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십시오, 박윤기 씨. 반갑습니다. 와타나베입니다.”
글자의 음절수로 치자면 그의 이름이 더 길었지만 발음음절수에서는 바뀌어있었다. 받침이 있는 음절마다 예외 없이 그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나 박윤기는 바끄유느기가 되었다. 일본인 특유의 구강구조가 빚어낸 현상이지만 그는 또박또박 충실하게 발음하려 애를 썼다. 그의 말투는 생김새와 어우러지면서 관상이라면 일자무식인 내게조차 어째 공학 같은 이과계열보다는 경영이나 법학 같은 문과계열에 가깝다는 인상을 짙게 남겼다. 반듯한 정장차림. 자로 잰 듯 6대4로 정확하게 나누어진 가리마,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기름기가 반지르르한 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힘차게 넘어가 있는 머리카락, 역삼각형의 얼굴, 코끝에 걸린 금테 안경, 잘 정돈된 콧수염. 일제강점기 시절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식민지 소학교의 교장선생을 연상시켰다.
“처음 뵙겠습니다. 그저께 통화했던 박윤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악수를 청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난 반대로 일본어로 대꾸했다. 나의 일본어발음이 그의 한국어발음과 크게 다를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내지른 말하자면 다분히 계산된 도발이었다. 일본인 헤드헌터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능숙한 일본어 구사가 필요한 일자리여도 굳이 비싼 AI(Artificial Intelligence) 기반의 동시통역 핸드폰 없이 실시간으로 업무처리가 가능함을 내보이는 고단수의 홍보 전략이라고나 할까? 내 의도는 먹혀들었다. 그때부터 우리 사이에 소통의 수단은 일본어로 통일되었다.
내가 그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이틀 전이었다. 그는 자신을 J리쿠르트먼트의 헤드헌터라고 소개하면서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이력서를 접했다는 말과 함께 대뜸 일본에 소재하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취업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어왔다. 취업이라는 전제조건하에서라면 못할 것도 못갈 곳도 없던 차였다. 설령 일자리가 에우리디케를 찾아가는 오르페우스의 지옥행에 동행하는 리라 짐꾼이라 해도 쌍수를 들고 나설 판에 언어와 문화가 익숙한 일본이라니. 거기다 과거의 불행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나의 선입견은 그간의 대인관계를 통해 말끔히 정화되어있었다. 특히 비즈니스맨들은 신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고 규칙에 어긋나는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혈연과 지연에 얽매여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고 편법이나 뒷거래가 횡행하는 법이 없었다. 당연히 이전 회사에서처럼 잘못된 평가로 직장을 떠나야 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와타나베의 방문요청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동의한 건 그런 기대 때문이었다.
와타나베는 A4 사이즈의 종이 한 장을 디밀었다.
“좀 더 구체적인 상담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자료입니다. 작성 좀 해주세요.”
일본어 이력서였다. 구직의 원과 구인의 원이 근접한 모양이었다. 이력서는 아마도 그 두 원의 접점을 찾는 매개물이 될 테지. 난 정성을 다해 빈칸을 메워나갔다. 가능하면 교집합의 범위가 확대되기를 바라면서. 작성이 끝난 서류를 집어 들며 와타나베가 커피 잔을 들어올렸다. 커피를 홀짝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30년간을 한 직장에서 근무하셨다니 대단하신데요. 그리 오래 근무한 직장을 퇴직한 사유가 무엇인지요?”
작년 연말 사실상의 해고를 통보하던 명수의 능글맞은 미소가 잠시 떠올랐다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워진 탓에 구조조정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권고사직을 당했죠.”
몇 달 전만 해도 실직자란 옷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기성복이었지만 어느새 맞춤복이 되어있음을 깨달았다. 세월은 맞지 않는 옷도 몸을 재단해 거기에 맞추어내는 유능한 조각가였다.
“특별히 개인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퇴직하신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꽤 보수가 높으셨네요. 이 정도라면 일본에서도 중역 레벨은 되어야겠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 자료를 바탕으로 맞는 조건의 회사를 찾아보겠습니다. 좋은 소식이 나오는 대로 연락을 드리죠.”
