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루미와 비둘기

by 원광우

다람쥐처럼 성실하게 쳇바퀴를 돌린 대가로 월말이면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던 급여라는 항목이 이십여 년 만에 사라졌다. 쳇바퀴가 고장 나서가 아니었다. 쳇바퀴에서 내가 밀려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쳇바퀴의 주인으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거부 또한 할 수 없었던 난 그간의 경력과 이력을 총동원하여 다른 쳇바퀴를 구하려 애를 썼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지 전통시장에서든 인터넷쇼핑몰에서든 쓸 만한 쳇바퀴는 좀체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어렵사리 한두 개 발견한다 해도 내 체격에는 전혀 맞지 않는 것뿐이었다.

난 사람과 사회로부터 격리되어갔다. 격리는 은둔을 조장하면서 나의 활동시간을 낮에서 밤으로 조금씩 이동시켰다. 내 몸의 현실적응력은 실로 놀라웠다. 주간활동에 필요한 기능들이 현저히 퇴화되면서 야행성이 디폴트 값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넉 달째가 되면서부터는 넓디넓은 정보의 바다를 밤새 날아다니느라 겨드랑이에서 날개마저 돋기 시작했다. 다람쥐였던 몸은 어느 틈에 올빼미로 변해있었다. 태양이 일주궤도의 꼭짓점 가까이 도달할 때까지 매일같이 내 방의 블라인드가 바닥에 닿아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올빼미와의 동거가 못마땅했던 아내의 진공청소기가 포효했다. 난 그것이 다람쥐로의 미복귀를 힐난하는 사자후라는 걸 즉각 알아챘다. 책임감이 옥죄어왔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의 변신은 이미 내 능력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에나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외면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좁아터진 공간에서 눈길을 돌려봐야 거기가 거기였고 모른 체하자니 또 가장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것이 도서관으로의 도피였다. 책들이 즐비한 곳이라면 쳇바퀴와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거니,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올린 결정이기도 했다.

치킨집이며 빵집 같은 프랜차이즈 가맹점, 돈 놓고 돈 먹기에 다름 아닌 주식투자, 투기인지 투자인지 분간이 잘 안 가는 부동산 등의 경제서적을 읽는 것도 따분해져 카페인의 도움을 청해볼까 싶을 때였다. 미리 준비해온 머그컵에 인스턴트커피를 까서 넣고는 복도에 있는 정수기의 온수 버튼을 누르는데 등 뒤에서 머리카락이 곤두설 정도의 강한 흡인력이 느껴졌다. 홀린 듯 고개가 젖혀졌다. 그곳에는 가늘고도 긴 다리를 스키니 진으로 감싼 채 제 덩치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두툼한 흰색 파카를 걸친 이십대 후반의 여자가 한 명 서있었다. 한 마리 흰 두루미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두루미는 텀블러를 손에 쥔 채 흔들고 있었고 텀블러 표면에서는 왕관 쓴 긴 머리 요정 사이렌이 나지막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구급차의 경보음이 울려오는 듯했다. 내 고개를 돌려세운 건 아마도 그 노랫소리 같았다.

두루미는 내 머그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얕은 개천에 다리를 담그고 서서 물속의 피라미를 낚아챌 시기를 조율할 때처럼 극도로 압축되고 잘 정제된 눈빛이었다. 다람쥐의 삶을 살면서 체득된 피해의식은 괜히 사람을 주눅 들게 만들었다. 난 꼬리를 한껏 내리며 주춤주춤 정수기로부터 물러났다. 두루미의 시선은 계속 나를 쫓아왔다. 하지만 시선의 빛깔에서 집착의 강렬함은 사라져있었다. 대신 한결 완화된 갈구의 애절함이 그 자리를 메웠다. 손에 쥐어진 텀블러가 까딱거림을 멈추고 비어있음을 알리기라도 하듯 반 이상 기운 것이 그걸 설명해주었다. 내 가슴속에서 경계심이 녹아들며 동정심이라는 달고나가 만들어졌다. 용기를 내 다가간 나는 그녀가 좋아할 법한 물고기 형상의 달고나를 선뜻 내밀었다. 취준생 냄새가 물씬 났다.

“커피 마시고 싶어? 이것 좀 줄까?”

