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3월 20일 - 고장 난 자전거

by 원광우

몇 번이나 울렸을까? 알람은 호소를 넘어 발악하고 있었다. 눈을 감은 채 손을 쭉 뻗어 녀석의 목을 뒤틀어 쥐었다. 내 수면을 방해하는 것쯤이야 자초한 일이지만 식구들 것까지 해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무의식적 가족보호본능의 발현에서 벌인 살해행위였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 녀석은 그냥 사라지지 않았다. 내 머리통을 마구 흔들어댔다. 뇌수가 출렁거리며 엊저녁에 마신 술이 도를 넘었음을 일깨웠다. 몸을 일으켜 앉았다. 뼈마디들이 부딪쳐 녹슨 기계음을 냈다. 담요 한 장 깔리지 않은 거실바닥에는 홑이불이 덩그러니 뭉쳐져 밀려나있었다. 밤늦게까지 혼자 TV를 보느라 잠자리를 거실로 옮긴 게 벌써 나흘째였다. 블라인드에 채 가려지지 않은 창밖으로 먼동이 트고 있었다. 아침은 자신의 부지런함을 그렇게 여명으로 증명하고 들었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내려면 지금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한다. 실직한지 어언 삼 개월. 그 사이 난 도서관 빠꼼이라는 한국고용직업분류 중 어느 직군에도 포함되지 않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 급여가 주어지지 않으니 직업이라 칭하기에 어울리지 않는 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도서관이 출퇴근장소인 건 틀림없었다. 세상사라는 게 처음부터 작정하고 시작하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우연도 아니었다. 우연이라 함은 원인 없이 결과가 이루어지는 일인데 반해 도서관 빠꼼이에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못하는 나의 생활이 명백하게 인과관계로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빈둥거리는 중년남자. 그것만큼 입심이 걸걸한 이웃아줌마들에게 좋은 뒷담화 소재가 있을까? 더군다나 소재의 빈곤에 허덕이며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되어가는 그들이라면. 험담의 첩경이라는 오명이 붙은 그 행위조차 그들 앞에서는 벤치마킹이라는 그럴싸한 외래어로 미화될 게 뻔하다. 마치 뇌물이 그 제공한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느는 순간 로비라는 정당행위로 바뀌듯이. 거기서 끝나면 차라리 다행이다. 자칭 인플루언서 혹은 인터넷 셀럽을 주장하는 일부는 팔로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명분을 덧씌워 SNS로 마구 퍼 나를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신상명세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도 모자라 자율비행드론으로 동(棟)과 동(棟) 사이를 넘나들 테고. 아내와 아이들이 2차 피해자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걸 모르지 않던 나에게 도서관은 말하자면 거부할 수 없는 피난처였다.

자신을 쓸모없는 살덩어리로 비하시키며 위축되어가던 나에게 도서관은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도움을 안겨주었다. 우선은 규칙적인 생활의 리듬을 되찾게 해주었다. 30년간 지켜온 출퇴근의 습관은 실로 무서운 것이었다. 직장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다른 건 몰라도 해방감은 느낄 수 있으리라 기대는 엄청난 착각이었다. 지난 석 달의 시간이 그걸 깨닫게 해주었다. 적어도 나라는 존재에게는 속박에서 해제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정해진 틀에 구속될 때라야 해방감까지는 아니어도 그나마 편안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도서관 빠꼼이는 나에게 안정감을 되돌려준 숨은 히어로였다.

최근 들어 난 누군가의 전화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모름지기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에서라면 내 이름 석 자야 정평이 나있을 것이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었던 건 나의 퇴직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탓일 터. 그러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인기작가의 소설에서나 설정된 상황일 뿐이었다. 기껏 울린 전화벨은 착한 이자로 돈을 빌려 쓰라는 고리대금업자나 그렇게 빌린 돈으로 일확천금의 기회를 잡으라는 기획부동산업자로부터 발신된 것이 전부였다. 내가 돈이 궁할 것이라는 정보는 어떻게 획득한 것인지 그들의 정보시스템이 놀라울 정도였다.