경기시간이 지났다한들 인저리 타임도 있거늘 와타나베는 떡하니 경기장에 붙어있는 시계조차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경기종료를 선언했다. 나를 위해 경기를 주선한 줄 알았더니 자신을 위한 경기를 벌인 것이었다. 그를 통해 내가 구직활동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의 정보를 이용해 구직활동을 한 셈이었다.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그를 비난하거나 원망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나와 같은 실직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 노력한 것뿐, 주관의 굴레가 쳐놓은 착각의 함정에 내가 걸려든 것이었다. 오히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훌륭한 시력을 자랑하기보다 드러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넓은 시야를 가져야한다는 교훈을 얻었음에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희극배우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난 와타나베와 인사를 나누고 그곳을 벗어났다.
테헤란로에는 통행이 한결 줄어있었다. 출근시간이 지난 탓이려니. 높은 빌딩들이 늘어선 그 거리에서 난 이방인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흩뿌렸다. 강수확률 30퍼센트. 오늘의 날씨를 기상캐스터는 그렇게 예보했었다. 그걸 외출지수 양호로 해석한 내 손엔 우산이 없었다. 빗방울이 얼굴 위로 떨어졌다. 내 준비성부족을 꼬집는 기상캐스터의 조롱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일기예보는 그렇게 강수확률이란 기이한 자료로 발표되고 있었다.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슈퍼컴퓨터를 도입한 결과물이었다. 0퍼센트나 100퍼센트 같은 극단적인 수치만 아니면 절대 틀릴 리 없으니 슈퍼컴퓨터는 아주 혁신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이 틀림없었다. 30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확률인 비 오지 않음 쪽에 배팅한 내가 바보였다. 통계가 겉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면 확률은 속이 시커먼 거짓말이었다.
기상청은 오늘의 예보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까? 변함없이 무결점 무오류를 달성했다며 축제분위기 속에서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지나 않을까? 주관의 굴레가 쳐놓은 착각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모든 인간들이 회전하는 지구에 붙어사는 걸 망각한 채 자신들이 지구를 돌리며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빗방울의 차가움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와타나베로부터 생겨난 실망감의 농도가 빗물에 희석되어 강수확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의 팻말이 빤히 보일 즈음이었다. 주머니 속에 든 전화기로부터 신호가 왔다. 정명의 전화였다. 정명은 엄밀히 말하면 고등학교 한 해 선배였지만 재수를 하는 바람에 대학동기가 되어버린 친구였다. 우린 같은 학과를 나왔고 졸업 후에도 자동차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다만 그의 직장이 H대기업으로 워라밸의 성지였다면 나의 일터는 S중소기업으로 워커홀릭의 성지였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그걸 두고 불공정이나 차별 운운할 계제는 못되었다. 그 대가로 난 낭만과 로맨스로 점철된 대학생활을 오롯이 누릴 수 있었으니까.
묘한 건 S사가 H사의 협력회사라는 점이었다. 말이 좋아 협력이지 두 회사의 관계는 이미 전 세계 공용어가 되어버린 Chaebol(재벌)과 Gapjil(갑질)로 대변되는 사이였다. 난 약자이면서 피해자의 운명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 사회적 갈등이 생길 때마다 입으로나마 약자의 편이 되려한 나였지만 약자와 약자의 편은 분명 달랐다. 미미하나마 도움을 줄 여력이 있는 쪽이 약자의 편이라면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쪽이 약자였다. 약자들이 그나마 유일하게 비빌 언덕이라면 약자의 편뿐이었다. 정명은 그걸 깨우쳐주기라도 하듯 어려울 때마다 내 편에 섰다.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친구라는 이유로 갑질의 주객이 전도되었다는 핀잔까지 들어야했다.
“박 전무, 지금 어디야?”
정명은 내 것이었지만 내 것이지 않은 호칭을 사용해 나를 불렀다. 어울리지 않는다며 내던져버린 옷을 다시 주워 입은 듯한 느낌이었다.