두루미는 대답대신 내 앞으로 텀블러를 쑥 내밀었다. 달다 쓰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먹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달고나의 단맛도 커피의 쓴맛도 알 수 없다는 뜻일까? 난 텀블러에 보이지 않는 계량눈금을 그어가며 시약을 따르듯 정확하게 2분의 1을 부어넣었다. 배급을 받은 그녀는 곧장 정수기 쪽으로 다가갔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난 말없이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그녀는 온수를 추가해가며 중간 중간 맛보는 일을 빠뜨리지 않았다. 자신에게만 특화된 커피를 제조하는 바리스타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문득 어린 시절 감기에 걸렸을 때 어머니가 끓여주던 설탕물이 생각났다. 귀하디귀한 설탕의 단맛을 어떡하든 오래 맛보려 양이 줄어들 때마다 물을 채워가며 남은 양을 늘림으로써 안심하던 그때. 그렇게 설탕물의 추억에 아슴아슴 빠져드는 동안 두루미는 자취를 감추었다.

내가 앉은 사인용 테이블의 앞자리에서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텀블러 하나가 테이블 위에 놓이며 내는 소리였다. 이번에도 텀블러에서는 요정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느다란 휘파람소리 같은 게 웬일인지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혹시나 싶어 고개를 들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아까의 두루미가 긴 다리를 뽐내며 서있었다. 등에 걸머진 백팩과는 별도로 무언가를 가슴 가득 안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머물렀던 서식지를 급히 바꾸어 날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달고나에 대한 보답인 양 엷은 웃음을 씨익 한 차례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안고 있는 것들을 모조리 책상 위로 쏟아냈다. 내 후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이라도 하듯 하나같이 밥벌이를 위한 책들이었다. 본차이나 도자기보다는 철밥통을 선호하는지 공무원수험서가 대부분이었다. 손놀림이 워낙에 투박했던 탓에 다시 한 번 소음이 조용한 공간 속에서 파문을 그리며 휘감아 돌았다. 주위사람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녀에게 쏠렸다가 흩어졌다. 그녀는 그런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의자를 빼낼 때도, 백팩을 가슴 쪽으로 돌려 안으며 털썩 주저앉을 때도, 조심성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두루미의 모습을 한 구체관절인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도 관절의 수가 턱없이 부족해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뻣뻣하기만 한 그런 인형.

그때부터 나의 경제개념은 가정경제에서 속물경제로 옮아갔다. 내가 주었던 달고나의 값어치를 그녀가 보내온 뜻 모를 웃음만으로 퉁치기에는 아무래도 적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나의 관대함을 상대의 가슴속에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를 보장받고 싶었다. 물론 그걸 요구할 근거는 부실했고 마땅한 방법도 없었다. 난 괜히 곁눈질을 흘끔거리며 달고나를 약속어음처럼 활용할 기회만 넘보고 있었다.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달고나를 천천히 빨아먹듯 텀블러를 홀짝거리며 건성으로 이 책 저 책의 페이지를 마구 건너뛰었다. 마치 글자를 한 자 한 자 읽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 한꺼번에 받아들이는 능력을 소유한 것처럼.

10분쯤 지났을 때였다. 두루미가 홰를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리면서 제법 큰 소리가 열람실 안을 휘저었다. 또 한 번 주위사람들의 눈길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연하게 텀블러를 집더니 하얀 날개를 펄럭이며 열람실 밖으로 사라졌다.

창밖에는 싸락눈이 하얗게 바람에 날려 흩뿌려지고 있었다. 사방의 벽들 역시 온통 하얀색이었다. 흰 두루미와 흰 눈과 흰 벽과 그리고 백수인 나. 난 유유상종이라는 사자성어를 떠올리며 그렇게 그녀와 나를 억지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이 숱한 하양들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색이 아니라 무슨 색이든 그 위에 덧칠할 수 있는 색이기를 바라면서. 그러나 미끄러운 눈길에 종종걸음으로 검정발자국의 오점을 찍으며 집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는 순간 성가심이 확 밀려왔다.