기다림은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감을 키운다. 도서관은 날로 비대해져가는 불안감을 줄이는데도 일조했다. 훔쳐본 바에 의하면 열람실의 구석구석을 채운 사람들 중에는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처를 덧낼까봐 서로 감히 말은 못 붙여도 우린 존재만으로도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체감하고 있었다.

마냥 기다리기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불안감을 희석시키라 말해준 것도 도서관이었다. 약간의 용기만 내면 30년의 궤도를 이탈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공인자격증의 수험서와 프랜차이즈 창업, 자영업백서 같은 서적들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가 단순한 명언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쾌적한 냉난방, 각종 신문이며 잡지들, 초고속 와이파이 환경 등은 구직활동에 필수적인 정보수집의 최전선 역할을 수행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유일하게 불편한 점이라면 그 모든 시설을 맘껏 이용하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점차 호전되어간다는 실업률과 갈수록 줄어들어 걱정이라는 인구에 대한 정부의 통계가 잘못된 것인지 도서관의 자리경쟁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었다. 특히 일반열람실이 아닌 노트북실의 경우는 도서관이 문을 여는 일곱 시가 되기 전부터 소위 오픈런을 위한 대기줄이 엄청났다. 그건 폭발적으로 늘어난 노트북이용자들을 예측하지 못한 도서관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달콤한 아침잠을 내놓으라며 나에게 내민 청구서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미처 해소되지 않은 숙취가 길게 꼬리를 끌며 따라붙었지만 냉수샤워로 간단히 잠재웠다. 간밤의 휴식으로부터 깨어난 장기들이 내지르는 공복의 아우성은 냉장고에 든 몇 가지 음식으로 달랬다. 다행히 새벽잠이 많은 아내는 아직 깨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의 방에서도 고요와 정적이 유지되는 중이었다. 거실을 잠자리로 택한 건 패착만 거듭하던 내 인생 바둑판에 던진 몇 안 되는 호착(好着) 중 한 수였다. 흡족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아파트의 자전거주차대에도 빈자리는 없었다. 이곳 생태계에서는 연식과 용도가 경쟁력을 가름하는 결정적 바로미터였다. 핸들과 프레임 여기저기에 녹꽃이 불그스레 만개한 내 자전거는 주차경쟁에서 밀려난 채 통로를 침범해있었다. 그건 10여 년 전 회사의 창립기념일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몇 가지 다른 선물도 있었지만 내가 그걸 선택한 이유는 하이킹이라는 어딘지 모르게 고급스런 느낌이 드는 레저 활동 탓이었다. 남부럽지 않은 그런 활동을 통해 여유가 있는 삶을 즐겨 보리라면서. 하지만 자전거는 결코 하이킹이라는 사치를 누린 적이 없었다. 외려 지금은 교통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비참한 임무를 수행 중이었다. 레저용의 귀족이 생계용의 천민으로 추락한 셈이었다. 저들 세계에서 내 자전거의 도태 이유는 그걸로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았다.

잠금장치를 풀었다. 바퀴는 구속에서 풀려났지만 자유를 얻은 게 아니었다. 핸들과 브레이크라는 또 다른 통제장치가 그를 옥죄고 있었다. 나의 해방이 요원하듯 놈의 해방도 요원해보였다. 아니 어쩌면 우린 영원히 해방되지 못할 운명의 존재인지도 모른다. 놈과 동기화를 시도하려는 신체를 불러들이며 난 백팩의 어깨끈을 다시 한 번 매만진 후 자전거의 페달을 힘차게 밟았다.

어둠이 서서히 가시면서 개천변을 수놓은 화려한 봄꽃들이 시야에 잡혔다. 산수유와 개나리가 서로 노랑의 본류를 자랑하는가 하면 매화와 목련이 앞 다투어 꽃망울을 터뜨렸다. 갖가지 야생화들 또한 저마다의 꽃을 피우려 안달하며 초록줄기들을 지표면 위로 쑥쑥 디밀어댔다. 하루의 지남은 달 모양의 변화로 알고, 한 달이 지났음은 우편함에 꽂힌 신용카드명세서로 알며, 계절의 변화는 가로의 수목들이 알려준다. 벌써 한 계절이 후딱 지나있었다. 저들이 이처럼 때를 어기지 않고 피어나는 건 생명에 필요한 요소들을 골고루 나누어 갖기 때문일 것이다. 대자연의 세계는 저렇게 공평하건만 왜 인간세상은 그렇지 못한 것일까? 하긴 그 또한 지나친 내 중심적 사고에서 출발한 오판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인간세상 역시 공평한 부분이 있다는 걸 곧 알게 되니까. 모두가 불공평한 환경에 노출되어있다는 점, 적어도 그 점에서만큼은 공평한 게 확실했다.