“잠깐 볼 일이 있어 강남엘 왔다가 이제 집에 돌아가려구. 왜?”
지하통로 입구에 중년 하나가 비를 피해서서 우산을 팔고 있었다. 오가는 사람을 멀뚱멀뚱 쳐다만 보는 게 처음 장사에 나선 것 같았다. 아니면 짚신을 팔러간 동생을 더 걱정하고 있거나.
“강남이야? 그럼 집으로 가지 말고 이쪽으로 와. 점심이라도 같이 하자. 할 말도 좀 있고. 혹시 지금 하고 있는 일 있어?”
현재의 상태가 곧 최적의 상태라고 믿는 그는 나만큼이나 입사 이후 이직도, 이직할 결심도, 이직할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외골수였다. 백골이 진토가 되어도 회사를 향한 일편단심만은 거두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회사마저 감동시킨 모양이었다. 지사와 공장들이 지방에 숱하게 널려있었지만, 또 순환근무제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었지만, 회사 역시 그의 근무지를 본사가 있는 강남에서 옮겼으면 한 적도, 옮기라고도, 옮기려고도 하지 않는 걸 보면.
“하는 일은 무슨. 여전히 백수지. 할 말이 뭔데 그래?”
“뭐긴 뭐야. 이 선배가 널 백수에서 구제해주려고 그러지. 잔소리 말고 바쁜 일 없으면 이리 와. 알았지?”
끊어질 듯하던 전화를 정명이 가까스로 살려냈다.
“아, 참. 너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빨리 내게 보내봐. 지금 파일 갖고 있어?”
이력서, 자기소개서, 백수구제. 맥락이 이어지는 단어들이었다. 백수구제에 필요하다면 무엇이든 당장 구해야했다. 없으면 만들기라도 해야 할 형편이었다.
“지금 갖고 있지는 않지만 보내줄 수는 있어. 집에 연락하면 되니까.”
“그래? 잘 됐네. 그럼 메일이나 문자로 바로 보내줘. 상세한 이야기는 좀 있다 만나서 하고. 그럼 열두 시에 우리 회사 정문에서 봐.”
아궁이에 정명이 불쏘시개를 던져 넣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불씨가 남아있다면 불길은 금방 살아날 것이다. 꺼져가는 불씨를 살려내는 건 내 몫이었다. 급히 영숙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집에 있었다. 원하는 자료들이 보관된 컴퓨터 폴더를 알려주면서 그걸 정명의 메일주소로 쏘아달라고 부탁했다. 부부유별(夫婦有別)은 윤리지만 부창부수(夫唱婦隨)는 과학이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영숙의 문자가 도착했다. ‘정보위성 발사완료. 비콘(Beacon) 신호 확인할 것.’ 확인하려들기도 전에 정명으로부터의 비콘 신호도 수신되었다. ‘OK’
걸어서도 정명과의 약속은 충분히 지킬 수 있었다. 대신 우산이 필요했다. 우산장수에게 다가가 구입의사를 밝혔다. 서툰 그의 행동 탓에 구입에 소요되는 사이클타임이 지나치게 길었다. 자동차 생산라인을 설계하던 직업의식이 되살아났다. 시간과 동작에 관한 연구. 그의 모든 움직임에는 그것이 결여되어있었다. 반복되거나 불필요한 동작이 너무 많았다. 숙련성도 보이지 않았다. 초짜냄새가 여기저기서 진동했다. 저러다 오늘 안에 저걸 다 팔 수나 있을까? 그의 내력을 속속들이 알고 싶은 욕망과는 무관하게 왠지 진한 동질감이 느껴져 걱정이 앞을 가렸다. 개선책을 알려줄까? 괜한 오지랖임을 모르지 않았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강남역 교차로에 도착하자 비는 30퍼센트라는 제 임무를 마쳤는지 거의 그쳐있었다. 우산을 걷었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인도 곳곳에 만들어진 물웅덩이에서 고층건물의 조각들이 이빨 빠진 모자이크가 되었다. 무심코 빠진 곳들을 채워 넣는데 그 위로 갑자기 한 여성의 얼굴이 나타났다. 나를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윤기 씨, 박윤기 맞지?”
