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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광우 Sep 04. 2023

만년필

 책을 읽다 메모를 하기 위해 필통을 열었다. 웬일인지 쓰지 않던 만년필이 눈에 띄었다. 아주 오래 전 아내가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다. 하려던 일을 망각한 채 무심코 그것을 집어 뚜껑을 열었다. 그리곤 메모지에 펜촉을 꼭꼭 눌러가며 낙서를 해보았다. 아무 것도 써지지 않았다. 그걸 사용했던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니 당연한 일이다. 아니 잉크가 흘러나오기라도 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을 것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내부를 분해해보았다. 펜에 연결된 잉크통은 하얗게 그 속이 비어있었다. 만년필은 잉크를 직접 넣는 방식이 아닌 잉크통을 통째로 교체하여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공교롭게 필통 안에는 가득 채워진 잉크통도 세 개나 남아있었다. 잉크통을 갈아 끼웠다. 잉크는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펜촉까지 가는 잉크의 통로가 장시간 사용하지 않으면서 엉겨 붙은 게 틀림없었다. 

 내친 김에 그걸 고쳐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뜻한 물로 펜촉부분을 데우면 엉긴 잉크가 녹아내릴지 모른다. 욕실로 가 온수를 틀고 펜촉을 수도꼭지 쪽에 갖다 댔다. 응고되었던 검은색 잉크가 용해되며 세면기를 타고 배수구로 흘러들었다. 적당한 시간이 경과되었다 싶을 때쯤 만년필을 메모지에 대고 다시 글씨를 써보았다. 펜의 움직임이 한결 부드러워지면서 펜촉을 따라 검은 선이 이어졌다.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난 왜 만년필을 꺼내 써보았던 것일까? 평소 관심이 없던 물건에 우연히 눈길이 가면서 그저 호기심이 동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필통을 열고 닫는 일이 나에게는 매일의 습관과도 같은 일이어서 그 속에 든 만년필을 오늘에서야 새삼스레 발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걸 굳이 고쳐 쓰려고까지 마음을 먹었을까? 그건 아마도 오늘의 내 심리적 상황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오늘따라 유독 내가 돌아갈 곳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고, 도서관에서는 늘 보이던 내 또래의 사람이 벌써 며칠째 보이지 않았으며, 어떤 신문에서 대기업 입사동기였던 한 친구가 중역으로 승진했다는 기사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오랜 벗은 바쁜 일정 탓에 며칠 후의 만남을 깨트려야겠다는 연락을 보내온 상태였다. 모두가 맡은 바 사회적 역할을 다하고 있었지만 아직 이른 나이에 은퇴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상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자연히 과거를 향한 미련과 그리움은 클 수밖에 없었고 집착은 심해져 있었다. 그때 내 화려했던 과거의 상징물인 만년필이 발견되었으니 그걸 고쳐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과거로의 복귀도 가능하리라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건지도 모른다.

 만년필을 쥐고 마구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아내가 그걸 선물했을 때의 일들이 기억나기 시작했다. 무려 십여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그때 아내는 만년필을 전해주며 글을 써보라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작가를 꿈꾸어오던 나임을 잘 알았던 까닭이다. 비록 작가는 되지 못할망정 쓰다보면 좋은 취미생활은 되지 않겠냐면서. 그러겠노라 그 자리에서 철석같이 대답을 했으면서도 돈벌이에 바쁘다는 핑계로 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만년필은 그저 직장에서 문서결재를 하거나 메모를 하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을 따름이다.  

 지금이라도 아내와의 약속을 지켜보고 싶은 생각이 불쑥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래, 이것으로 글을 써보자. 비록 만년필로 글을 쓰는 시대는 아니라지만 최소한 글을 쓰기 위한 도구로 활용할 수는 있지 않겠는가. 필사를 하면서 사용할 수도 있고 글감에 대한 메모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 과거를 바라보던 내 시선에 변화가 생겨났다. 문청을 꿈꾸던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세월이야 돌이킬 수 없지만 그때의 꿈을 다시 꿀 수야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거기다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단지 조금 늦은 것뿐이다. 만년필을 불끈 움켜쥐었다. 메모지에는 ‘운명’, ‘신춘문예’, ‘낙오자’, ‘과거’,‘진취자’, ‘내일’같은 단어들이 횡으로 종으로 엇갈려가며 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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