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4월 18일 - 징크스

by 원광우

국물을 한 숟갈 가득 퍼 올려 입으로 가져갔다. 입안에 바다향기가 가득했다. 주방에서 바쁘게 손을 놀리던 영숙이 한 마디 던졌다.

“간이 잘 맞아요?”

“응, 맛있는데.”

새벽달리기를 할 때부터 컨디션이 쾌조의 스타트를 보이더니 밥맛도 유난스러웠다. 왠지 집을 나서면 샐리를 만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해리 역시 뉴욕으로 일자리를 찾아가다 같은 방향의 그녀 차를 얻어 타지 않았던가. 우여곡절 끝에 얻은 오늘의 취업기회고 보면 나의 히치하이킹 손짓에도 그녀가 걸려들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윗집에서 미역을 좀 주었는데 참 좋더라구요. 그 집 시댁이 기장이잖아요. 기장미역이라 이름값 하는 것 같아요.”

윗집은 준호네를 일컫는 말이었다. 그녀는 영숙을 만날 때마다 술만 마시면 도지는 준호의 귀소본능 센서 오작동 문제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피해를 준 당사자는 엄연히 준호였지만 경제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에 발목이 잡힌 탓이다. 하긴 일국의 대통령을 탄핵으로까지 몰고 간 직접적인 원인이 그 논리고 보면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었으리라. 그녀가 틈만 나면 찾아와 베네치아의 부라노 섬 주민들처럼 자기 집 대문을 우리 것과 구별되게 새빨갛게 칠해야겠다는 농을 늘어놓으며 시골시댁에서 배송되어온 특산품들을 바리바리 풀어놓는 것도 알고 보면 그런 잘못을 적당히 눙치고 넘어가자는 아부성 청탁에 가까웠다.

“미역을 잘 말린 것 같애. 부드럽기도 하고.”

내 입에서 미역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머릿속의 점화플러그에서 불꽃이 번쩍 튀었다. 아차차. 미역국. 그건 바로 금기의 음식이었다. 순식간에 손목이 힘을 잃었고 숟가락은 국그릇으로 떨어져 내렸다. 샐리를 만나기 전에 머피를 먼저 만난 꼴이었다.

며칠 전 종석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선배인 K사의 김 사장으로부터 기술임원채용 소식을 듣고 나를 추천했다고 말하면서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다. 취업비리에 휘말려 수모를 겪는 유명인들이 한둘이 아닌 요즘 세상이라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이력서가 종석의 성의를 무시할 정도로 대단한 물건은 아니었다. 종석의 입김이 셌던지 아니면 내 이력이 쓸 만했던지 K사에서는 즉각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자는 것이었고 그 날짜가 오늘이었다.

면접도 시험이었다. 아니 합격여부를 가름하는 조건으로 보자면 그건 대입정시전형에서 수능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이나 영향력이 큰 마지막 관문이었다. 게다나 오늘은 지난 4개월 동안 도전 끝에 내가 서류전형을 통과한 첫 사례였다. 그런 절체절명의 기회를 얻은 날 미역국이라니. 미신일 뿐이라며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한들한들 떨어지는 낙엽도 말년병장이라면 피해가야 하는 법. 합격을 위해 치성굿은 올리지 못할망정 불합격과 연관되어있다면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영양소라도 피해야했다.

미역국이란 게 무엇인가. 그게 어디 낙제를 연상시키는 낙지나, 쒀서 개나 준다는 죽처럼 재미삼아 떠드는 것에 견줄 수나 있는 징크스인가.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전해내려 오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산물로써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있는 공인징크스가 아니냐 말이다. 면접사실을 모르는 아내를 탓할 일은 아니었다. 세심하게 살피지 않은 채 식충이마냥 먹는 데만 혈안이 된 나의 잘못이었다. 더욱 실망스러운 건 취업을 향한 나의 절박감이 변기 속에 버려진 휴지뭉치처럼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흐트러져가고 있음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는 점이었다. 수저를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맛있다면서 왜 드시다 마세요? 뭐가 들었어요?”

영숙이 초조한 눈빛으로 물었다. 고객의 손에 들린 머리카락이나 비닐 쪼가리 앞에서 주눅 든 주방장의 모습에 다름 아니었다. 내가 배달거지인 것을. 그것도 모른 채 두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가 측은했다.