고개를 들어보니 빨간 우산을 펼쳐 등 뒤에 걸친 쇼트커트 머리의 여성이 웃고 있었다. 상대는 나를 아는데 나는 상대를 알지 못할 때만큼 당혹스런 순간은 없다. 눈썰미 부족은 자타가 인정하는 나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럴 때 얼렁뚱땅 넘겨짚으며 아는 체 할 넉살이나,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용기라도 있었으면 좋으련만. 위기를 모면할 기회는 좀체 주어지지 않았다. 곤혹스러워하는 나를 놀리듯 그녀는 한층 가까이 다가와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기 시작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의류매장의 마네킹 연기가 전부였다. 승기를 잡은 그녀가 아킬레우스의 발목을 정확히 조준해 파리스의 화살을 쏘았다.
“이것 봐, 이것 봐. 사람 못 알아보는 건 여전하네. 나, 숙희야.”
그때서야 어깨를 덮을 정도로 찰랑찰랑한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갸름한 얼굴의 한 여대생이 그녀의 얼굴에 겹쳐졌다.
내가 숙희를 처음 만난 건 부산에 소재한 한 대학에 입학하던 해 야학동아리의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그곳의 입장권이 손에 들어오게 된 건 순전히 비루함으로 도배되어있던 내 삶을 위장하려는 잔머리가 통한 결과였다. 입학시즌이면 캠퍼스에서는 으레 각종 동아리들의 신입생 유치쟁탈전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다. 백주에 벌이는 호객행위가 극성을 부리던 어느 날 한 선배가 두른 어깨띠의 문구가 내 눈을 자극하고 들었다. 불우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 모집. 정의감을 화수분처럼 뿜어내는 그 문구야말로 나의 과시욕을 채워줄 마스터키였다. 난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 선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동아리의 첫 행사가 바로 그 자리였다.
그날 숙희는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의 하얀 피부와 야윈 몸매, 꾸밈없는 옷차림은 나의 옥시토닌 분비를 촉진시키는 촉매에 다름 아니었다. 도파민이 생성되면서 생존과 번식을 향한 본능이 고개를 치켜세웠다. 그날부터 나의 모든 세포는 썸남썸녀로 가는 길목에 집결했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간절하기를 간절히 빌었고 그녀 또한 나를 간절해하기를 간절히 빌었다. 하늘이 나와 그녀의 간절함을 알아주기도 간절히 빌었다.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며칠 후부터 우린 야학에서 각자 수학과 사회를 가르치는 얼치기교사가 되었다. 야학의 시간표에는 수학과 사회가 마치 형제라도 되는 듯이 같은 요일에 앞뒤로 붙어있었다. 썸으로 가는 탄탄대로가 펼쳐진 셈이었다. 그 길에 속도제한규정이 사라진 건 그해 가을이 한참 깊어갈 무렵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그날은 10월 16일이었다. 학교에서 시위가 일어났다. 독재와 민주인사 정치탄압에 반대한다는 명분을 내건 시위대는 도서관 앞에서 발대식을 거친 후 교정을 돌아 가두진출을 시도했다. 이번에도 정의감이란 과시욕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 나는 대열의 어깨동무에 양팔을 맡겨두고 있었다. 정문 앞에는 투구와 방석복 차림의 전경 중대가 주인이 부탁하지도 않은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임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들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손님을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주인을 감시했다. 어이를 상실한 시위대는 선구자와 통일의 노래, 애국가 등을 떼창으로 부르며 정문을 사이에 두고 한동안 그들과 대치했다.