눈송이가 꽤나 탐스러워질 때쯤 그녀는 돌아왔다. 그리곤 자리에 앉기 바쁘게 또 텀블러를 홀짝거렸다. 다른 누군가에게서 달고나를 추가로 공급받은 것인지 아니면 따뜻한 물로 양만을 늘린 것인지 뚜껑이 열린 텀블러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이상해보인 건 시간이 좀 더 흘러 두루미가 다시 한 번 홰를 박차고 날아올랐을 때였다. 그녀는 아까 번과 똑같이 무언가를 텀블러에 채워왔고 ‘물 한 모금 하늘 한 번’을 되풀이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10분 정도를 주기로 동일한 사이클을 반복했다. 날아오를 때는 항상 왕관 쓴 긴 머리 요정이 따라붙었고 나래를 접고 착지하면 텀블러가 빌 때까지 ‘물 한 모금 하늘 한 번’을 계속했다. 채무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외상값을 올려 받으려 난 두 눈을 모로 가늘게 치켜뜨며 훔쳐보는 일에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병증으로 보였다. 잘 살아보겠다며 왕 서방네가 작업장에서 무분별하게 피워낸 연기의 미립자가 산 넘고 물 건너 그녀의 목구멍까지 도달해 해소천식을 유발한 것일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콩을 새까맣게 구워 다려낸 물을 한약으로 오인해 장기 복용하는 과정에서 중독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유전적 요인이 많이 작용한다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환자여서 그냥 가만히 앉아있질 못하는 것일까? 궁금증의 크기를 키울수록 그녀의 텀블러 요정은 더욱 큰소리를 질러가며 노랫가락으로 경보음을 풀어냈다. 다람쥐든 올빼미든 설령 아무 힘도 없는 백수일지라도 오십 줄의 수컷이라면, 젊디젊은 암컷두루미를 향해 한숨만 쉬어도 어떤 술자리에서고 좋은 안줏거리로 제공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지금 달린 혹만으로도 버거운데 의심의 혹까지 짊어진다는 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난 있는 힘을 다해 눈동자를 뒤통수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이튿날이었다. 도서관에서 전날과 같은 자리를 차지한 나는 여전히 다람쥐로의 회귀를 꿈꾸고 있었다. 달라진 점은 여태 굴려온 것과는 사뭇 다른 쳇바퀴에 눈독을 들인 점이었다. 어쩌면 그건 젊은 날 의무적으로 복무해야했던 군대생활을 감내한 덕분인지도 모른다. 몸에 맞는 옷과 신발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군복에 몸을 맞추고 군화에 발을 맞추던 그 시절처럼, 나에게 어울리는 쳇바퀴를 찾기보다 나 자신을 시중에 나온 쳇바퀴에 맞추어가고 있었으니. 은연중에 사회에 만연한 사(士)자(字) 선호현상에 물들었던 것인지 그날따라 회가 동한 쳇바퀴는 공인중개사였다. 아마도 창업이 용이할 뿐 아니라 몇 마디 말만으로 떼먹는 구전이 쏠쏠하다는 것을 부동산 박씨를 통해 익히 알고 있었던 탓이리라. 게다가 시험과목이 죄다 암기 위주의 법률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점도 구미를 돋우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외우는 과목이라면 학창시절 꽤나 어깨를 으스대며 존재감을 드러내곤 하던 나였으니 비록 문외한이라 한들 그것이 자격증획득에 그리 큰 장애요인이 될 수는 없었다.

박씨를 향한 쿠데타 획책에 한참 머리를 싸맬 때였다. 내가 앉은 책상의 모서리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상대의 존재를 확인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소리였다. 고개를 들었더니 흰 두루미의 입이 커다란 물고기를 삼킬 때처럼 벙긋거리고 있었다.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르는 그녀의 몸에서 레인맨의 냄새가 짙게 풍겼다. 멍하니 쳐다보자니 부리가 내 귀 쪽으로 바싹 다가왔다. 뭇사람들의 눈총도 거들떠보지 않던 전날의 의연함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가느다란 속삭임이 여린 숨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커피, 커피, 커피요.”

제 말에 대한 나의 이해력이 떨어질 걸 염려한 나머지 그녀는 자신의 텀블러를 내보이기까지 했다. 난 일일일잔(一日一盞)으로 정해놓은 커피의 정량을 이미 소비해버린 뒤였다.

“어떡하지, 커피가 없는데…….”

간절함은 의심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떠맡았다. 부리를 담가서라도 남은 양을 확인하고 싶었던지 그녀는 책상 위에 놓여있던 내 머그컵을 바싹 눈앞에까지 옮겨가 안을 유심히 살폈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컵을 흔들어보기까지 했다. 머그컵의 밑바닥에는 커피의 잔해가 바싹 말라붙어있을 뿐이었다. 긴 모가지가 속절없이 꺾였다. 허적허적 열람실 밖으로 걸어 나가는 걸음에 강한 미련이 번졌다. 그녀의 몫을 내가 뺏어 마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마침 또 하나의 달고나가 떠올랐다. 다름 아닌 휴게실의 커피자동판매기였다. 난 얼른 일어나 뱁새걸음으로 두루미의 뒤를 종종거렸다. 출입구를 벗어나자마자 두툼하니 부푼 하얀 등허리가 손에 잡힐 듯 다가왔다. 어깨를 툭 건드리자 기다란 목이 홱 돌아왔다.

“자판기 커피라도 마실래? 나한테 잔돈 많은데.”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떻게 된 게 고개는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고 있었다. 난 두루미가 그려진 동전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떨구었다. 동족을 팔아서 커피를 사라고 채근한 것 같아 묘한 느낌이 일었다.

“커피가 얼마지? 오백 원이면 사먹을 수 있어?”

“삼백 원.”