“아냐, 그런 거. 미역국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잠시 떠올라서 밥맛이 떨어졌을 뿐이야. 이건 그냥 남겨둬. 나중에 돌아와서 먹을게. 괜한 걱정 말고 당신이나 식사해.”

옷을 갈아입으려 안방으로 향했다. 몸은 돌아섰지만 뒤에 선 그녀의 표정이 훤히 읽혔다. 내 말이 신뢰성도 설득력도 모두 상실한 한낱 소리에 불과했다는 걸 알았다. 이제는 미역국보다 영숙이 더 마음에 걸렸다.

“여보, 넥타이 어디 있지? 왜 붉은 색 스트라이프 있잖아, 내가 잘 매는 거.”

화제를 돌리며 난 원 플러스 원을 노렸다. 불안의 징크스를 긍정의 루틴으로 극복하자는 게 원(One), 구글지도보다 몇 배나 정확한 그녀만의 옷 지도를 활용해 그녀의 존재감을 살려놓자는 게 플러스 원(Plus One)이었다.

나쁜 일의 징조가 징크스라면 좋은 일의 징조는 루틴이다. 빨강줄무늬 넥타이는 나에게 성공의 루틴이었다. 회사를 중소기업 기술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히든 챔피언의 반열에 올려놓았을 때도,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되었을 때도, 해외기업으로부터 엄청난 투자확정을 받아낼 때도, 난 그 넥타이를 매고 프리젠테이션에 나섰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성공공식에 단 한 차례의 예외도 없었던 만큼 그건 오늘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었다. 미역국의 마이너스를 일거에 역전은 못시켜도 최소한 제로섬으로 상쇄라도 시켜준다면 원(One)의 목적은 이루어지는 셈이었다.

“여기 이것 말이죠?”

그녀의 검색기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내 눈에는 안 띄더니 당신은 금방 찾네. 이제 마누라 없으면 넥타이도 제대로 못 찾겠는 걸.”

난 넥타이를 건네받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영숙의 입가에서 그늘이 지워졌다. 플러스 원(Plus One)도 무난히 달성한 것 같았다.

“왜 갑자기 넥타이를 찾아요? 누구 중요한 사람 만나러 가는 길이에요?”

성취감에 도취해 무방비상태였던 난 무심코 내던진 그녀의 질문에 휘청거렸다.

“아니, 아는 선배가 서울에서 좀 만나자 그래서.”

누가 봐도 궁색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었다. 평소 논리적 인간을 자부하던 내가 그런 수모를 무릅쓴 건 기대와 실망의 비례관계를 지나치게 신봉한 탓이었다. 발전 역시 기대와 비례관계의 변수건만. 다행히 영숙에게선 무언가를 캐내려는 날카로움도 의심이 내포된 적의도 포착되지 않았다. 내 처지가 딱해보였다. 아내를 속이는 서투름 때문이 아니라 불쑥불쑥 찾아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용산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원효로에 있는 K사까지 남은 거리는 2킬로미터. 버스로 환승하는 게 당연했지만 걷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간이 아직 넉넉하게 남기도 했거니와 면접전략을 최종점검하기에 그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난 이미 면접족집게 질문지란 필살기를 확보해두고 있었다. 인디언 기우제에 비견되는 끈기를 발휘하며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얻은 부산물이었다. 며칠간 동고동락하면서 필살기는 군 생활 점호시간 툭 건드리기만 해도 줄줄줄 흘러나오던 육군복무수칙마냥 완전히 내 몸의 일부로 변모했다. 걸으면서 그걸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하자는 것이었다. 리허설을 소홀히 하는 훌륭한 배우가 없듯이 최후의 승자치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운전면허증 시험에서 만점경력을 자랑하는 암기력이라도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시점이었다.

눈앞에 면접장이 증강현실로 펼쳐졌다. 면접관들이 차례대로 질문해왔다. 난 주저리주저리 문장부호까지 정확하게 읊조렸다.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흘깃거렸다. 그 정도야 대응책이 벌써 마련되어있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블루투스이어폰을 꺼내 귓속에 끼웠다. 나의 신분은 미친 놈에서 이상한 놈으로 격상되었다.