10여 분쯤 달렸을 때였다. 어디선가 간헐적이면서도 규칙적으로 똑, 똑, 똑,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돋은 소나기가 창을 두드려댈 때, 텅 빈 집에 혼자 있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해올 때처럼 일말의 불안감이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 또한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자동차 감성품질을 평가하는 가장 기본적 요소가 바로 NVH였다. 그 때문에 직장생활 25년 내내 Noise(소음), Vibration(진동), Harshness(불쾌감), 이 세 가지에 대한 나의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오죽하면 예민해진 귀 때문에 불면증을 겪기까지 했을까? 아침의 적막감은 내 귀의 민감도를 배가시켰다. 환청이 아닐까 애써 청각신경을 잠재우려 했지만 그럴수록 소음은 더욱 또렷해졌다. 추적결과 자전거의 뒷바퀴 언저리에서 체인이 기어에 감길 때 내는 불협화음으로 판단되었다.

멈추기와 달리기 사이에서 망설임의 시간이 왔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난 배심원들을 소집했다. 도서관 자리 확보의 경쟁률, 그곳까지 남은 거리, 자전거의 일반적 내구성, 근처 자전거포의 유무와 그곳의 영업시간, 네 가지가 배심원석에 앉았다. 잠시 후 그들은 멈추기보다 달리기로 평결결과를 전해왔다. 만장일치였다. 군말 없이 난 따랐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리의 빈도수가 잦아졌다. 크기도 커졌다. 또 다른 소음인 마찰음이 길게 이어지다가 끊어지기도 했다. 심지어 뒷바퀴가 흔들거리는 느낌마저 찾아왔다. 갑자기 세 번째 배심원이 자신의 판단을 철회했다. 위험성을 심하게 감지한 것인지 당장 멈추라고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다. 그의 몸짓과 표정으로 보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 난 자전거를 멈춰 세웠다.

배심원의 경고는 헛말이 아니었다. 뒷바퀴는 언제라도 분리 독립을 선언할 조짐을 보였다. 그 상태로의 운행은 불가능했다. 이번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배심원이 자신들의 잘못된 판단을 사과하며 입장문을 낭독했다. 자전거를 타지 말고 끌고라도 간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있을 거라고. 그때부터 자전거를 수단으로 내가 이동한 게 아니라 나를 수단으로 자전거가 이동했다.

오늘도 변함없이 도서관 정문 앞의 줄은 우리나라 인구의 연령별 분포현황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그래프의 막대기 높이는 검은 머리보다 백발 쪽이 훨씬 컸다. 에코붐보다는 베이비붐의 영향력이 훨씬 강했음을 드러내는 대목이었다. 자전거를 주차대에 세워둔 나는 그 끄트머리에 붙어서며 50대 막대의 키를 조금이나마 키웠다. 막대기들은 문이 열리기까지의 시간조차 허투루 낭비하려 들지 않았다. 누군가는 책을 꺼내 읽고 또 누군가는 별도의 메모를 암기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핸드폰으로 동영상강의를 시청했다. 그들을 통해 난 과거를 반추하고 현재를 더듬고 미래를 예측했다. 경쟁에만 매몰되어 삶의 가치는 외면한 채 먼 곳의 무지개를 좇느라 발밑의 꽃을 보지 못했던 과거, 부모와 자식이란 의무와 책임감에서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중 돌봄 운명의 현재, 아무리 치열하게 살았어도 여유는커녕 세상의 마지막 날까지 쫓기기만 할 미래. 그 어느 것도 탐탁지 않았다. 저들은 또 나를 자신들의 모습에 투영시키며 못마땅해 할 것이 틀림없었다. 힘이 쑥 빠져나갔다.