그녀의 말과 행동은 초고효율을 추구했다. 주저함이나 어색함, 고마움의 표현 따위는 깡그리 생략되어있었다. 커피자판기를 향해 나아가려는 일념뿐인 것 같았다. 그녀가 당당하고도 자연스러운 걸음을 내딛는 동안 난 또 한 번 달고나를 제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그 단맛을 충분히 만끽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난 그녀의 손에는 들려있어야 할 커피 컵이 보이지 않았다.

“커피는 어쩌고? 왜, 자판기가 고장이야?”

대답 대신 그녀는 자판기가 뱉어낸 백 원짜리 동전 두 개를 돌려주며 손에 쥔 텀블러를 흔들었다. 속에서 내용물이 찰랑거리는 울림이 전해져왔다. 흔들림을 감지한 요정이 또 노래를 부르려 입을 움찔거렸다. 행여 홀가분해진 기분이 상할세라 난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날 앞질러 그녀가 쪼르르 달려갔다. 정수기 앞에 멈춰선 그녀는 어제처럼 바리스타의 모습을 재현했다. 망연히 그 모습을 바라보자니 그녀의 위쪽 벽에 붙은 전광판에서 내일부터는 여분의 커피를 별도로 준비해 다니라는 당부글귀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추가분의 인스턴트커피는 내 도시락의 러닝메이트가 되었다. 두루미와의 만남 또한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정례화 되었다. 다만 매일 오전 열 시 딱 한 차례의 만남만으로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했다. 만날 때마다 텀블러의 요정이 노래를 불러대며 주의를 환기시킨 결과였다.

며칠 후였다. 아침부터 아내의 다급한 음성이 나의 생체시계를 파괴하고 들었다.

“여보, 얼른 일어나 봐. 큰일 났어.”

호들갑에 가족들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꼬박 밤을 새운 나를 인정해주려는 의도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성과중심의 인사고과를 해대던 예전의 상사를 방불케 했다. 도리가 없었다. 겨우 기지개를 켠 시각(視覺)이 서둘러 다른 감각기관도 깨우려 두어 차례 눈을 깜빡거렸다.

“101동 할머니 한 분이 글쎄 아파트 안에서 또 비둘기 모이를 주고 있대. 벌써 며칠 짼지 모르겠어. 배설물 때문에 주지 말라고 계속 방송으로 떠드는데도 막무가내라나 봐. 그 할머니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같은 조류이긴 해도 먹이사슬의 피라미드 상에서 비둘기가 올빼미의 상위포식자일 수는 없었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그걸 깨닫는 순간 모든 감각기관이 경각심을 곧추세우려 발령했던 경보를 해제했다. 내 머리가 올라올 때의 몇 배 속도로 자리를 되찾아들었다.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사람을 깨우고 그래? 아, 몰라.”

“지금 사람들이 모여 말리는데도 할머니가 끄떡도 안한다잖아. 우리도 가서 힘을 보태야지. 이사 가려면 아파트 값 더 떨어지면 안 된다 말이야. 빨리!”

원망은 잠시였다. 이사라는 말을 감지한 청각이 사태의 심각성을 재빨리 보고했다. 아파트 가격하락은 전시체제를 의미했다. 전두엽에서 즉각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눈이 번쩍 뜨이고 몸이 이불을 박차며 벌떡 일어섰다. 쳇바퀴라는 방어시스템까지 붕괴되었으니 일촉즉발의 위기가 아닐 수 없었다.

조만간 우린 옆 동네 재개발지구에 새로이 조성되는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할 예정이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거기에 걸맞은 공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들을 상류사회로 인도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상류사회로의 초대장은 가진 자들의 기득권에 대항하면서 뭇 상대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한 후 스카이니 인서울이니 하는 사전관문을 통과할 때라야 거머쥘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관문으로 향하는 길은 교통과 각종 편의시설은 물론 유명학원이 입지해있는 재개발지구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넓고 안전했다. 우리 형편에 감당하기 힘든 고급아파트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사라는 무리수를 둔 건 그런 차원에서 벌인 일이었다.

사실 이사계획이 아주 무모했던 건 아니었다. 우리에게도 나름의 자금조달계획은 있었다. 푼돈이나마 저축했던 돈으로 계약금 정도는 메울 수 있었고, 중도금은 이자야 지불해야겠지만 은행대출로 충당할 수 있었으며, 입주할 때쯤 해서 지금의 아파트를 판다면 잔금을 포함해 모든 비용의 정산이 가능했던 것이다. 계획이 틀어진 건 몇 달 전부터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적으로 나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이사 갈 지역의 개발이 부메랑으로 돌아와 우리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신흥주거지가 우리 동네의 슬럼화를 가속화시키면서 현재의 아파트 가격을 폭락시킨 것이다.