지하도로 내려섰다. 계단을 다 내려서자 통로 한쪽 벽면에 배낭을 베고 누운 사람이 보였다. 포장박스를 바닥에 깔고 아무 것도 덮지 않은 그는 벽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였다. 며칠째 감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은 떡이 졌고 팔로도 미처 가리지 못한 하관에는 수염이 더부룩했다. 머리맡에는 종이컵을 모자삼아 눌러쓴 소주병이 지킴이 역할을 했다. 잠이 든 것 같았다. 벽으로는 시화패널들이 줄지어 걸려있었다. 공교롭게 그의 자리 위에는 김사인의 시(詩)가 명패처럼 걸려있었다.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출처 : 김 사인의 ‘노숙’) 지금 그가 그러고 있지 않을까?

막 스쳐 지나는데 그가 꼼지락거렸다. 잠시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이목구비였다. 배낭 밖으로 고개를 들이민 부피가 두꺼운 책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그 아래 깔린 한 무더기 물건이었다. 일본여행을 가는 사람들의 필수구매아이템, 바로 동전파스였다. 그때서야 물건과 사람이 서로 연결되면서 나를 그날로 끌어갔다.

지하철 안이었다. 곳간이 비면 친척도 떠난다지만 청첩장이며 부고장들은 왜 그리도 세금독촉장처럼 많이 날아드는 것인지. 그날도 지인의 결혼식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보릿고개에 배 꺼질까 뛰는 것조차 말리는 심정으로 자리에 앉아 눈을 감으려는데 옆자리의 노파 하나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아마도 내 얼굴에 써진 ‘지상에서의 삶이 지옥’이란 문구를 남다른 혜안으로 읽었던 모양이었다. 노파는 천국행 티켓을 거저 주겠다며 줄기차게 말을 걸었다. 화를 내자니 한참 어르신이었고 가만있자니 귀찮아 차라리 서서 갈까 고민을 거듭할 무렵이었다. 코앞에 그가 나타났다. 바퀴가 달린 검은 가방을 하나 끌고서.

그는 다짜고짜 손에 든 물건을 내보이며 외판을 시작했다. 그것이 동전파스였다. 그의 판매 전략은 독특했다. 물건에 대한 소개는 단 10초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카피가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그의 출현덕분에 천국행에서 놓여난 나는 카피라이팅의 정석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의 자세로 그걸 분석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에게 자양분이 될 수도 있을 거라 믿으면서.

날씨가 흐립니다. <꺼냄 말>

그런 날이면 어르신들 온몸이 쑤시고 결리시죠? <문제점 공감>

여기 동전파스가 있습니다. <해결책 제시>

어깨, 허리, 손, 발, 아픈 곳 어디든 붙일 수 있습니다. <사용법 설명>

붙임과 동시에 통증이 즉시 사라집니다. <성능 부각>

하나에 단돈 천원입니다. <가격경쟁력 홍보>

그래서인지 지하철판매답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판매량도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그가 투자한 시간의 대부분은 물건과 돈을 주고받는 물물교환에 집중되었다. 기업의 존재이유가 이윤추구에 있다면 이윤은 수금이 되어야 발생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그 또한 시간의 비용을 고려한 아주 탁월한 전략이었다.

그를 특별히 기억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지하철잡상인 중에서 판매왕의 자리에 등극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가 여기에 누워있다니. 고개가 갸웃거려졌지만 여차하면 쫓겨다녀야하는 위험하고도 열악한 시장이었으니 아주 불가해한 일은 아니었다. 생김새만으로 판단컨대 그저 막 살아온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그것이 그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을 거쳐 왔듯 실직자에게도 특정한 진화과정이 있는 게 아닐까? 실직자에서 지하철잡상인이 되고 노숙자가 되고 끝내는 행려병자가 되는. 그 과정이 진화론의 주창자인 다윈의 말처럼 생존에 유리한 변이로의 진행과정인지는 의문으로 남지만.

