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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Sep 07. 2023

슬기로운 해외미술관 관람방법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미술관을 관람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행의 목적 자체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고 이해하는 일이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많다. 하지만 관람이 끝난 후면 으레 허전함이랄까 아쉬움이 뒤따르곤 한다.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비용을 치르면서도 늘 무언가를 빠뜨리거나 제대로 보지 못한 듯한 느낌에 사로잡히는 까닭이다. 미술관 관람을 하는 나만의 방법을 체계화시켜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래서였다. 

 그 중에서 방문 전에 미리 챙겨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고자 하는 미술관을 사전에 예약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유명미술관은 인기 있는 여행지에 자리한다. 루브르, 프라도, 우피치, 바티칸 미술관 같은 곳들이 모두 파리, 마드리드, 피렌체, 로마와 같은 도시에 위치해있는 걸 보면 그 사실은 명확하다. 아마도 이 도시를 여행하는 사람들이라면 거의가 미술관 관람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람을 하고 싶어도 막상 현지에서 티켓을 구하지 못해 입장부터 거부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뿐만 아니라 일부 미술관의 경우는 한 달여 전부터 매진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나 역시 바티칸 미술관을 예약하려다 매진이 되는 바람에 상당한 웃돈을 주고 티켓을 샀던 일이 있다. 예약을 하면 현지에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패스트트랙으로 입장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해외여행에서 시간절약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런 면에서 미술관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행 전에 미리 예약현황을 확인하는 건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예약을 할 때는 가능하면 이른 시간, 아니 첫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아무래도 그 시간대에는 사람들의 방문이 뜸하기 마련이다. 관람객 수가 적으면 편안하고 차분한 관람이 가능하다. 사람들이 많아야 여행하는 기분도 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미술애호가가 아닌 일반관광객의 입장에서 내뱉는 우스개에 불과하다. 주변이 관람객들로 붐비면 자연히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심지어 난 바티칸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관람할 때 사람들에게 떠밀려가며 잠시 훔쳐보다시피 한 적도 있다. 

 이른 시간의 관람은 집중력을 높이는 차원에서도 유리하다. 해외여행을 자주 할 여건이 못 되는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흔히 관광과 관람을 병행하기 마련이다. 관광을 하다 지친 상태에서 관람이 이루어지면 그림이 눈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이 말을 우습게 들어서는 안 된다. 내로라하는 미술관이라면 전시작품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걸 모두 돌아보려면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두어 시간 이상 걸린다. 그 시간 동안 계속 걸어 다닌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만으로도 10킬로미터를 훌쩍 넘는 거리가 될 것이다. 이제 그 피로도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가? 

 집중력 저하를 막기 위해 또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하루에 두 개 이상의 미술관 관람을 계획하는 일은 어리석다. 미술관이 같은 도시에 위치해있어 일정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럴 때라도 될 수 있으면 하루에 하나의 미술관만 찾을 것을 난 강력하게 권한다. 신체적 피로감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어 관람을 즐거움이 아닌 고통의 순간으로 만들기 십상이다. 

 마드리드를 여행할 때 난 소피아왕립미술관과 프라도 미술관을 같은 날 방문하기로 계획했었다. 특히나 프라도 미술관은 저녁 타임이었다. 때문에 다시는 가보지 못할 프라도 미술관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피곤에 절어 그곳에서 벨라스케스의 ‘하녀들’만 겨우 찾아보는 우를 범하고 말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모든 일정이 끝났을 때 그렇게 후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사전에 해당미술관에서 꼭 봐야 하는 작품들을 파악해두는 것도 하나의 요령이다. 외국 미술관에서 우리나라처럼 관람객의 이동 동선이 잘 짜여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명백한 오해다. 미로 같은 방들을 한참 헤매다보면 어느 방을 관람했고 어느 방을 관람하지 않았는지 헷갈릴 때가 많다. 미술관을 빠져나오고 난 후에야 모든 작품을 감상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되는 때도 있다. 꼭 봐야하는 작품을 기억해두면 이렇게 관람을 빠뜨린 부분을 발견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거기다 그런 작품들에 대해 사전지식을 습득해둔다면 금상첨화다.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발달한 시대라 방문하고자 하는 미술관에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는지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다. 그 작품들 중에서 관심이 가는 작품들에 대한 지식 또한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금방 목적한 바를 달성할 수 있다.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면 주변 도서관 등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배경에 얽힌 스토리나 화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작품이 갖는 의미 등을 미리 알고 감상한다면 그 감동은 더욱 커진다. 그 효과야말로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된 오디오가이드를 이용하는 것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최근 들어 암스테르담의 고흐미술관을 찾은 적이 있었다. 여행 전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그 미술관에 소장된 작품들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는 책을 한 권 발견하고 읽은 뒤였다. 덕분에 작품들마다 어떤 부분을 주의 깊게 볼 것인가를 쉬 알 수 있어 그 어떤 미술관보다 의미 있는 관람이 가능했다. 함께 관람하던 아내에게 미술에 대해 아주 박식한 사람처럼 굴 수 있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그날따라 평소 엄청나게 비싸보이던 관람료가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그동안 비싼 관람료를 치르면서 미술관을 쫓아다닌 대가가 이렇게라도 주어진다고 생각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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