이주시점은 석 달 앞으로 다가와 있었지만 부동산 박씨는 가격을 더 낮추지 않는 이상 매매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만 벌써 몇 달째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값이 더 내릴 거라니. 내가 이사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그런 과정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러 기관(器官)들이 도태되어 기능을 상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난 날개깃을 고르며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내가 도착했을 때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조그만 광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만국기만 없을 뿐 수십 년 전의 초등학교 운동회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었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 한 명을 주민들이 쫓는 술래잡기 놀이가 한창이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오자미놀이였다. 주머니 하나가 할머니 손에 매달려 대롱거렸고 나머지 사람들이 그것을 빼앗으려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할머니는 삼일운동 당시 태극기를 휘두르며 아우내장터를 주름잡던 유관순열사를 방불케 하며 잘도 피해 다녔다. 응원은 비둘기들의 몫이었다. 놈들은 하얀 깃털을 가진 치어리더의 동작에 맞춰 이쪽으로 혹은 저쪽으로 몰려다니며 구구구구 함성을 질러댔다.

수적인 우세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아니 애초부터 승부는 할머니 쪽으로 기울어져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할머니는 교활하면서도 지능적이었다. 이따금씩 비틀거리기도 하고 지팡이를 짚기도 하면서 언더도그 효과를 노리는 용의주도함까지 선보였다. 어쩌다 쫓긴 할머니가 내 옆으로 다가왔을 때였다. 아내가 내게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여보, 저게 곡식주머니야. 당신이 그냥 빼앗아버려.”

밤새 먹이활동으로 지친 데다 빛에 약한 올빼미의 눈이었지만 곡식이라는 말에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쭉 뻗어나가 주머니를 움켜쥐었다. 날카로운 발톱 새로 요즘 들어 좀체 느끼지 못하던 포만감이 꽉 차왔다. 이것마저 놓칠 수 없다는 절박감에 힘을 주어 확 잡아당겼다. 주머니는 쉽게 내 차지가 되었다. 졸지에 소유물을 강탈당한 할머니가 눈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이리 내, 빨리 내 놓으란 말이야.”

운동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계주가 시작되었다. 잠깐이나마 방심한 것을 후회한 할머니가 나를 쫓아왔다. 죄의식이 내 몸을 점점 무겁게 하며 할머니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그때 다음 주자가 자신의 출발지점보다 훨씬 이전까지 내려와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난 손에 든 바통을 터치했다. 바통을 넘겨받은 아주머니는 쏜살같이 달아나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 팀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승리를 축하하는 비둘기들이 푸드덕 일시에 날아올랐다. 패배를 확신한 할머니가 쓰러지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불쌍한 내 새끼……. 흑, 흑, 흑…….”

“할머니, 비둘기에게 모이주면 안 돼요. 그놈들이 많이 모이면 아파트가 배설물 때문에 엄청 더러워지잖아요. 그걸 청소하기 위해서는 할머니께서 관리비를 더 많이 내셔야하고요. 또 그게 습관이 되면 걔네들도 스스로 먹이 찾는 능력을 잃어버려서 결국은 죽고 말아요.”

난 반칙을 범한 듯한 자책에 사로잡힌 채 승자의 아량으로 패자를 위로하려 들었다. 할머니는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승리가 승리 같지 않았던지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하나둘씩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 틈을 이용해 우리도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났다. 등 뒤에서는 할머니의 외침이 먼 산의 메아리처럼 끊이지 않고 아련하게 이어졌다.

“영식아. 영식아, 영식아…….”

영식이를 부르는 애틋한 목소리는 오랜 시간 아파트 단지를 떠돌았다. 공기 속으로 녹아든 그것을 난 호흡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소화효소에 의해서도 체세포들에 의해서도 그것은 분해되지 않아 몸속에서 앙금으로 차곡차곡 쌓여갔다. 체증에라도 걸린 듯 속이 꽉 막혀오면서 답답했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도서관의 터줏대감 행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두루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철새의 본능을 숨기지 못해 겨울이 끝나기도 전에 제 고향으로 날아가 버린 것일까? 그녀가 모습을 감춘 처음 며칠 난 이상하리만치 그녀의 부재에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 날아오르며 빠진 깃털이라도 한두 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열람실에 들어서기만 하면 휑하니 한 바퀴 돌아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그녀를 끌어들여 내 상실감을 희석시키며 자기위안의 대상물로 삼아왔던 모양이다. 열흘쯤 지나자 그녀는 도서관에서 원래부터 없던 사람이 되어갔다. 난 그저 찌그러진 철밥통이라도 하나 얻어걸렸으려니 여기며 아름다운 이별이란 말로 아쉬움을 잠재웠다. 그녀의 기억은 서서히 카론의 배를 타고 레테 강을 건너갔다.