사내의 곁에 바싹 붙어 누운 내가 어른거렸다. 발걸음을 빨리 했다. 어떡하든 오늘 면접을 성공적으로 매듭지어야 할 이유는 또 한 가지 늘어있었다. 합격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악착스레 얻어내야 할 대체재 없는 필수재 같은 것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1층 모서리에 카페가 있었다. 아직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컨디션 관리의 마지막 단계는 심리적 안정이다. 카페인만큼 거기에 맞춤형 물질은 없다. 카페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다. 주문과 계산이 끝나기 무섭게 내 손에 커피가 주어졌다. 이른바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 서비스였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해 살펴보자니 매장 내 두 직원의 근무태도가 남달랐다. 명확한 업무분장 시스템 하에서 늘 준비된 자세를 유지하는 모습이 이 세계의 프로임을 보여주었다.

면접에 임하는 나를 향한 계시 같았다. 이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소임은 분명 선발이 아닌 불펜투수였다. 누군가가 떠나간 자리를 메우는 역할. 불펜이라면 감독의 호출에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도록 몸 상태가 갖춰져야 한다. 다시 한 번 몸 풀기를 시작하기 위해 구석자리를 찾아들었다. 커피를 겨우 한 모금 넘겼을 때였다. 테이블 위의 전화기가 콜사인을 보내왔다. K사 인사부장 조진호였다.

“박윤기 씨, 이쪽으로 오고 계시나요? 지금 어디쯤 오셨죠?”

다급한 목소리였다. 경기의 분위기가 분수령을 맞이한 게 틀림없었다. 긴장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시각과 청각에 못지않게 극도로 발달한 내 후각이 그가 풍기는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등판준비가 끝났는지를 묻는 듯했다.

“1층 카페에 도착해있습니다만…….”

비싼 비용을 치른 만큼 나의 감각기관이 보낸 신호는 정확했다.

“그래요? 잘 되었네요. 사장님께서 갑자기 급한 일정이 생기는 바람에 면접시간을 좀 당겼으면 해서요. 혹시 지금 바로 올라올 수 있으세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으로 오시면 되는데.”

이른 시간에 기회가 찾아온 건 더할 나위 없이 반길 일이었지만 찜찜함이 사라지질 않았다. 필승조로서의 바통터치가 아니라 어째 패전처리투수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들 어쩌랴. 토라도 달면 출전기회조차 박탈당할 지경이니.

“알겠습니다. 바로 올라가겠습니다.”

선택지라고는 하나뿐인 질문지의 답을 써내면서도 난 자기위안을 그만두지 않았다. 승패나 홀드, 세이브 성적만이 아니라 불펜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지표 중에는 방어율도 있지 않느냐고.

“그럼 저는 7층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기위안은 자기세뇌의 세탁력에 힘입어 자기확신으로 굳어졌다. 그들은 전화로써 나를 사전 테스트한 것이리라. 약속을 대하는 마음의 자세와 임기응변능력 두 가지 항목에 대해서. 그럼에도 확증편향에 사로잡히지 않으려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는 않았다.

조금도 양이 줄지 않은 아메리카노는 곱다시 음료수거함으로 빨려 들어갔다. 구멍에서는 아직 식지 않은 커피의 온기와 향이 김으로 모락모락 피어났다. 그 속에서 갑(甲), 을(乙), 병(丙), 정(丁) 같은 십간(十干)을 구성하는 글자들이 앞을 다투어 뛰쳐나왔다.

면접은 인성과 가치관 등을 확인하는 일반면접과 전문지식을 평가하는 심층면접 두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면접관은 사장, 부사장, 경영본부장, 생산본부장 네 사람이었다. 앞의 세 사람은 일반면접을 주도했고 심층면접은 맡은 직무가 말해주듯 생산본부장의 몫이었다.

면접장의 전반적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거기엔 족집게 과외교사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비상한 예지력과 날카로운 통찰력의 결과물인 그의 예상문제는 일반면접에서 100퍼센트 출제라는 면접사 전무후무의 금자탑을 세웠다. 준비된 답변은 자신감으로 표출되었고 그건 고스란히 면접관들의 뇌리에 첫인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심층면접에서는 철저한 나의 분석력이 돋보였다. 내 커리어에는 기술직 신입사원 면접관이라는 직책도 포함되어있었다. 그 경험에 입각해 난 스스로를 SWOT분석한 후 도출된 데이터로 또 하나의 질문지를 완성했었다. 족집게 점쟁이 수하에 선무당 반풍수는 없는 법, 심층면접의 출제 포인트 역시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응시결과는 대만족이었다.

