여느 때처럼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두 잔 주문했다. 결제화면으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아내가 나를 멈춰 세웠다. 오늘은 크림빵도 먹고 싶어. 크림과 단팥이 가득 든 그 크림빵은 백다방의 인기메뉴 중 하나였다. 난 아내의 의도를 즉각 알아차렸다. 화면 속에서 크림빵을 누른 내 손이 그 옆에 있는 샐러드 빵까지 눌렀다. 고객수를 늘리는 것 말고도 매출을 올리는 방법은 또 있었다. 주문서를 키오스크에서 빼들며 난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이제부터는 더 자주 이곳에 오자. 아니 내일부터는 아예 매일 이리로 출퇴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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