덧없이 며칠이 더 흐른 뒤 모처럼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한 중소기업으로부터 새로운 쳇바퀴를 한번 돌려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건 사지선다형의 문제도 OX 문제도 아닌 답정너의 문제였다. 난 벼락치기로 허장성세의 모범답안을 익힌 후 인사담당자가 지정한 곳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45도 이상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의 꼭대기에 서서 갑의 위용을 뽐내며 그가 질문했다. 돌려야 할 쳇바퀴가 지방에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금방이라도 땅속으로 빠져들듯 밑바닥에 겨우 매달린 을의 절실함으로 내가 대답했다. 지방이 아니라 남해바다 끄트머리의 무인도여도 아니 열사의 나라에 있는 사막이어도 상관없습니다. 희망하는 연간 도토리수확량을 묻는 질문에도 난 의견을 피력하는 기회로 삼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파악하는 기회로 삼았다. 언제부터 쳇바퀴를 돌릴 수 있느냐 물었을 때는 ‘최대한 빨리’라는 답으로 단숨에 그의 입을 막아버리기까지 했다.

비뚤어진 마당에서 장구를 바로 치려는 행위는 건방짐의 표본이자 사치의 극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저 뜻하지 않은 일로 모처럼의 호기가 무산되지나 않을까 조바심만이 애간장을 태웠다. 이산가족이라는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상실의 시대와 화해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합리적인 거래라고 여겼다. 인터뷰라기보다는 복종서약에 가까운 답변을 늘어놓으며 비위를 맞추려들었건만 나의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내부검토를 거쳐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다소 애매한 말을 흘리며 면접관은 자신의 권위를 한껏 부각시킬 따름이었다.

면접을 마치고 아파트단지로 막 들어설 때였다. 어디선가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불현듯 두루미의 텀블러 요정이 떠오르면서 불안했다. 높은 주파수를 유지하던 그 소리는 잠시 후 위급환자의 숨소리마냥 깔딱거리기 시작했다. 깔딱임은 좀체 멈추지 않으며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소리의 진원지는 101동 입구였다. 그곳에는 무슨 일에든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촉새들이 이미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뱅뱅 돌아가는 경광등의 붉은 빛이 촉새 떼 사이로 언뜻언뜻 새어나왔다. 그들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었다. 구급대원들이 막 구급차의 뒤꽁무니로 들것을 옮겨 싣고 있었다. 딱히 특별할 것이라고는 없는 지극히 평범한 환자이송작업은 무언가 충격적인 사건을 기대했던 나를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서려는데 산소호흡기가 걸린 환자의 얼굴이 왠지 낯익어보였다. 환자의 정체는 곧바로 드러났다. 바로 비둘기할머니였다. 난 소스라치게 놀랐다. 잠시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 구급차는 깔딱이던 숨을 길게 이어진 사이렌으로 바꾸며 인파를 헤치고 나아갔다. 촉새들의 대화소리가 멀어져가는 사이렌에 겹쳐졌다.

“비둘기 모이를 못주면서부터 아프기 시작했대나 봐.”

“몇 달 전엔 자식이 직장에서 죽는 사고도 있었다지, 아마.”

“프레스 공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그만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사고였대.”

“비둘기에게 정을 붙인 것도 그 때문이라잖아. 자식이 새가 되어 찾아온다고.”

“그건 그렇고 하나 남은 손녀딸 불쌍해서 어떡해. 걔도 아버지 사고로 충격을 받아 많이 아프다던데…….”

“설마 저대로 돌아가시는 건 아니겠지?”

“나이가 적어야 말이지. 당뇨가 있다던데 시간이 좀 걸리지 않겠어?”

발걸음을 돌리는데 그날 영식이를 외쳐 부르던 할머니의 음성이 환청으로 들려왔다. 백팩은 무거운 십자가가 되어 등을 짓눌렀고 걸음은 갈보리언덕을 오르듯 한없이 느려졌다.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믹서활동으로 머릿속에서 흐려져 갔다. 아울러 난 ‘최대한 빨리’의 시기가 도래하길 기다리며 그 채비에 여념이 없었다. 천재일우는 유비무환의 올가미라야 완벽히 포획할 수 있었다. 모든 일상을 예전 다람쥐의 생활패턴에 맞추려 노력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사이트에서 연일 하향일변도의 가격흐름을 고수하며 시름을 배가시키는 우리 집 실거래가 추이곡선과 달리 바이오리듬의 곡선이 완만하나마 방향을 꺾어 세우기 시작했다. 특유의 환경변화 적응력으로 올빼미의 밤눈시력과 야간비행능력도 꼬리를 감추어갔다. 밤새 흥청망청 유흥가를 전전하다 새벽녘에야 귀가하는 벌레들을 사정없이 쪼아 대는 아침형조류의 본색도 유감없이 되살아났다. 덕분에 아침달리기도 습관으로 굳어가고 있었다. 지방(地方)생활의 애환을 겪다보면 지방(脂肪)관리에 소홀해지기 마련, 그 대응책으로 아침달리기만한 게 없었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마라토너에게 풀코스나 울트라코스보다도 더 힘든 거리가 현재위치에서 출발지점까지 가는 거리라는 것을 모르지 않던 나는 그날도 잠자리에서 일어서자마자 서둘러 트레이닝복 차림이 되어 나섰다. 앞길을 막아선 건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놀란 토끼 눈의 아내였다.