다만 생산본부장만은 집요하게 나의 전공과 맡아야 할 보직 사이에 괴리감이 크다며 트집을 잡았다. K사의 주력이 프레스금형인데 반해 난 차체전문가라는 것이었다. 그 또한 예상의 범주를 벗어난 발언은 아니었기에 프레스금형과 차체조립과의 연관성, 한때 수행한 프레스공장장의 이력 등을 내세우며 한 발짝 비켜갔지만 의심의 눈초리는 쉽게 걷히지 않았다. 이처럼 그가 비토권 행사에 적극적이었던 건 취업에 성공하면 나의 보직이 기술본부장이었던 만큼 업무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형성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추론이 가능했다. 급기야 떨떠름한 표정을 거두지 않는 생산본부장을 김 사장이 제지하고 나섰다.

“두 분 말씀이 모두 맞아요. 생산본부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많으신 것 같은데 여기가 누굴 심문하거나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니 이쯤에서 그만하시지요. 구인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 않습니까? 기술적으로 백퍼센트 맞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좋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지급할 수 있는 급여 수준도 고려해야할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우리 회사의 조건을 거부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혹시 다른 분들 추가로 질문할 사항 있으신가요?”

종석이 드러나지 않는 천사 역을 떠맡은 흔적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머릿속으로 등장인물들 별로 피아식별표를 완성하고 있었다.

1. 김사장 : 아군

2. 부사장 : 아군에 가까운 우군

3. 경영본부장 : 우군

4. 생산본부장 : 적군

5. 종석 : 특급 도우미 카메오

K사의 의사정족수와 의결정족수가 어떤지는 확인된 바 없지만 이 정도면 의사결정권이 없는 종석을 제외하더라도 콘클라베가 아닌 이상 합격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건 비공식적 통계일 뿐 샴페인을 터뜨리기는 일렀다. 이어질 상황의 전개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질문이 없으면 이것으로 면접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경영지원본부장만 잠시 남으시죠. 저와 함께 박윤기 씨에게 연봉이나 기타 근무조건에 대해 다시 한 번 정확하게 설명해주도록 합시다. 나머지 분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장의 면접 종료발언과 함께 면접관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방을 나갔다. 경영지원본부장이 가져왔던 서류를 챙기더니 사장 옆자리로 옮겨 앉았다. 연봉과 근무조건은 합격통지서를 갈음하는 단어였다. 그때서야 어깨에서 힘이 풀리며 긴장도 풀려갔다. 미역국이라는 징크스로부터도 풀렸고 곧 실직의 감옥에서 풀리면서 앞으로의 인생도 풀릴 것 같았다.

경영지원본부장이 입사하면 받게 될 연봉을 천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사장은 적은 연봉을 미안해하면서 혹시라도 불만이 있으면 이 자리에서 얘기해달라고 말했다. 불만이나 협상 같은 건 취업이란 바늘귀에 어울리지 않는 동아줄이었다. 그건 등 따시고 배부른 노동조합 같은 거대조직이나 할 수 있는 행위였다. 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김 사장의 그 말이 곧 휘발되어 사라지기라도 하듯 찰나의 머뭇거림도 답이 튀어나왔다. 없습니다. 애처로웠던지 갸륵했던지 김 사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봉조정도 고려하겠다고 약속했다.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냐는 물음이 이어졌다. 가능한 빨리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멈춰 섰다. 마지막 남은 체면을 세우려는 알량한 자존심의 발버둥이었다.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다음 달 초로 고쳐 답했다. 경영본부장이 출장비 규정이라든가 제공되는 혜택, 사규에 대한 일반적인 사항들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난 고개만 계속 주억거렸다. 새로운 사이트나 앱에 가입할 때마다 반강제적으로 동의하라며 들이미는 약관을 한 줄 읽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체크표시 하던 때처럼.

“오늘 저녁에 저희들이 내부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그 자리에서 박윤기 씨의 최종 입사여부가 결정될 것이구요. 결과는 내일 오전 중으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수고하셨습니다.”

경영지원본부장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면접의 모든 절차가 끝났다. 홀가분했다. 기쁜 소식을 아내에게 먼저 전하고 싶었지만 내일로 미루었다. 가까스로 물리친 미역국 징크스를 입이 방정이란 속설로 대신하게 할 수는 없었다.

