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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05. 2023

진보와 보수,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요즘 서울의 광화문 근처는 연일 시위를 하는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그들 대부분이 정치적인 이슈를 쟁점으로 들고 나온다. 한쪽에서 국정의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정부를 비방하는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국정의 발목을 잡지 말라며 정부에 힘을 실어주려는 집회가 열린다. 그들은 제각각 자기의 주장이 옳다며 열변을 토하는 걸 넘어서 마이크의 볼륨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린다. 정작 행인들은 거기에 별 관심도 없는데 그들의 소리는 가청 데시벨을 넘어 불특정 다수를 난청에 이르게까지 만든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을 진보와 보수라는 말로 표시한다. 반면 서로가 상대를 일컬을 때는 그 단어가 백팔십도로 바뀐다. 한쪽에서는 다른 쪽을 꼴통이라 비하하고 반대쪽에서는 좌빨이라 누명을 씌운다. 거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나름 근거까지 들먹이긴 하지만 그것이 억지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서로를 향한 선정적인 비방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친일 친북이라는 매국노 프레임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과연 그들이 진정한 진보와 보수의 의미를 알고나 있는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각 세력의 대표라는 두 사람이 나와 토론하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그때 사회자가 두 가지 이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둘 모두 한 치의 오류도 없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평등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우위에 두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말이었다. 평등을 우선하면 진보, 자유를 우선하면 보수라고. 누군가는 운동과 관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비유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원래 정치가들이 죽어서도 입만큼은 썩지 않는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생각했다. 왜냐면 그들이 내세우는 정책 가운데는 그것과 전혀 반대의 것들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일일이 거론할 수는 없지만 양대 세력 모두 선거철만 되면 자신들의 정체성과는 정반대의 선심성 공약을 수도 없이 남발해온 것쯤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기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이념이 바꿈과 지킴이라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정하거나 의심하지는 않는다. 자유와 평등 중 어느 쪽을 우위개념으로 두고 있느냐를 두고 잘못되었다고 반박할 의도도 없다. 색깔로 나타낸다면 진보는 하양이고 보수는 까망이다. 하양은 어떤 색이든 덧칠할 수 있어 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까망은 어떤 색으로 덧칠해도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두 가지 색은 확연하게 대비가 된다. 그런가 하면 정치인들이 표방하는 색깔은 진보든 보수든 망라하고 모두가 회색이다. 그것도 모자라 그 회색은 진하고 옅은 정도조차 구분하기 힘들 지경이다. 그저 자기 것은 올바른 회색이고 남의 것은 틀린 회색일 뿐이다. 하양도 까망도 다 제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얄팍한 술수에만 눈이 멀어있다.

 그걸 합리화시키기 위해 그들은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중도라는 낱말을 도입해 그것이 마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는 최고의 대안인 양 떠벌이기까지 한다. 그럼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비아냥대는 소리가 들리자 이번에는 또 새로운 말을 지어낸다. 중도진보, 중도보수라는 말들이 그것이다. 세월이 더 흐르면 중도 몇 제곱 진보, 중도 몇 제곱 보수라는 단어가 생길지도 모른다. 페인트의 색상을 구별하는 세계표준 중에 먼셀넘버라는 것이 있다. 정치인들에게도 그들이 간직한 회색의 진하고 흐림에 그와 같은 넘버가 부여될 세상이 머지않은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세상에 절대 선(絶對 善)이란 없다. 자유와 평등도, 바꿈과 지킴도 둘 중 어떤 것이 우위에 있느냐를 판단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하나하나는 개인이지만 사회라는 집단을 이루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또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지만 물을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흐르는 물을 가둬두고 지키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정답이 없는 질문에도 해답은 존재하는 법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선택지 역시 다르지 않다. 진보와 보수라는 명분에 매몰되어 한쪽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시기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선택하면 된다. 정당 또한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을 절대강령처럼 취급하지 말아야한다. 정당과 정치인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정책으로 내세우면 되는 일이고 그들을 뽑는 시민들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에 표를 던지면 된다. 그리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면 끝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자기가 가진 정치적 신념만은 끝까지 관철시키려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이런 경우 대부분은 비뚤어진 마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절대다수가 지지할 거라는 자신감이 있다면 굳이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신으로 남을 설득해 승리할 수 있다면 그리 하면 될 일이다. 결과가 불투명하다보니 은근히 회색빛을 내세우며 이쪽저쪽을 오가는 것이다. 그런 상황이니 져도 승복할 리 만무하다. 편법이 편법을 조장하고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듭을 묶은 자가 나서야한다. 모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어떤 연유에서든 우리가 그런 정치인들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 때에 따라 자신의 입장을 시시각각으로 바꾸는 흐리멍덩한 기회주의자만은 선택하지 말아야한다. 설령 진보와 보수의 경계에 있는 사람이어도 좋다. 소신이 확고해 자신이 서있는 위치를 명확하게 한다면 그곳이 어느 쪽에 치우쳐있든 상관없다. 회색이어도 명도와 채도, 색상이  확실하다면 그 역시 선택받아 마땅하다. 모든 것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려는 이분법적 사고도, 나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도, 그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는 광대들도 더 이상 매스컴에서 보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들이 반드시 이뤄내야 할 지상최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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