전선을 돌파하는 방법을 두고 무리사이에서 아이디어가 속출했다. 누군가 고함으로 행동지침을 내렸다. 부속고등학교의 담벼락을 밀어버리자. 방법을 제시한 게 집단지성의 힘이라면 성공적으로 실행한 건 집단체력의 힘이었다. 부속고등학교의 블록담은 ‘하나, 둘, 셋’ 구호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행렬은 8차선 대로가 이어지는 온천천까지 거침없었다. 그 사이 시위대의 몸집은 풍차 돌리기에 복리를 더해 불린 예금원금처럼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전경대라고 가만있지 않았다. 병력이 보충되고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두 세력 간에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루어졌다. 몽둥이를 든 전경대에 보도블록을 깨어 던진 돌멩이가 날아드는가 하면, 전면이 쇠창살로 가려진 진압차량에서 최루탄이 터져 나왔다.
자연세계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 균형의 원칙이지만 영원한 균형은 없다. 균형을 깨뜨리는 건 외부에서 가해지는 힘이다. 시위대와 전경대의 대치 역시 힘에 의해 서서히 균형에 균열이 가고 있었다. 그 힘의 원천은 역대전쟁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군량미였다. 아무리 젊음의 패기로 똘똘 뭉쳤다 해도 물과 음식의 공급이 끊긴 시위대와 때맞춰 전투식량이 제공되는 전경대의 전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초대받은 잔치에 먹을 게 없어지면 손님들은 핫바지 방귀 새듯 하나둘 사라지는 법이다. 시위대는 줄어든 병력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공격의지는 벌써 사라져버렸고 그저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면서 버티기로 일관할 뿐이었다. 나 역시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겨우 손수건으로 가린 채 악전고투 중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어려움에 처하면 간사하기 그지없어지는 것일까? 다급한 그 상황에서 불현듯 오늘이 화요일이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야학의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정의는 그곳에도 필요했다. 또 다른 정의감이 도망갈 명분을 마련해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음이 흔들렸다. 원칙주의를 내세운 정의의 사도가 될 것인가, 기회주의로 오염된 정의의 사도가 될 것인가. 생육신과 사육신의 갈림길에 선 것 같은 결코 쉽지 않은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다행히 고민은 시작도 하기 전에 저절로 해결되었다.
저벅저벅 지축을 흔드는 소리와 함께 전경대가 새카맣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조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관도대전에 참전한 원소의 십만 대군이 따로 없었다. 아무리 출중한 특공부대여도 인해전술을 당해내기 어려울 판에 특공부대로 인해전술을 구사하는 전경대였으니 시위대의 입장에서는 ‘악으로 깡으로’를 백날 외쳐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양쪽으로 협공해드는 진압병력의 틈에서 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온천천의 구정물을 맨몸으로 건너는가 하면, 골목길로 도망을 가기도 하고, 주택의 담을 넘어 몸을 숨기는 사람마저 생겨났다.
난 어느 쪽이 도망가는 방향인지조차 감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그들이 차츰 간격을 좁혀왔다. 이제 양자택일의 선택지는 엉뚱하게 바뀌어있었다. 당당한 체포자가 될 것이냐, 구차한 도망자가 될 것이냐. 어김없이 나의 구미를 당긴 것은 일단 살고 후일을 도모하는 쪽이었다. 온천천을 온천탕으로 여기며 막 몸을 던지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버스 한 대가 거짓말처럼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았다.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버스의 문이 열렸다. 전격Z작전이 벌어졌는지 마이클 나이트가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학생, 이쪽으로 와. 빨리, 빨리.”
이것저것 따질 새가 없었다. 버스에 올랐다. 마침 출입구 바로 앞의 좌석은 비어있었다. 무의식중에 털썩 자리에 앉자 곧장 마이클나이트가 다음 지령을 내렸다. 키트, 출발. 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출발했다.
“학생,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세상에 공부하는 학생들을 이리 막 대하는 나라가 어디 있어 그래. 망조가 들었는지, 원.”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마이클 나이트는 하얀 소복을 입은 아주머니로 바뀌어있었다. 차창 밖으로 도시의 거리모습이 휙휙 지나쳐갔다. 잎사귀를 반쯤 떨어낸 가로수들이 최루가스를 잔뜩 머금은 채 저녁 어스름 속에서 콜록거리며 몸을 뒤척였다.
“예, 다친 데는 없습니다. 태워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너무 고맙습니다.”
