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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Jun 10. 2023

나의 가장 든든한 뒷배는 바로 나다.

 아침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4킬로미터쯤 달렸을 때였다. 팔꿈치와 종아리 근처에 가벼운 찰과상을 입었다. 크게 다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건 나를 다분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위험한 곳도 아니고 도로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넘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건 바로 내 몸의 반사 신경이 둔화되었다는 뜻이며 내 신체가 그만큼 노화되었다는 의미가 아닐 수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들어 조금이라도 위험요소가 보이면 부쩍 조심하게 된다. 집안 전등을 교환할 때면 내가 올라서야 하는 의자의 상태가 튼튼한지를 몇 번이나 점검하기도 하고, 어쩌다 침대 위로 올라서야 할 일이 있으면 다리를 낮게 들어 올려 넘어지는 일이 없도록 발의 위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가 하면, 몸을 돌리거나 방향을 바꿀 때는 주변에 나의 행동에 방해를 주는 물건들이 없는지 살펴보곤 한다.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이전에도 넘어진 적이 있었기에 전방에 단 몇 센티미터라도 높낮이의 차이가 보이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넘어진 것이다.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실망까지 하는 건 아마도 늙어간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몸은 하루하루 쇠락해가지만 정신만은 멀쩡해서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며 욕심을 부리는 탓이다. 흘러가는 세월에 순응할 때 마음도 편해지는 법이거늘 그것을 굳이 부정하려 애를 쓰는 허세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에도 말이다. 

 내가 남들보다 운동을 더욱 열심히 하려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다. 더 이상 체력이 저하되는 것을 막아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게 목적이니까. 사실 오늘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도 거기서 비롯된 일인지 모른다. 어제의 기록에 뒤처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다 보니 주의력과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이다. 물론 체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세월을 거부하려 안간힘을 쓸 것까지는 없다. 그것이야말로 과도한 집착이요 욕심일 따름이다. 왜냐면 그런다고 해서 영원히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저 노화를 조금 늦추고 비교적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되는 일이다. 

 나이가 들면 행동은 굼뜨고 느려진다.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거기에 대응하는 무의식적 반응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전에 그런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미리 피하려는 일종의 본능적 방어행위다. 분명한 건 그런 형태로도 위기는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달리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도 유연성과 순발력을 갖추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중심을 잃는 순간 재빨리 복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겠지만 몸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 또한 훌륭한 방법이다. 좀 느리더라도 주의 깊게 주위를 살피며 달린다면 애당초 넘어질 일도 없지 않을까? 더구나 나처럼 육십을 넘은 나이라면 몸의 기능이 쇠퇴하는 것을 탓하기보다 쇠퇴되어가는 몸에 알맞은 다른 대응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일이다.

 오늘 넘어진 것도 자연스런 현상으로 치부하면 그뿐이다. 왜 내가 별 것 아닌 돌부리 하나 에 몸의 중심을 잃어버렸는지, 잠시 비틀거리다 말 일을 넘어지기까지 했는지 자책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신체적 기능이 저하되었다고 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젊은 나이가 아님을 받아들여야한다. 기록이나 체력, 뭐 그런 것에 지나치게 애면글면할 필요 또한 없다.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두고 나를 윽박지르는 일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세상에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또 나를 가장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그런 의미에서 넘어진 나를 책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나를 두둔하고 더욱 용기를 북돋워줘야 한다. 나의 가장 든든한 뒷배는 바로 나라는 걸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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