좌석확보에 성공한 나는 곧장 노트북실을 빠져나와 신문열람실로 향했다. 거대한 인생목표라도 이룬 것처럼 성취감을 만끽하려는 보상심리가 발동한 탓이었다. 잠을 희생한 대가로 조간신문을 탐독하는 여유쯤은 누릴 만하지 않을까 하는. 그러면서도 이른 새벽부터 설쳐댄 궁극적인 목적이 노트북실의 좋은 환경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서 이겼다는 승리감 때문이 아닐까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내 상황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자리를 빼앗아 못 먹는 밥에 재나 뿌릴 여유로운 처지는 아니었다.

경제신문 한 가지를 펼쳐들었다. 톱기사부터가 씁쓸했다. 경제성장률의 달성이 어려운 만큼 정부에서 그 목표치를 하향조정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을 3포에서 5포, 그 너머 7포세대로까지 부른다더니 거기엔 다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민수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런 식이라면 녀석이 포기해야하는 것이 과연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인간관계, 희망, 꿈, 일곱 가지뿐일까? 어쩌면 녀석은 모든 걸 포기해야하는 모포세대의 새로운 길을 걸을지도 몰랐다. 내가 국지전을 치르고 있는데 반해 녀석은 전면전을 치르고 있었다. 어느 곳 하나 건너뜀 없이 눈을 부릅뜨고 훑었지만 신문의 어떤 면에도 우리들의 전쟁이 종식될 거라는 희망적인 소식은 보이지 않았다.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실업자 구직급여를 신청하기 위해서였다. 많지 않은 금액에 그것도 단 몇 개월만 한시적으로 지급되는 것이지만 유일한 수입원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해당사이트에 접속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쌈짓돈조차 날로 먹게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의민지 부가로 제출하라는 서류들이 많았다. 무엇이든 신청자더러 증명하라했다. 실업상태를 유지하고 있음도, 구직활동을 하고 있음도. 내 눈에는 그런 공무원들이 도로 국민의 세금을 날로 먹는 것 같았다.

구직활동을 증명하기 위해 미리 준비해두었던 취업활동증명서를 찾아냈다. 지난주 구직사이트를 통해 두 군데의 회사에 입사지원하면서 저장해두었던 것이다. 그걸 신청서 하단에 붙여 넣는데 문득 그곳의 서류전형 결과발표일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청서 작성 후 확인했더니 발표일은 이틀이나 지나있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부름은 전화벨만이 아니라 메일로도 이루어지거늘 그 사이 디지털문맹이 되어버렸던 것일까?

메일함에는 두 회사의 메일이 모두 어제날짜로 수신되어있었다. 차례로 열어보았다. 분명 완전히 다른 두 회사였지만 결과통보내용은 거의 흡사했다. 알림문의 내용이라는 게 ISO나 KS에 무슨 표준 규격으로 정해져있기라도 한 모양이다. ‘귀하의 이력은 훌륭하지만 저희 회사의 모집취지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은 부분이 있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난 나대로 머릿속에 표준규격으로 자리 잡고 있는 문해력을 가동시켰다. 불합격사유는 경력이나 이력과 같은 능력이 아니라 나이라는 풀이결과가 나왔다. 그 회사의 연령별 막대기는 뒷자리를 반올림하는 관계로 내가 60대에 속한다는 부연설명도 뒤따랐다.

바람이라도 좀 쐬었으면 싶었다. 바람의 길을 찾아 휴게실이 마련된 옥상으로 향했다. 옥탑방 매점을 지나자 바람의 나라였다. 접경지에는 대여섯 개의 테이블과 의자가 짝을 이뤄 월경자들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건물의 상부꼭짓점을 이어 쳐놓은 검은 차광막이 햇볕을 받아먹은 흔적으로 몇 줌 그늘을 그 위에 얼기설기 배설해놓았다. 나도 가슴속 응어리를 토해버릴 욕심으로 심호흡을 하기 위해 바람의 길목에 섰다.

그때 구석진 자리에 웅크리고 앉은 앞선 월경자의 모습이 관측되었다. 나만큼이나 밀입국이 잦은 초코파이였다. 점심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국경지대에서 초코파이 한 통을 펼치던 그. 경제적 능력과 맞바꾸면서 이미 스티브 오스틴과 제이미 소머즈의 수준을 넘어서버린 나의 눈과 귀가 수집해놓은 정보에 의하면 그의 프로필은 몇 줄로 요약 가능했다. 50대. 최소 나 이상의 도서관 빠꼼이 경력. 아파트 관리소장 예비 수험생.