“아니 미세먼지가 이렇게 많다는데 달리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거야, 지금?”

난 창문을 열어젖혔다. 바깥풍경은 모든 사물들의 테두리선이 모호한 게 전체적으로 아웃포커스 상태였다. 상대적으로 방충망의 줄눈만 포커스 온 되어 뚜렷하게 도드라지며 그 틈으로 먼지의 입자들이 뚫고 들어왔다.

“그렇지? 암만 해도 달리기는 힘들겠지? 미세먼지가 기관지나 폐에만 안 좋은 게 아니라 치매까지 유발한다고 하니 말이야. 이거 오래 살려다 도로 죽음을 재촉할 뻔했네.”

날씨라는 빌미는 단지 옷을 차려입고 시도의 의사를 보인 것만으로도 실천의 성과를 너끈히 거두었다는 자부심이 일게 했다. 다시 방 쪽으로 몸을 돌리는데 물소리와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아마도 자신의 말을 더욱 정확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아내가 음소거 버튼을 작동시킨 것 같았다.

“참, 당신 아직 모르지? 비둘기 할머니 있잖아? 그 할머니 죽었어.”

내가 내뱉은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 할머니를 떠올리게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난 포르말린 용액 속의 박제모습으로 꼼짝없이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왜? 그날 구급차에 실려 갔다가 그냥 죽은 거야?”

“아니, 그날은 괜찮았는데 이틀인가 있다가 죽었다네. 나도 어제서야 그 소식을 들었어. 할머니가 원래 당뇨가 심했대. 이번에 죽은 것도 그 때문이라 그러고. 그나저나 할머니가 죽었다니까 영 마음이 편치가 않아.”

사인이 당뇨임을 굳이 강조한 이유는 이어진 말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자기세뇌였다. 명확한 증거도 없고 확인할 방법도 없었지만 나 역시 그렇게 믿으려 들었다. 신체의 곳곳으로 침투해든 미세먼지가 머릿속을 블루스크린 상태로 만들었다. 몇 번이고 재부팅을 행했지만 허사였다. 코와 입은 꽉 막혀 숨을 쉴 수가 없었고 눈앞은 캄캄했으며 귀에서는 야릇한 전파음 같은 이명만이 웅웅거렸다.

할머니로 가는 모든 길을 차단하기 위해 머리는 챙이 긴 캡으로, 눈은 선글라스로, 코와 입은 마스크로, 귀는 이어폰으로 무장한 채 집을 나섰다. 늘 다니던 도서관이 휴관이었던 관계로 행선지는 인근의 다른 도서관으로 바꾸어 정했다. 감정의 자정작용이라는 시간의 효능을 실감할 때쯤 도서관에 도착한 나는 무작정 열람실로 향했다. 할머니와의 거리를 한층 더 넓히려는 무의식이 일으킨 반사작용이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십진분류 체계로 배열된 서고의 320번 언저리에 머물곤 했던 나의 눈동자가 오늘은 810번 근처로 옮겨가있었다.

빼든 책을 십여 페이지쯤 읽었을 즈음이었다. 옆자리에서 테이블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자연스레 내 고개가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 자리엔 놀랍게도 내 생활반경에서 사라졌던 흰 두루미가 날개를 접고 우뚝 서있었다. 오늘도 손에는 텀블러가 들려있었고 거기 그려진 긴 머리칼의 요정은 실전을 치르기 위한 발성연습을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두루미의 부리가 앞에 앉은 머리칼이 허연 남자의 귀를 파고들었다.

“커피, 커피, 커피요.”

