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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07. 2023

저스트 인 타임 커피제공 서비스

 실직의 아픔을 겪을 때였다. 매일 집에서 아내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만의 도피처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집 근처에 있는 아담한 카페를 하나 발견했다. 산책을 하다 커피생각이 간절해 멋모르고 찾았는데 의외로 커피향이 향긋했고 2층의 공간에는 사람들이 드물어 이것저것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편안했다. 커피를 무료로 리필해준다는 점도 좋았다. 나만의 아지트로 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날 이후 매일같이 오후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 더러 이력서며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기도 하고, 혹시나 입사제안을 하는 회사가 있을까 텅 빈 메일함을 열어보기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사이트들을 배회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카페는 나의 조그만 사무실이자 보금자리로 변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1층의 카운터 앞에 섰을 때였다. 아르바이트생이 깍듯이 인사를 하며 아는 체를 하더니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건넸다. 2층 계단옆 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계단이 바로 옆에 있기도 하거니와 바깥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어두운 자리라 사람들이 거의 앉지 않는 그곳은 내가 매일 앉는 자리였다. 카운터 바로 옆에 놓인 태블릿 화면에는 CCTV를 통해 비쳐지는 2층의 공간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걸 통해 그는 나를 주시해왔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쾌한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그가 나를 단골로 인정해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것이라 여겼다. 

 상관없다고 말하자 그는 또 한 번 정곡을 찔러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드실 거죠? 즐겨 앉는 좌석을 꿰고 있을 정도면 즐겨 마시는 음료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할까? 이번에도 난 그저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하긴 매일 같은 패턴을 반복하는 칸트의 생활을 일삼았으니 그다지 놀랄 일도 없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난 카페에 들어서면서 별도의 주문을 할 필요조차 없었다. 

 며칠 후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주문을 마쳤는데 그는 주문한 음료가 준비되었음을 알리는 진동벨을 주지 않은 채 신용카드만을 되돌려주었다. 의아한 표정을 짓는데 마치 그 이유를 설명이라도 하듯 그가 말했다. 커피 바로 드릴게요. 2층까지 올라갔다가 커피가 준비되면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커피를 받아가야 하는 불편을 매번 느끼던 나로서는 여간 반갑지 않았다. 오늘따라 다른 사람이 앞서 주문했다가 취소한 커피가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나의 그 추측은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그는 미리 주문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결제와 동시에 커피를 내게 안겨주었다. 내가 오는 시간을 예측하고 미리 커피를 추출하는 것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럴 확률은 적었다. 왜냐하면 시간의 정확도 측면에서 난 칸트가 아니라 칸트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이 풀린 건 며칠이 지난 뒤였다. 카페의 문을 밀고 들어서는데 그는 벌써 원두를 분쇄기에서 갈아 용기에 분말을 담은 후 커피머신에 장착하고 있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으니 분명 내 커피를 준비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카운터에서 카페 앞 사거리가 훤히 보이는 만큼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발견하고는 준비에 임한 것이리라. 별 것 아니지만 1,2층을 오가는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는 그의 마음씀씀이는 고마워하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날따라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는 점이다. 속 쓰림이 심해 병원에 갔다가 역류성식도염이라는 진단을 받고는 약물을 복용하는 동안 탄산과 커피를 자제하라는 소견을 의사로부터 들은 것이다. 난감한 가운데 카운터 앞에 섰다. 그의 입에서 예의 그 질문이 나왔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드시고 가시죠? 쉬 대답이 나오질 않았다. 아니라고 답해야하지만 그가 당혹해할 모습이 걱정스러웠고 그렇다고 답하자니 의사의 말이 귓전을 맴돌았다. 잠시 망설였지만 난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하고 말았다. 

 그날 난 주문한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그렇다고 쓸데없이 낭비한 돈이 아깝지도 않았다. 그의 친절비용으로 여기면 그뿐이었다. 다만 당장은 며칠 계속 커피를 마시지 못할 터인데 오늘처럼 계속 커피를 버릴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내일부터는 미리 커피를 준비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남의 영업비밀을 침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주문과 동시에 커피를 받을 수 있는 Just in Time 시스템을 포기해야한다는 점도 아쉬웠다.  

 해답은 단순한 곳에 있었다. 약을 복용해야하는 당분간 단골카페로부터 해방을 선포하는 방법이었다. 며칠간은 다른 카페를 찾아가기로 했다.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커피가 버려지는 일만큼은 피할 수도 있고 그의 친절을 수포로 돌리는  일도 막을 수 있었다. 집으로 가기 위해 커피 잔을 반납창구로 밀어 넣을 때였다. 안녕히 가세요.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난 고개를 돌려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다. ‘내일 봐.’가 아니라 ‘다음에 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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