오늘도 그의 앞에는 상자에서 빠져나온 초코파이들이 야트막한 성벽을 쌓아 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대비하는 중이었다. 의아한 건 오늘따라 그의 등장시점이 한층 빨라진 점이었다. 중천까지는 아직 해가 걸어야할 길이 멀었다. 숱하게 국경을 넘나드는 사이 식습관마저 브런치라는 이국적 문화에 젖어든 것일까? 부족한 에너지를 광합성으로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그의 몸은 반쯤 햇볕에 노출되어있었다. 반짝이는 햇살이 들썩거리는 그의 어깨주변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마시려는 공기가 들숨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인지, 내뱉으려는 공기가 날숨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인지, 들썩임의 진폭은 점점 커져만 갔다.

바람의 나라에서 바람을 만나려다 바람만 맞은 나는 다시 노트북실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또 한 명의 빠꼼이를 만났다. 우린 서로 눈에 띄는 소통이 없었으니 만났다기보다 스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관계였다. 나의 캐비닛에는 그의 신상기록도 저장되어있었다. 일명 주파수. 40대 후반. 실제근무시간 오전 아홉시부터 오후 세시 반. 다중모니터를 이용하는 희귀종족. 유일무이한 특징이라면 일희일비에 특화된 얼굴 표정. 그는 빠꼼이들에게 소위 노른자위로 불리는 구석자리의 단골손님이었다. 오늘도 그의 몸은 두 면이 은폐된 요새에 파묻혀있었다.

아무리 난공불락의 요새여도 내 눈에 장착된 줌렌즈와 귀에 심어진 바이오닉 고막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의 노트북에는 어느 증권사의 홈트레이딩 프로그램이 구동 중이었고 그 옆에 놓인 별도의 모니터에는 여러 개의 꺾은선들이 복잡하게 중첩되어있었다. 곡선들은 하나같이 정점을 지난지 오래된 상태로 하향일변도였다. 마지막 지점인 오늘 날짜에 이르러서는 기울기가 더욱 가팔랐다. 노트북 화면을 가득 채운 수치들 앞에는 푸른색의 역삼각형이 난무했고 이따금씩 아래로 향한 화살표도 보였다. 그의 얼굴빛도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펼쳐진 그의 노트에는 국제통화기금,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여러 겹의 둥근 철조망에 갇혀있었다. 조만간 바람의 나라를 향한 그의 출국은 정해진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엉뚱한 의문이 찾아왔다. 난 그들에게 어떤 빠꼼이일까 하는. 혹시 옹고집이나 스크루지, 꺼삐딴리 같은 것은 아닐까? 고집불통, 욕심꾼, 기회주의자의 전형들이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어떤 식으로든 내 자리를 차지하려는 조급함이 나이에 걸맞지 않는 저급함이 되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을 테니까. 아무리 백수여도 명예와 품위는 유지할 수 있었으면. 그러기 위해서는 버리고 내려놓기를 생활화할 필요가 있었다. 고집도 욕심도 떳떳하지 않다면 주어지는 기회까지도. 백수의 생존법칙을 터득하는 사이 시간은 더욱 빨리 흘렀다. 손목시계를 따라잡으려는 내 생체시계는 늘 허둥댔다. 겨우 따라붙은 생체시계가 숨을 고르는 틈을 타 난 해야 할 일을 정리했다. 고장 난 자전거도 손을 봐야하고 끼니도 때워야했다.

바퀴 따로 몸체 따로 분해해놓고 보니 자전거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뒷바퀴가 주변의 부품들을 선동해 재건축조합 결성을 주도하고 있었다. 바퀴살들은 대오를 갖추어 어깃장을 부리며 선전단 역할을 맡았다. 더욱 강경한 입장을 보유한 축 하우징은 제집을 스스로 무너뜨린 후 임차인인 쇠구슬들을 삼분의 일은 쫓아낸 뒤였다. 튜브도 공기를 뺀 채 태업 중이었고 브레이크패드며 기어들 역시 쇳소리를 내며 구호를 내지르는 중이었다. 대세는 기울어져있었다. 자전거포 아저씨가 네고시에이터마냥 껄껄껄 웃고 나섰다.

