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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09. 2023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오감(五感) 활용법

 동유럽을 여행할 때였다. 마지막 날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을 찾았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궁전이지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키스’라는 작품이 전시되어있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나의 방문목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점 역시 그 그림의 관람에 있었다. 그림은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황금빛 색상은 말할 것도 없고 여인의 구부러진 발가락 끝 모습에서는 첫 키스의 경이와 황홀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마치 내가 그림속의 여인이 된 듯 진한 감동이 물밀 듯이 밀려오기도 했다.  

 벅찬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관람을 이어가는데 이번에는 세로방향으로 길쭉한 캔버스에 그려진 한 무리의 그림이 시야에 잡혔다. 모두 다섯 개였는데 그림마다 반나체의 여인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을 뿐 아니라 화풍이며 배경이 비슷해 연작으로 보였다. 전시된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예사로운 그림이 아닐 거라는 생각은 잠시 들었지만 ‘키스’에 비하면 그저 평범할 따름이어서 한 번 쓱 눈길을 주는 것으로 방문자의 예의를 대신하며 무시하고 지나쳐갔다. 

 내가 그 그림을 평가 절하한 배경에는 이유가 있었다. 비록 미술백치이긴 하지만 나에게도 나름 평가의 기준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건 특별히 어디서 배워 습득한 것이 아니라 남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것이었다. 거기에 따르면 훌륭한 작품은 다음의 세 가지 사항 중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을 충족시켜야했다. 보는 순간 아름답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거나, 아무나 쉽게 흉내 낼 수 없거나, 무언가 강한 메시지가 전달되어오거나. 그 그림은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여인들이 예쁘긴 했지만 그걸 아름다움으로 치부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았고, 어떤 화가도 그런 종류의 그림은 그릴 수 있어보였으며, 작품 속에 숨겨진 뜻을 짐작하는 일 또한 어려웠다. 그러니 관심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지나다 우연히 옆에 붙은 그림의 설명을 보게 되었다. Hans Makart / Five Senses. 아니나 다를까 화가의 이름은 발음조차 빨리 할 수 없을 정도로 낯설기만 했다. 다만 제목이 전해주는 느낌은 조금 달랐다. 오감(五感)이라고? 그림의 수와 일치하는 다섯이라는 숫자에 호기심이 일어났다. 고개가 저절로 그림을 향해 되돌아갔다. 그때였다. 캔버스 하나하나에서 청각, 촉각, 시각, 미각, 후각의 다섯 가지 감각이 각각 나뉘어 이미지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난 멈춰 섰고 한동안 그곳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급기야 감상은 관찰의 단계로 접어들었다. 집중력은 자신의 행동으로 감각을 표현하는 다섯 명의 여인에게서 뚜렷한 차이를 발견하게 해주었다. 청각과 시각, 후각을 표현하는 여인들의 동작은 자연스러웠지만 촉각과 미각을 표현하는 여인들의 동작은 웬일인지 작위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것이야말로 이 그림의 핵심이 아닐까 싶었다. 귀, 눈, 코가 수동적 감각기관인데 반해 손과 입은 능동적 감각기관이라는 걸 알리려는 시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결코 다르지 않았다. ‘들린다’, ‘보인다’, ‘냄새 난다’ 는 피동적 표현이지만 ‘만진다’, ‘맛본다’는 그렇지 않다. ‘맛본다’를 입의 다른 기능인‘말한다’로 바꿔 표현해 봐도 마찬가지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둘 사이의 차이는 굉장히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었다. 인간의 행위 가운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대부분은 소극적 행위의 주체인 귀, 눈, 코를 통해서가 아니라 적극적 행위의 주체인 손과 입을 통해 이루어진다. 구설에 오르거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를 살펴보면 거의 모두 손과 입을 잘못 놀려서인 것이다. 그건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이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빚어지는 실수 때문이라기보다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의지에서 비롯된다는 걸 말해준다. 

 그림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신의 선물인 오감을 전해주는 감각기관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화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더욱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눈은 즐거움을 전해주고 코는 기대감을 안겨주며 귀는 깨달음을 선사하지만 입은 후회를 낳고 손은 말썽을 피우기 쉽다. 매사 눈과 귀와 코는 활짝 열어두되 손과 입은 가능한 묶고 닫아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날부터 한스 마카르트의 ‘오감’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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