돌아가는 길은 아침에 왔던 길을 답습하는 과정이었다. 용산역에 못미처 지하도를 통과하면서 난 아침의 노숙인을 떠올렸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웠던 자리도 깨끗이 정리되어있었다. 떠나간 것일까 쫓겨 간 것일까? 이 넓은 세상 어딘가에는 한 뼘 그의 자리도 남아있으려니. 안타까움을 그렇게 억지춘향으로 달래는데 갈 때는 보지 못했던 시화 하나가 그가 남긴 질문처럼 매달려있었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출처 : 하상욱의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때일까) 난 답을 달았다. 정녕 그리운 건 그때 그대로의 그대라고. 그 역시 하루빨리 그때 그대로의 그대 모습을 되찾아 그를 그리워하는 가족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지하철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갈아탔다. 면접의 만족감 시효는 짧았다. 그걸 간파한 포만감은 금세 가면을 벗어던졌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지나있었다. 공복감이 아침에 남긴 미역국을 불러들였다. 터부시하며 애써 밀어냈던 그 따뜻함이 간절했다. 참다못해 아내에게 SOS를 날렸다. ‘나 아사직전. 긴급수혈필요. 현재 위치 그대를 만나는 곳 네 정거장 전. 철분이 함유된 미역국 권유 응급의 처방확보.’ 글자들이 말풍선의 틀에 갇히며 아내를 향해 날아갔다.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 답을 기다리는데 엉뚱한 곳에서 기별이 왔다. 종석이었다.

“면접을 잘 본 것 같더라. 그래, 지금 어디야?”

김 사장에게서 면접장의 상황을 전해 들었는지 밝은 목소리였다.

“내가 면접을 잘 본 게 아니라 면접관들이 나를 잘 봐 준거겠지.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 안이야.”

여유는 나에게도 찾아와있었다.

“좀 전에 김 선배랑 통화했는데 아주 만족해하더라구. 나보고 좋은 사람 소개시켜줘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던 걸.”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종석의 말은 안도감을 선사했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 먹칠은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민폐라는 피해의식으로부터의 해방감이 그렇게 만들었다.

“다 네 덕이야. 네가 워낙 나에 대해 좋게 이야기를 해주어 사장이 면접시간 내내 굉장히 우호적이었어. 그러다보니 긴장감도 훨씬 덜 했고 할 말도 제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무슨 말씀을 이리도 겸손하게 하실까. 네 능력이 그만큼 출중하니 평가도 그리 받는 거야. 어쨌든 일이 잘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미리 축하하네.”

“고맙다. 이것저것 신경 많이 써 줘서.”

“야, 고맙다는 말만으로는 곤란하지. 어때, 오늘 저녁에 소주 한 잔. 취업 축하연 겸해서.”

거부할 수도, 거부해서도, 거부하고 싶지도 않은 제안이었다. 아니 종석을 향해서는 그 어떤 거부도 나의 권한 밖이었다. 인류를 구원한 십자가보다 나를 구원으로 이끈 종석의 역할이 더 위대한 현실이고 보면 그야말로 나의 절대자요 신앙이었다.

“그래, 한 잔하자. 오늘은 내가 살게. 어디가 좋겠어?”

“당연히 그래야지. 음, 오늘은 수원에서 만나자. 좀 있다 내가 그쪽에 갈 일이 있어. 단단히 준비해, 비싼 거 먹을 거야.”

종석의 너스레 앞에 약속은 간단히 잡혔다. 버스는 주택단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학교가 파했는지 창밖에선 조무래기들이 인도를 따라 병아리 떼처럼 몰려다녔다. 곧 집 앞이었다.

소주병과 맥주병이 무질서하게 섞이어 테이블 여기저기에 세워져있었다. 불판은 온기가 사라진지 오래고 타다만 삼겹살 몇 조각이 그 위를 뒹굴었다. 밥그릇이며 야채와 찬 그릇 모두 거의 밑바닥을 드러냈다. 채워져 있는 건 두 사람 앞에 놓인 술잔뿐이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흔들거렸다. 종석 역시 몸의 중심을 잡으려는 듯 이따금씩 두 손으로 테이블 가장자리를 붙잡곤 했다. 그때마다 술잔속의 술이 출렁거렸다.