하시라도 가문의 명예를 저버릴 수가 없어 인사치레를 막 끝내는데 왠지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버스의 내부구조도 남달랐지만 대부분의 승객이 소복과 상복차림이었다. 버스의 행선지가 궁금했다.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이 버스 어디로 가나요?”
“이거? 시신 운구하는 장의차가 어디로 가겠어? 공원묘지지, 석계공원묘지. 아니 글쎄, 차가 하도 막혀 왜 그러나 싶어 밖을 내다보았더니 학생들이 마구 쫓겨 다니지 않겠어? 그래서 내가 차를 세우라고 했지. 저 무지막지한 전경들에게 잡히면 얼마나 두드려 맞을까? 내 간이 다 콩알만 해지더라구. 그러니 중간에 내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 장례절차가 끝나는 대로 다시 여기로 와서 내려줄 테니. 그때 집으로 돌아가. 참, 학생 타기 전에 여학생도 하나 내가 태웠는데……. 어디 있남?”
아주머니의 고개가 뒤로 향하면서 자석처럼 내 고개를 끌어당겼다. 정확히 180도를 돌아 동공의 초점이 제일 뒷자리에 맞춰졌을 때였다. 한 여학생이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숙희였다. 지친 기색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서 엷은 미소가 피어났다. 진흙탕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꽃을 피우는 연꽃처럼.
“응, 저기 앉아있네. 제일 뒤에. 아니 그런데 두 사람 아는 사이야?”
“아, 네. 친구예요. 잠시만, 아주머니. 제가 자리를 뒤로 좀 옮길게요.”
지정체로 늦어진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 운전수가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녀를 향해 나아가는 좁은 통로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기가 힘들었다. 겨우 다가가자 숙희 옆에 앉았던 검은 양복의 사내가 말없이 한 칸 옆으로 비켜 앉았다. 그의 팔에는 검은 줄 하나가 그어진 장례완장이 채워져 있었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고인의 가시는 길에 외로움을 덜어준 감사의 표시이자 장애물 통과에 대한 포상이었다. 목례로 답하며 엉덩이를 그곳에 내려놓았다.
“어떻게 된 거야. 어디서 탔어?”
“나도 막 탔어. 짭새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우연히 이 장의차를 만난 거야.”
얼룩과 먼지투성이인 숙희의 청바지가 도망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 당당한 체포자가 아닌 구차한 도망자의 길임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어딘가로 그 책임을 돌리고 싶었다.
“오늘 우리 야학 수업이잖아, 어떡하지?”
구두를 닦고, 신문을 돌리고, 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면서도 배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학교를 찾는 아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그 정도면 내 죄책감을 씻어낼 수 있는 성수(聖水)로 충분했다.
“어차피 오늘은 가기 힘들 것 같은데. 여기서 내렸다간 바로 짭새들에게 불심검문 당할 걸. 곧 시 경계를 벗어날 텐데 그러면 시내버스도 없어. 결국 이 버스 목적지인 공원묘지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얘기지. 야학수업이야 우리 학교에서 오늘 일어난 일을 다들 알고 있을 테니 다른 학교 선배들이 땜빵해주겠지, 뭐.”
야학동아리는 우리 학교만이 아닌 여러 다른 학교의 대학생들이 모여 만든 연합 동아리였다. 오늘의 사태는 우리 학교만의 문제니 숙희가 말한 땜빵은 실현가능성이 아주 높은 단어였다. 반면 비록 기회주의자라는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는다 해도 보이고 싶었던 정의감의 실현가능성은 희박해졌다.
“그래, 포기하자. 우리 안전이 제일 우선이지. 저 앞에 앉은 아주머니께서 그러셨어. 장례식만 끝나면 바로 돌아와 이곳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난 불가피한 상황에서 비겁한 선택을 강요당했다는 넋두리를 멈추지 않았다. 행동방향이 결정되자 잊고 있었던 피로감이 일시에 찾아왔다. 숙희도 눈을 감은 채 차량의 흔들림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시야각이 줄어들면서 주변의 소리들이 사라져갔다.
