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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Jun 26. 2023

다수결이 아닌 고성결(高聲決)의 이상한 민주주의

 며칠 전의 일이었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공고문이 하나 붙어있었다. 주민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투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안건은 정문 앞 도로변에 설치된 가드펜스의 일부에 대한 철거여부였다. 그건 나로 하여금 이 아파트에 입주할 때부터 약 2미터 정도의 폭만큼 계속 뚫려있던 가드펜스가 최근 들어 완전히 막히게 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문제의 장소는 정문 바로 앞 횡단보도에서 약 2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유치원차량들의 정류소였다. 그 주변으로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보행자의 안전판이라 할 수 있는 가드펜스가 쭉 이어져 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 부분만큼은 아이들이 승하차를 하는 공간이다 보니 가드펜스를 설치할 수가 없었다. 누가 보아도 일리가 있는 조치였다. 벌써 십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거기 대해 입방아를 찧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도 모두가 그렇게 인정한 탓이었다. 

 그곳의 안전펜스가 이슈화된 건 몇 달 전 부터였다. 그곳을 통해 주민들의 무단횡단이 빈번하게 이뤄지면서 아이들까지 덩달아 안전 불감증에 물이 들어 위험 수위가 도를 넘고 있었다. 건너편은 상가밀집 지역이었다. 자연히 길을 건너 그곳으로 가는 주민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그중 대다수 사람들이 정문 앞에 있는 횡단보도 대신 뚫린 가드펜스로 무단횡단을 자행했다. 횡단보도까지 가려면 20여 미터를 더 걸어야하기 때문이었다. 실토하건대 나 역시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원래 불법이나 위법행위도 한 번 저지를 때는 가책을 느끼지만 잦아지면 면역이 생겨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되어버리는 법이다. 날이 갈수록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의 수는 늘어갔고 어느 순간 그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당연시되기 시작했다. 포스터며 플래카드뿐 아니라 심지어 가가호호 방송까지 해댔지만 악습은 잘 고쳐지지 않았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하자 자치단체는 고심 끝에 대책을 마련하기에 이르렀다. 

 가드펜스가 완전히 막힌 건 그래서였다. 그 일환으로 유치원차량의 정류소는 약 50여 미터를 이동해 횡단보도를 건넌 지점으로 결정되었다. 나름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길을 건널 때마다 횡단보도까지 더 걸어야하는 불편이 따랐지만 난 환영했다. 무단횡단도 그렇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다른 문제들도 속속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배달라이더들의 오토바이가 야기하는 문제가 적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곳에는 자그마한 아파트 상가가 위치해있었는데 거기에 치킨집이 들어선 게 발단이었다. 치킨집 배달라이더들은 가드펜스가 없는 그곳을 마치 자신들의 전용통로마냥 이용했다. 그러면서 시동을 켠 채 오토바이를 예사로 주정차하면서 매연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되었다. 

 차량을 이용해 아파트로 들어올 때 주민들이 겪어야하는 불편도 상당했다. 주차장으로 가려면 3차선인 그 인도 쪽 차선을 이용해 횡단보도를 지나 우회전으로 진입해야하는데 그때마다 유치원 통학차량이나 라이더의 오토바이들은 장애물 구실을 톡톡히 했다. 1,2차선의 차량들이 신호대기를 하거나 통행량이 많을 때는 차선변경이 어려울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했다. 

 변화의 효과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무단횡단이 자취를 감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교통의 흐름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엘리베이터에 붙은 공고문은 의아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대체 왜 가드펜스를 다시 철거하는 일을 두고 찬반투표에 붙인다고 하는 것일까? 궁금증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내에 의해 금방 풀렸다. 유치원차량 정류소가 이동되면서 몇몇 학부모들이 불편을 호소하며 자치단체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다. 고작 몇 십 미터를 더 걷는 게 힘들다고 다른 사람들더러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라니. 그들이 얄미웠지만 난 그나마 투표로 결정하겠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투표결과는 펜스를 철거하지 않는 쪽으로 나왔다. 굳이 집단지성을 들먹일 것도 없이 지극히 당연한 결과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가드펜스의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늘 우연히 외출을 하는데 그곳에 학부모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유치원차량의 정류소가 옮겨진 후로 그런 모습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상하다싶어 눈길을 돌렸더니 차마 내 눈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져있었다. 가드펜스는 예전처럼 다시 철거되어있었고 유치원차량의 정류소 표지판이 떡하니 인도 한쪽을 점거하고 있었다. 차도에도 변화는 보였다. 중앙차선을 따라 기다랗게 차선분리대가 쳐져있었다. 무단횡단 방지용이었다. 

 모르긴 해도 일부 학부모들이 투표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했고 끈질긴 민원에 자치단체가 굴복해 벌어진 일이 틀림없었다. 큰 목소리를 내는 일부에 의해 다수가 결정한 일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꼴이었다. 이럴 거면 투표는 왜 했는지, 그리고 주민차량의 아파트 진입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이게 민주주의일까? 조용히 침묵하며 참는다는 이유로 다수를 무시하고, 떠든다고 자꾸 귀찮게 한다고 소수에 불과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공무원들의 바람직한 태도일까?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가장 첫째가는 기본 원칙이거늘 그것을 아무 것도 아닌 양 내팽개치는 것이 과연 소수와 약자를 보호하는 길인가? 회의가 일었다. 이런 일이 빈번하니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려하지 않고 무작정 거리로 뛰쳐나오는 것이 아닐까? 문득 공권력이 온순한 시민을 투사로 만든다는 말이 생각났다. 아울러 공권력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공무원이라는 말도 떠올랐다. 동의하는 사람의 수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의 크기로 결론을 내는 사회라면 그 말들이야말로 진리 중의 진리였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의 입에서도 그 소식이 튀어나왔다. 아내를 향해 불퉁하니 한 마디 내뱉었다. 당신 말이야. 버스 정류소가 멀어 불편하다 했잖아. 우리도 집 바로 앞에 정류소 만들어달라고 시청홈페이지에 글 올려볼까? 담당자가 업무를 못할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고 글 쓰면 아마 해결해주지 싶은데.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 번져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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