“야, 박윤기. 진짜로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어. 자, 한 잔하고 이제는 힘들었던 거 다 잊어버려.”

종석의 말이 비틀거렸다. 그걸 멈춰 세우려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종석이 너 취했구나. 말이 막 새는데. 그래 한 잔 하자 한 잔 해. 그런데 이 술 마시기 전에 이 말만은 꼭 해야겠어. 이종석, 정말 고맙다. 내 평생 안 잊을게.”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경쾌한 마찰음이 내 다짐에 도덕적 의무감과 권위를 부여하는 종소리가 되었다. 술잔을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피의 서약식을 거행한 것처럼 술 속에서 피비린내가 났다.

“이제부터는 우리 자주 만나는 거다. 이렇게 저녁도 같이 먹고 술도 한 잔씩 하고 말이야.”

종석은 기꺼이 중인의 역할을 다했다.

“그래, 그러자. 다음엔 내가 꼭 먼저 연락할게.”

테이블 위에 두었던 핸드폰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를 찾는 음악을 알아차린 종석이 반사적으로 전화기를 집었다. 화면을 들여다본 그의 입에서 짧은 바람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리자 그의 검지가 수직으로 세워진 채 입술의 한가운데 붙어있었다. 영문을 몰라 하는 나를 달래려 그가 귓속말하듯 소곤거렸다.

“잠깐, 김 사장이야.”

그의 입술에 붙어있던 손가락이 전화기 화면에서 획을 그으며 지나갔다. 김 사장이라는 말에 나의 모든 동작이 얼어붙었다. 지금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의 통화목적이라면 그 중심에 내가 있을 게 뻔했다.

“예, 지금 식사중이에요.”

자신의 현재상황을 알린 후 종석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상대의 말이 길게 이어지는 모양이었다. 바이오닉 고막을 최대한 개방시켰지만 전화기 너머의 소리는 내 가청영역을 벗어나있었다. 내 몸속에 쌓여있던 취기가 걷히면서 그 위로 불안감이 스멀스멀 내려앉았다.

“예.”

“…….”

“아, 그래요.”

“…….”

“예.”

“…….”

계속 짧은 대답만 하던 종석의 얼굴이 굳어져갔다. 그의 눈동자가 허공과 내 얼굴 사이를 왕복했다. 내 눈치를 살피는 듯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아니, 반대를 하는 사람은 한 사람 뿐이라면서요?”

종석의 목소리가 한층 커졌다. 흥분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들뜸의 흥분이 아니라 격분의 흥분이었다.

“…….”

“그럼 선배님 생각은 어떠세요?”

“…….”

“아무리 업무관련성이 큰 면접관이어도 그렇지. 그 외에 다른 모든 면접관이 찬성한다면 합격시킬 수 있는 일 아녜요?”

“…….”

“사장 직권으로도 승인할 수는 없는 일이구요?”

“…….”

아니나 다를까 생산본부장이 유엔의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나 가진 거부권을 행사하는 모양이었다. 나의 채용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 그의 보직이 합격에 결정적인 변수로는 작용하지 못해도 불합격에 결정적인 변수로는 작용한 셈이다. 부푼 재취업의 희망풍선 주둥이를 막 묶으려는 내 손가락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공기가 한꺼번에 새나가며 갈피를 잡지 못하던 풍선이 한쪽 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내 육신 또한 풍선처럼 내동댕이쳐진 기분이었다.

“알겠습니다. 할 수 없죠, 뭐.”

“…….”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잘 말해볼게요. 예, 고맙습니다.”

통화가 끝나고 종석이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할 말은 많지만 서두를 어떻게 끄집어내야할지 망설이는 표정이었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윤기야, 통화하는 것 들어서 알겠지만…….”

“됐어, 그만. 그만해.”

난 손을 흔들며 종석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켰다. 사방이 뿌옇게 흐려있었다. 몸이 휘청거렸다. 겨우 중심을 잡으며 발걸음을 떼어놓았다. 종석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먼 곳에서 울려오는 메아리마냥 웅웅거렸다. 미역국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신이라 믿었지만 그건 앞으로 영원히 나에게 징크스를 넘어 트라우마로 자리 잡을 것만 같았다. 그나마 아내에게 오늘 면접 이야기를 아직 꺼내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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