공원묘지에서 돌아온 장의차가 우리를 학교 앞에 다시 내려놓은 건 밤 열시가 넘어서였다. 도심의 환락가는 저리 가란 듯이 이 시간이면 화려하게 번쩍이던 카페와 주점들의 네온사인은 모두 꺼져있었다. 중고책방과 서점들을 물리치고 흥청거리던 그들의 당당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한 잔 술의 취기에 호기롭게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논하던 시장통 막걸리집의 떠들썩함도 보이지 않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출처 :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이야기 역시 들리지 않았다. 모두가 군홧발에 몸을 땅바닥으로 바싹 엎드린 채 페퍼포그의 포화 속에 숨을 죽였다. 매일 다니던 그 거리의 변화가 낯설기만 했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것 같은데. 너 집에 어떻게 가려고 그래?”
숙희는 시내버스를 한 시간씩이나 타고 가야하는 내 귀갓길을 걱정했다.
“걱정 마. 너 바래다주고 갈게. 나야 어떡해서든 집에 갈 수 있겠지. 온천장까지 걸어가면 아마 버스가 있을 거야.”
숙희의 자취방이 학교 앞에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 이상 여성보호의 기사도 정신까지 내팽개칠 수는 없었다. 그건 정의감까지 갈 것도 없이 남녀 간의 기본적인 예의에 해당했다. ‘오늘’이라는 시점과 ‘학교 앞’이라는 장소도 간단히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온종일 국가권력을 상대로 투쟁을 벌였던 곳이기에 어떤 뒷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그걸 일깨우기라도 하듯이 가로등 아래에서 최루가스의 입자들이 번득였다. 시위대의 함성과 노랫소리가 그곳에 그대로 엉겨붙어있었다. 거센 파도처럼 밀고 내려가던 아침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가슴이 울컥하고 미어졌다.
“윤기야, 잠깐만. 저기 봐. 이리 가면 안 되겠어.”
숙희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무장한 경찰 두 명이 인도를 막고 서있었다. 벌써 체포 작전이 개시된 모양이었다.
“그래, 이 길로 갔다가는 잡히기 안성맞춤이야. 저리로 돌아가자.”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재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얼마 가지 못해 그마저 또 다른 방패와 진압봉에 막혀버렸다. 휴학 후 백골단에서 군 복무를 하는 학생들의 활약상이 돋보이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뿐일까? 교내에서 언더커버의 임무를 수행하는 프락치들 역시 전공을 세우려 눈에 불을 켜지 않겠는가. 갈 길을 잃고 막막해하는데 숙희가 손을 잡아끌었다.
“이쪽으로 가자. 내가 아는 골목길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산성 쪽으로 난 길이라 아마 안전할 거야.”
골목은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정도로 좁았다. 가로등마저 없어 혼자라면 두려움이 들 정도로 어둡고 음산한 길이었다. 숙희는 앞장서서 익숙하게 길을 헤쳐 갔다. 나의 신분은 그녀를 보호하는 기사에서 그녀를 따르는 집사로 미끄러졌다. 등허리에 땀이 밸 무렵 숙희가 가쁜 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휴. 이제 다 왔네. 저 집이야. 그런데 넌 어떻게 가?”
그때서야 난 꼭 쥐고 있던 숙희의 손을 놓았다.
“걱정 마. 갈 수 있어.”
“봤잖아. 짭새들이 쫙 깔렸어.”
사실은 두려웠다. 오는 도중 보았듯이 아무 일 없이 집까지 간다는 건 무리였다. 학교 앞 여인숙을 찾아든다 해도 안전하단 보장이 없었고 무엇보다 방값을 지불할 돈이 없었다. 투잡 스리잡이 무색할 정도로 이집 저집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비를 조달하는 숙희의 처지를 모르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건 죽기보다 싫었다.
“나도 골목길로 피해가지 뭐. 설령 검문을 당해도 혼자라면 괜찮을 거야.”
가방 속에 든 공학용계산기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걸 여인숙에 전당잡히면 하룻밤 정도는 재워 주리라.