“세상에 자전거 수리 40년에 이런 꼴은 또 처음이네. 아니 그동안 어떻게 타고 다녔수?”

고장 난 자전거를 타면 고장 난 사람이 되는 것일까? 자전거를 수리해 달랬더니 그는 나를 수리하려 들었다. 짧은 순간에도 기회비용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리하지 않을 때의 대중교통비와 낭비시간, 수리할 때의 지불비용. 봄이 되면서 난방과 더운 물 사용이 줄어든 관계로 이번 달부터는 관리비가 내릴 거라 기대하던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전거 수리비용을 지출항목으로 추가하며 그녀는 또 가계부를 몇 번이나 더 들여다볼는지. 그럼에도 난 신용카드를 아저씨에게 내밀었다. 불편함의 주체가 내가 되는 비용을 그 어떤 비용보다 크게 계산하는 것이 나의 기회비용이론이었다. 자전거포 아저씨는 자전거보다 그런 나의 모순을 먼저 수리하려했는지 모른다.

주변에서 김밥 두 줄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돌아왔더니 자전거의 재건축 사업은 마쳐있었다. 모든 부품들이 내걸었던 플래카드를 거둬들이고 각자의 집에 새로이 정착해 주변은 말끔했다. 부드러워진 바퀴의 회전력에 힘입어 자전거의 속도가 본궤도에 오를 무렵이었다. 등 뒤에서 아저씨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든 다시 오슈.”

이건 또 무슨 악담이람. 재방문하지 않도록 완벽하게 고치는 것이 수리의 기본정신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당장 내일이라도 다시 오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애프터서비스(After Service)를 넘어 비포서비스(Before Service)롤 지향하는 세상에 어게인서비스(Again Service)를 바라는 그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수리비가 더없이 아까웠다.


자판기코너에서 커피 한 잔을 뽑아든 나는 다시 자리로 향했다. 복도 끝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리는 두 사람이 보였다. 내 또래의 도서관 관리자와 구씨였다. 구씨는 내가 유일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빠꼼이였다. 어느 날 도서관회원증을 발급받으려는 그에게 약간의 도움을 준 게 인연의 계기였다. 평소 남의 일이라면 등을 떠밀어도 나서지 않는 내가 그날은 왜 그랬던지. 하루라도 빨리 작금의 내 처지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이 부지불식간에 행동으로 바뀌어 나타난 것이 아니었을까? 도서관 회원증이 빠꼼이들의 신분증에 해당한다고 보면 나의 선의를 두고 빠꼼이 판매 피라미드의 말단 조직책 자리를 탐내는 구직활동이라 단정한들 조금도 지나쳐 보이지 않으니 하는 말이다.

나의 빠꼼이 인명부에는 그의 기록이 다른 사람에 비해 다소 장황했다. 60대 후반의 남성. 건축계통의 회사에서 고위급 임원으로 근무. 6개월 전쯤 퇴직. 그게 은퇴인지 명퇴인지 강퇴인지는 불확실. 빠꼼이 대열 합류계기는 집구석에 있다 보니 마누라와 싸울 일밖에 없어서.

그는 지난 경력이 말해주듯 화술과 붙임성이 특별났다. 굳이 그의 성격적 특성을 알기 위해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유형검사를 할 필요도 없었다. 내가 용감한 수호자 ISFJ이니 그는 정반대라 할 수 있는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ENTP가 확실했다. 그에 대한 나의 기록이 보다 풍성한 것도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자기 혼자서 술술 내뱉은 결과였다. 뭐 그 때문에 짧은 시간에 우리가 스스럼없는 선후배 사이가 되고 말았지만.

방해하기도 그냥 지나치기도 무엇해 목례를 하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도청에 특화된 나의 바이오닉 고막을 굳이 작동시키지 않아도 거리가 줄면서 두 사람의 대화내용이 똑똑히 들려왔다.

“매일 출퇴근을 하다가 그것마저 않게 되니 너무 무료해지는 거야.”