중년의 사내가 보인 행동은 의외였다. 그녀와 눈을 마주친 그는 내처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다시 숙여버렸다. 내 쉰 한숨의 비말 속에는 싫다는 사람에게 구태여 천국행 무료열차표를 나눠주겠다며 상습적으로 달라붙는 지하철 전도사들을 마주한 듯한 짜증이 잔뜩 배어있었다. 무시당한 그녀를 위로할 목적으로 난 가볍게 손을 흔들어 시선을 유도했다. 고개가 돌아왔다. 내심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지으려는 찰나였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한쪽 구석으로 심하게 쏠리더니 적개심의 냉기를 한껏 뿜어냈다. 순식간에 주위의 공기는 얼어붙었고 막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마친 듯한 강력한 오한이 고압전류처럼 실핏줄을 타고 전해져왔다. 아무런 통보 없이 커피거래를 끊은 것치고는 지나치게 혹독한 처사였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기로 몸을 떠는데 두루미는 복수심의 날갯짓을 두어 차례 퍼덕이더니 몸을 홱 돌려 열람실을 빠져나갔다.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서는 신문고라도 울려야 할 것 같았다. 곧장 일어나 그녀를 뒤쫓았다. 그녀는 휴게실의 커피자판기 앞에서 또 다른 젊은 남자의 어깻죽지를 툭툭 건드리는 중이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긴 부리에서 커피의 향을 갈망하는 건조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300원 있어요?”

놀라운 것은 젊은이의 말과 행동이었다.

“아, 내 참…….”

그는 조금 전 열람실에서의 중년과 똑같은 표정을 짓더니 곁에 있던 친구와 함께 자리를 피해버렸다. 천덕꾸러기가 된 두루미가 안쓰러웠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더니 동전 몇 개가 잡혔다. 그걸 끄집어내려는데 별안간 그녀의 텀블러 요정이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앞에서 두루미가 노랫소리에 맞춰 화들짝 날아올랐다. 흠칫 놀라 한발 물러서자니 두루미는 마술사의 모자 속을 통과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새 하얀 비둘기로 바뀌어있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할머니로부터 모이를 공급받으며 사육에 길들여진 바로 그 비둘기였다. 녀석은 유유히 휴게실의 공간을 배회하며 구구구구 울어댔다. 요정은 끊이지 않는 사이렌을 계속 구슬픈 가락으로 뽑아냈다. 두 가지 소리는 불협화음이 되어 나를 비웃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디서도 환대받지 못한 두루미가 또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발자국 궤적마다에서는 태생지인 시베리아 대륙의 혹한이 묻어났다. 난 맥 풀린 다리로 우두망찰 그 뒷모습만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 속에서 머리핀 하나가 햇살에 반짝거렸다. 낯선 것이었다. 핀의 끄트머리에는 무한대기호(∞) 모양의 삼베리본이 매달려있었다. 가족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는 상장(喪章)이 분명했다. 나를 향한 적대감의 이유가 거기에 숨어있는 듯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난 넋이 빠져있었다. 아파트의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걸음조차 떼어놓기 힘들었다. 길가의 벤치에 걸터앉았다. 그때 비둘기 몇 마리가 동네아이들이 흘린 과자부스러기 주변으로 내려앉았다. 놈들은 서로 몸을 부비며 치열하게 먹이를 향해 부리를 쪼았다. 그 가운데 한쪽 다리를 심하게 다쳐 절룩거리는 놈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녀석은 다른 놈들에 떠밀린 채 외곽을 떠돌며 무리사이로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구구구구……. 울음소리는 ‘커피, 커피’ 하고 속삭이던 두루미의 목소리로 다가왔다. 어디선가 ‘영식아’ 외치는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녀석이 가여웠다. 건너편 담벼락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나는 그걸 애써 외면하며 가방 속에서 먹지 않은 도시락을 꺼내 밥덩이를 녀석에게 던졌다. 그러자 다른 비둘기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절름발이는 놈들의 등쌀에 밀려나 다시 저만치 떨어져 울기 시작했다. 몇 번이고 녀석을 향해 밥덩이를 던졌지만 그때마다 녀석의 몫은 없었다. 보다 못한 난 녀석에게 다가가 다른 놈들을 쫓으며 밥덩이를 내밀었다. 그때서야 녀석의 부리가 제대로 밥덩이에 와 닿았다.

주머니의 전화기에서 진동이 전해져왔다. 꺼내보니 화면의 상태표시줄에 말풍선이 걸려 대롱거렸다. 엄지손가락으로 그 끝을 잡아 끄집어 내렸다. ‘합격을 축하합니다.’로 시작하는 문자의 내용이 주르륵 펼쳐졌다.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이번에는 전화가 걸려왔다.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가자 부동산 박씨의 굵직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려왔다.

“김씨,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내일 계약하자는데 어때요? 괜찮으면 열 시쯤 사무실로 오슈. 알았죠?”

그 사이 밥덩이를 다 먹은 비둘기가 힘겹게 절룩 걸음을 내딛으며 내게서 멀어졌다. 날아든 낭보 모두가 녀석의 선물로만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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