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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Mar 21. 2023

독서근육 키우기 프로젝트

 운동을 열심히 하면 근육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근육은 기초대사량을 늘려 쉽게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만들어 멋진 몸매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보다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어 지구력을 키우는데도 도움을 준다. 이렇게 체력이 향상되면 쉬 지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다. 그야말로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셈이다. 

 근육에는 비단 이런 물리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신적인 활동에도 근육은 생성된다. 정치인들은 말하는 근육이 발달되어있고 성직자들은 기도의 근육이 발달되어있으며 작가들은 글쓰기 근육이 발달되어있다. 이런 정신적 근육 역시 오랜 세월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그걸 본보기 삼아 나도 독서근육을 키워보리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이른바 독서근육 키우기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책 한 권을 완독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독서는 습관으로 굳어갔다. 독서량이 많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책의 두께에 짓눌리지도 않게 되었으며 전집류의 책들도 쉽게 손이 갔다. 이 모든 것이 엉덩이의 힘이었다. 어떡하든 책과 마주하는 시간을 늘리려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었다. 그 와중에 나만의 독서법이 만들어졌다. 분명한 건 이런 독서법이 독서량과 독서의 질을 한층 높여주었다는 점이다. 

 내가 책을 선정하는 기준 중에 가장 우선시하는 것은 재미다. 물론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어떤 종류의 재미든 그걸 느낄 때라야 독서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지루한 책을 계속 잡고 있어봐야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다. 난 어떤 책이든 읽다가 지루함이 느껴지면 곧바로 그만두어버린다. 지루함은 독서의 최대 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를 본격적으로 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책 권하기를 요청하면 난 서슴없이 생활 속 수필집이나 단편소설부터 시작할 것을 추천한다. 유익하다는 이유만으로 처음부터 골치 아픈 철학서적을 대하거나, 재미가 있다고 해도 전집류나 엄청난 부피의 책과 마주한다면, 지레 포기해버리거나 시작도 하기 전에 겁부터 집어먹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을 했기에 하는 말이다. 

 책을 읽는 도중에는 집중력이 많이 요구된다. 그걸 위해 내가 읽는 책갈피 속에는 항상 메모지가 꽂혀있다. 거기에는 주로 등장인물들의 관계도가 그려진다. 외국서적이거나 두꺼운 책일수록 필요성은 더욱 커지는데 외국인들의 이름이란 게 우리에게 익숙지 않아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심심찮게 장애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 소설이 그러하다. 그들에게는 엄청나게 긴 본명 이외에도 애칭, 약칭들이 있어 여러 면에서 헷갈림을 안겨준다. 그런 측면에서 여러 가지 기호들과 함께 그려진 인물관계도는 인물, 사건, 배경을 이해하고 스토리의 기억을 이어가는데  필수불가결의 요소다.  

 메모 대상에는 가슴에 와 닿는 문구나 구절도 포함된다. 책읽기를 마치면 이것들은 따로 마련한 노트에 필사도 하고 외우려 노력도 한다. 그걸 기억하는 것은 유명시인의 시 구절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글쓰기나 대화술에 많은 도움을 준다. 일거양득이자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이미 채워진 여러 권의 노트가 그동안 나에게 글쓰기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준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책을 다 읽고 나면 그것과 관계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본다. 유명작품이라면 대부분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상물이 존재한다. 영상을 보면서는 책의 내용과 다른 부분이 있지 않는지 찾으려 애를 쓴다. 발견되면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도 정리해본다. 그건 책의 내용을 보다 오랜 시간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기억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독서의 목적 자체는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독후감을 쓰는 일도 잊지 않는다. 독후감이라 해서 뭐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다. 가끔 제대로 된 감상문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어떨 때는 단 한 줄 평으로 그칠 때도 있고 또 어떤 때는 단순히 줄거리요약에 그치는 때도 있다. 형식과 길이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책을 읽었다는 증표 내지는 완독한 후의 의무로 여기는 것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이것들을 다시 대하면 책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며 스토리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일이 많다. 독후감이야말로 기억을 되살리는 마들렌 빵의 효과를 톡톡히 한다. 

 책을 읽다보면 유난히 재미가 있거나 감명을 깊게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연쇄반응을 이용해 그 감정을 이어간다. 필이 꽂힌 책의 작가가 쓴 책을 죄다 섭렵해버리는가 하면 유사한 종류 내지는 그 배경 전후에 해당하는 책을 점차 범위를 넓혀가며 찾아 읽는다. 김주영이나 조정래 작가의 소설을 깡그리 찾아 읽은 것도,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고는 토마스 불핀치와 구스타프 슈바베의 것을 차례로 완독하기를 넘어 시오노나나미의 ‘로마인이야기’까지 내처 독파해버린 것도 그런 사례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중 200권을 읽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지금까지 130여권을 읽어온 것도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독서습관을 배양하는 데는 환경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내 성향이 유별난지는 모르지만 나의 독서시간 중 상당부분은 침대에서 채워진다. 그 까닭에 독서하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침대주변을 꾸며놓았다. 아늑한 등받이 쿠션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켜고 끌 수 있는 스탠드에, 손만 뻗으면 책을 잡을 수 있는 책장이 침대와 맞닿아있는가 하면, 언제든 펼칠 수 있는 접이식 테이블과 그 위에는 메모지와 볼펜이 항상 놓여있다. 특별히 준비를 하지 않아도 언제든 책을 접할 수 있는 그 분위기는 잠자기 전 손에 책 쥐기를 습관화되도록 만든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다. 

 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마다 내 어깨에는 책과 메모지, 볼펜이 든 가방이 항상 걸려있다. 물론 이동하면서 생기는 무료함을 이기기 위한 목적이 더 크지만 그건 자투리시간을 활용하는데도 꽤나 도움을 준다. 물론 빈 좌석이 없어 서서 간다면 위험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효과는 의외로 크다. 하루에 왕복 30분 거리라서 30페이지 정도 읽기가 가능하다면 열흘이면 300페이지의 책 한 권을 읽을 수가 있다. 한 달이면 세 권이니 이 어찌 작은 양이라 내팽개칠까. 

 이런 방법을 통해 나의 독서근육이 비약적으로 발달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최근 일 년 독서량은 오십여 권 정도다. 그건 자랑할 것도 못되지만 그렇다고 아주 빈약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책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친숙해졌다는 점이 기쁘다. 여세를 몰아 올해는 백 권의 책을 능히 읽을 수 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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