“저는 공무원을 하다 일 년 전에 정년퇴직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어르신 말씀처럼 그렇더라고요. 무엇보다 만날 사람이 없어지니 하루 종일 뭘 해야 할지를 모른 채 멍해지기만 하구요.”

“그래, 여긴 어떻게 근무하게 되었수?”

“노인 일자리 찾아주기의 일환으로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계약직 도서관 관리인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난 적이 있어요. 안 그래도 소일거리를 찾고 있던 차에 그 공고를 보게 되었죠. 그래서 지원을 했더니 그나마 공무원 경력이 보탬이 되었는지 어떻게 운이 좋아 뽑힌 거예요. 어르신은 요즘 뭘 하며 지내시나요?”

“난 나중에 동네에서 서당이나 열어볼까 싶어 한때 한자공불 했었어. 그런데 그것도 쉽지가 않더라고. 몇 자 외웠다 싶다가도 돌아서면 금세 까먹어버리니 도대체 머릿속에 남는 게 있어야지. 그러다 지금은 낚싯배 면허나 따볼까 하고 그 공부를 하고 있어. 내 고향이 저 남쪽의 섬이거든. 그곳에서 낚싯배라도 끌면서 낚시꾼들하고 함께 살아갈까 싶어서…….”

“좋으신 생각이네요. 고향으로 가시는 것도 그렇고, 낚시라는 일도 그렇고. 그럼 이제 강태공이 되시는 셈이군요.”

“면허에 합격해야 그런 거지. 그래도 뭔가 목표를 세워놓고 공부를 할 수 있다 생각하니 사는 게 훨씬 나아지더군.”

구씨의 말에서 내 고향 앞바다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렸다. 까무룩하니 갈매기 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왔다. 코앞에서는 갯내음까지 맡아졌다. 노트북실의 문을 밀었다. 그들의 말소리도 바다의 환상도 천천히 페이드아웃(Fade-Out)되어 갔다.

식사를 하러 자리를 비운 사람들로 좌석은 대머리독수리의 머리통처럼 듬성듬성 비어있었다. 식곤증을 못이긴 몇몇은 앉은 채로 몸을 기역자로 접어 책상과의 접촉면적을 최대화시킨 상태로 오수를 즐겼다. 난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들었다. 세계문학전집이었다. 아이리스 머독의 ‘그물을 헤치고.’ 전집은 총 400권이 넘었지만 그 가운데 오십 권만이라도 읽어보자는 게 올해의 내 야심찬 계획이었다. 신체근육에 비해 독서근육은 어느 정도 갖추어져있으니 한 주에 한 권 정도야 결코 무리는 아닐 거라는 생각에서.

사실 나의 위험은 경제적인 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생활은 건강을 위협하고 들었다. 번아웃(Burn-Out) 증후군이 찾아왔다. 마땅히 열정을 쏟아 부을 대상이 사라진 마당에 정신적 탈진증상을 겪는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백수가 과로사하는 세상이라면 그 또한 인정하지 못할 건 없었다. 목표와 계획이 근본적 치유책은 아니어도 중심추 역할은 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거창하니 캐치프레이즈부터 내건 건 그래서였다. ‘건주(健走) 건독(健讀) 건필(健筆)로 건강(健康)한 삶을!’ 매일 일정한 거리를 달리고 일정한 양의 책을 읽으며 일정한 양의 글을 쓰자고 다짐했다.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에 틈틈이 세계문학전집읽기와 독후감 쓰기를 시작했다. 결심은 나름 효과를 보여 벌써 완독한 책이 열 권을 넘어섰다. 이 책 역시 오늘이면 완독 가능했다.

다 읽은 책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을 빌리기 위해 문헌정보자료실로 들어섰다. 누군가의 삶이 빼곡하게 꽂혀있는 서고는 말 그대로 내 모험심을 자극하는 여행지였다. 인디아나존스 같은 탐험가들이 허술한 고고학지도 한 장으로 엄청난 역사의 현장을 발굴했다면 난 듀이의 십진분류법이라는 지도에 의해 온갖 다른 사람의 삶을 무한정 엿볼 수 있었다. 가끔 일부 몰지각한 이용자들의 잘못된 이정표 때문에 길을 잃고 방황하기도 했지만 그건 극소수였을 뿐 지도는 척도도 기호도 위치정보도 대체로 정확했다. 오늘도 내 내비게이션은 목적지를 808번지로 설정했다.

