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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24. 2023

나는 구독자가 자그마치 62명이나 되는 유튜버입니다.

 이런저런 연유로 늦은 나이에 SNS와 친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와 조금씩 멀어져가는 나의 생활에 그것은 나쁘지 않았다. 소박한 일상이 담긴 사진 몇 장에 평범한 문장 몇 개면 쉽게 글을 올릴 수 있어 좋았고 언제든 그것을 다시 꺼내볼 수 있어 좋았다. 거기다 팔로워나 친구들이 댓글을 달고 공감을 표시해주면 나름의 보람도 느껴졌다. 근교로 나들이를 가거나 해외여행 같은 색다른 경험을 할 때면 SNS활동은 서서히 습관으로 굳어져갔다. 

 770킬로미터나 되는 동해안의 해파랑길을 완주했을 때였다. 당연히 그 길을 걸으면서도 난 SNS로 소식 전하기를 잊지 않았다. 그 기록들은 책으로 출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SNS는 책 출간소식을 알리는데도 도움을 주었다. 가장 많은 축하인사를 받은 경로 역시 SNS였다. 축하객 중에 특별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댓글을 통해 나에게 유튜브 활동을 권했다. 다소 품은 많이 들겠지만 독자층을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유튜브는 내가 엄두를 낼 수 없는 분야였다. 남 앞에 나를 과감히 드러내야한다는 사실도 그랬지만 영상이라는 분야 자체가 나에게는 완전히 신천지였다. 동영상을 찍는 경험도 일천했고 더더욱 그걸 편집하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직업으로 삼을 처지도 아니어서 남을 고용하는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유튜브는 그저 희망사항으로만 남은 채 그 불꽃을 사위어갔다. 

 아내와 동유럽여행을 계획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이상한 제안을 해왔다. 여보, 우리 이번 여행에서는 동영상을 많이 찍어보자. 여행당시를 추억하려면 사진보다 그게 낫지 않겠어? 그 말은 유튜브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불쏘시개가 되었다. 난 여행을 하면서 사진과는 별개로 핸드폰의 동영상 버튼을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찌되든, 잘 찍든 아니든, 일단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가능성의 폭을 넓히는 길이었다. 

 유튜브 영상의 소스가 동영상만이 아님을 알게 된 건 동유럽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뒤였다. 지식의 확장 차원에서라도 영상편집에 대해 일자무식은 면해보자며 편집소프트웨어 활용강좌를 듣는 과정에서 난 사진을 슬라이드형식으로 넘김으로써 동영상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크리에이터를 향한 나의 희망이 결코 무모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영상의 필수요소라 할 수 있는 부연설명도 음성이나 내레이션이 아닌 자막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사진과 글과 책을 고스란히 영상의 세계로 옮겨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때부터 난 영상편집 배우기에 열을 올렸고 급기야 동유럽여행 중 첫 번째 여행지였던 프라하에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묶어 15분짜리 영상을 완성했다. 이어 유튜브에서 케니TV라는 채널을 개설한 후 그 영상을 첫 데뷔작으로 올리기까지 했다. 케니는 나의 영어이름이었다. 

 채널개설 소식은 아내에게 제일 먼저 전했다. 아내는 영문도 모른 채 나의 지시에 따라 TV를 켜고 자신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내 영상을 검색했다. 우린 나란히 앉아 영상을 시청했다. 비록 어설픈 면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지만 아내는 영상을 보는 내내 장면마다 떠오르는 기억을 혼잣말로 뱉어냈다. 재생이 끝나자 여행당시의 감동이 다시 전해온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행위도 마다않았다. 아내가 좋아요 버튼과 구독버튼을 꾹 눌렀다. 내 채널의 첫 구독자와 영상의 첫 시청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날부터 난 무딘 손으로 다른 여행 도시들의 영상을 계속 만들었고 일주일에 한 차례씩 어김없이 아내를 거실의 소파에 앉힌 뒤 시사회를 개최했다. 그때마다 만족해하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의 보람은 커져갔다.

 구독자수와 영상조회수를 늘리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퇴근한 딸아이에게 구독을 강요하는가 하면 아들내외에게도 채널링크를 문자로 보내며 구독 좋아요는 필수라는 말을 덧붙여 반 협박을 해댔다. 늘 이용하던 SNS를 통해 채널개소소식을 알린 것은 물론, 몇 안 되는 죽마고우들에게까지 문자를 보내는 추태까지 부렸다. 그럼에도 그 수는 좀체 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구독자는 겨우 50명에 도달해있었다. 매주 엄청난 시간을 쏟아 부은 결과치고는 못마땅했다. 구독자 한 명을 늘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채널을 열어볼 때마다 +1이라는 숫자가 간절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늘어야 할 구독자 수가 외려 줄어드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매일같이 초미의 관심사였으니 내가 숫자를 잘못 기억했을 리는 없었다. 분명 구독자는 전날보다 한 명 줄어있었다. 그때서야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나 실망스러웠으면 구독을 했다가 취소해버렸을까? 

 문득 일련의 사건이 교훈처럼 연이어 떠올랐다. 어느 날 매일같이 10킬로미터를 달리던 내가 그 거리를 늘리겠다며 12킬로미터를 달리기 시작했다. 며칠을 계속하자 허벅지에 통증이 찾아왔다. 난 근육이 발달하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무시해버렸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무리를 무릅쓰고 계속 달린 덕분에 사태는 악화되어 결국 난 일주일 간 병원신세를 져야했다. 쓸데없는 경쟁을 하는 바람에 문제를 일으킨 적도 있다. 평소의 스피드로 아침달리기를 하는데 뒤에서 나타난 다른 달리미가 나를 앞질러 갔다. 달리기라면 누구에게든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은 자만심을 부추겼고 난 그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오버페이스의 결과는 처참했다. 불과 3킬로미터를 못가 난 호흡에 문제를 일으켰고 평소 문제없이 달리던 거리마저 채우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때부터 나의 달리기 목표이자 페이스메이커는 ‘어제의 나’로 바뀌었다. 내 신체의 노화를 고려하면 그것이야말로 엄청난 진보가 아닐 수 없었다. 

 유튜브 구독자수 역시 똑같은 문제였다. 내 능력은 생각지도 않고 구독자수가 늘어나지 않는 것만 불평하고 있었다. 아내만 만족시킬 수 있다면, 우리들의 추억을 되새길 수만 있다면 그만이라던 초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구독자 수를 늘리려는 욕심에만 사로잡혀있었다. 정작 중요한 건 구독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찾아온 구독자를 놓치지 않는 일이었다. 난 목표를 즉각 수정했다. ‘+1’이 아니라 ‘0’을 고수하는 것으로. 그렇다고 목표의 달성이 수월한 건 아니었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영상을 업데이트하고 업로드해야 하며 그 질을 높여야 할 것이다. 

 오늘로써 나의 구독자는 62명이 되었다. 그건 나의 능력에 비추어보면 분명 과분한 수치다. 그렇다면 여기에도 상대성 원리를 적용시켜봄직하다. 나에게 있어 유지는 성장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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