조지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에 손가락이 가 닿았을 때였다. 주머니 속에서 강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요즘 아파트 주민들의 새로운 갈등원인으로 부상하는 층간진동의 원흉이었다. 주변진동이라는 또 다른 도서관 갈등의 새 역사를 창조하게 될까봐 난 급히 놈을 잠재우며 바깥으로 나왔다. 위층에 사는 두 살 아래 준호의 전화였다.

“형님, 지난번엔 미안했어요. 제가 술이 많이 취했었나 봐요. 아이 글쎄, 저보고 회사에서 희망퇴직을 하라고 하잖아요. 어찌나 화가 나던지 그날은 술이 좀 과했어요.”

그저께 자정이 넘어 우리 집 앞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 장본인이 바로 준호였다. 어디서 술을 마셨는지 억수로 취한 그는 우리 집 대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악을 썼다. 계단을 이용해 귀가하다 4층을 5층으로 착각한 탓이었다. 놀란 나머지 잠에서 깨 나갔더니 그는 거짓말처럼 복도 벽에 기대 잠이 들어있었다. 현실인지 연극인지 아리송할 정도로 코까지 골아가면서. 그 옆에는 막 구운 피자 한 판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위에 얹은 토핑들은 그가 술자리에서 안주로 삼았던 것들을 빠짐없이 보여주었다. 별수 없이 난 맨몸으로 응급환자 이송훈련을 전개해야했고 아내는 음식물쓰레기수거를 맡은 환경미화원이 되어야했다. 미안하다는 말은 그 일에 대한 변명이자 사과였다. 준호의 말이 이어졌다.

“형님, 오늘 한 잔 합시다. 제가 미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여섯 시에 아파트 입구의 슈퍼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리로 오십시오. 제가 시원한 맥주 한 잔 사겠습니다.”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과를 거부하면 오만한 사람이지만 당한 잘못에 사과받기를 거부하면 옹졸한 사람이 된다. 난 흔쾌히 준호와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조지오웰과 함께 스페인 내전이 벌어지던 1936년 전후로 시간여행할 것도 약속했다.

귀갓길에 올랐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면서 타작한 곡식을 까불 듯 오늘 하루를 키질해보았다. 겨는 바람에 날리고 알곡이 남아야하거늘 내 키에는 겨만 남아있었다. 그나마 남아있음에 감사해야하는 것일까?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다. 주머니 속의 전화기가 또 나를 애타게 불러댔다. 전화를 받으려 자전거를 세우는데 저쪽 아파트 입구에서 준호가 건들거리며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전화는 민수의 것이었다.

“아빠, 오늘 면접 결과 발표 났어요.”

녀석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초긴장상태를 유지하던 심장이 녀석의 풀 죽은 목소리에 발바닥까지 덜컹 내려앉았다. 자기방어에 충실한 체념이 철벽으로 사위를 감쌌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마음은 ‘혹시’와 ‘설마’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떨어졌어요.”

매일이 기적이라는 말에 공감은커녕 저주를 퍼붓고 싶었다. 자전거의 킥스탠드를 걷어차 제켜 올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대신했다. 준호는 기다리기 지루했던지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일정한 거리를 반복해 오가는 중이었다. 분노의 불길이 불길한 예감으로 옮겨 붙었다. 오늘 준호와의 술자리가 그의 피자제조기술을 전수받는 자리가 될 것만 같았다. 도서관 빠꼼이와 피자장인의 겸직. 그것만큼 킬리만자로의 표범들 레이더에 걸려들기 좋은 조건도 없었다. 자전거의 페달에 발을 얹었다. 도로변 가로등 기둥에서 종이쪽지 하나가 붙어 펄럭거렸다. 그 중 몇 글자가 돋보기를 들이댄 것처럼 커다랗게 확대되어 눈에 들어왔다.

‘주유원 구함. 최저 시급 보장. 은퇴자 환영.’

발에 힘을 주었다. 자전거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왠지 자꾸 뒤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페달에 더욱 힘을 가했다. 등 뒤에서 준호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여기예요, 여기. 스톱. 스토~~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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