“무슨 소리야. 지금 너 꼴이 꼭 나 잡아가슈 하는 모양샌데.”
아닌 게 아니라 난 전쟁 중인 전투원을 빼다 박은 모습이었다. 흙투성이 옷에 속옷 깊숙이까지 배어든 땀내, 먼지로 뒤덮인 운동화, 여기저기 긁힌 팔다리의 상처들. 점입가경으로 땀이 말라붙은 소금기와 점점이 찍힌 붉은 핏자국은 옷의 위장무늬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었다.
숙희가 다가와 내 손을 다시 잡았다. 그리곤 눈을 내 것에 맞추었다. 손가락을 통해 그 의미가 전해져왔지만 난 확신할 수가 없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데 그녀가 자취방이라는 낡은 한옥을 향해 말없이 돌아섰다. 그녀의 팔에 연결된 내 몸이 이끌리면서 내 발자국이 그녀의 발자국 위로 차례차례 포개졌다.
“그래, 정말 숙희구나. 살다보니 이렇게 만나지네. 여긴 어쩐 일이야.”
세월은 나를 냉동인간으로 만들어 생체시간을 멈춰 세웠다가 40년이 지난 후에야 소생시켜놓았다. 세월의 풍파가 많은 것을 변화시켜놓았지만 당시의 내 감정은 바래지지도 녹슬지도 않았다.
“아들 보려고. 여기 서울에 살고 있거든. 너는 지금 어디 가는 길이야?”
한때는 평생을 함께 하려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난 그녀의 변화에 대해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나만 냉동되었던 것일까? 못내 억울했다.
“나? 일 때문에 사람을 만나기로 해서 가는 길이야.”
나의 잔꾀는 긴 냉동의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그 짧은 시간에도 ‘취업’을 ‘일’로 교묘하게 바꿔치기하는 기지를 발휘했다. 거짓말이란 양심의 가책도 구직자란 창피도 모면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데 넌 뭐해? 전업주부야?”
안도감을 맛볼 틈도 없이 후회가 찾아왔다. 순간의 방심이 나를 수렁에 빠뜨린 것이다. 직업을 묻는 질문은 부메랑이 될 것이 자명했다.
“작년까지 여고에서 선생을 했어. 지리 과목을 맡았지. 그러다 올해 초에 명예퇴직을 했고. 넌 어떻게 지내? 자동차 관련된 일을 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다른 애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보기도 했었는데 넌 통 볼 수가 없더라. 알려진 연락처도 없고.”
내가 던진 부메랑은 속도도 방향도 위치도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되돌아왔다.
“나야 뭐, 그럭저럭 지내.”
부메랑의 복귀기능을 숙지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느라 난 안절부절못했다.
“너, 사람 만나기로 했다며. 바쁜 것 아냐? 안 바쁘면 어디 가서 차 한 잔 할래?”
숙희에게서 추궁의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냉동인간이 되기 전의 기억을 들추어보면 그건 눈치 없어서가 아니라 배려에서였다.
“지금은 조금 시간이 그러네. 두 시간쯤 후면 괜찮을 것 같은데. 그때 이곳 주변 어디에서 만나는 게 어때?”
“그래 그럼. 마침 저기 카페가 보이네. 저기서 만나자. 두 시, 좋지?”
약속을 정한 후 숙희와 등을 지며 헤어지는 거리 위로 햇살이 돋기 시작했다.
“W사 알지 왜? 그 회사 황 대표 말이 박 전무 같은 인재가 필요하대. 걔네들 이번에 터키에다가 현지법인을 하나 설립했나봐. 거길 맡아줄 사람을 찾기에 내가 박 전무 이야길 했지. 그랬더니 이 사람 성질이 얼마나 급한지 바로 이력서를 보내달라는 거야.”
해장국을 앞에 두고 정명은 영숙과 내가 급히 핫라인을 가동시켜야만 했던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
“박 전무는 무슨? 실업자보고 전무라니.”
호칭을 두고 난 볼멘소리를 흘렸다. 그리 불릴 때마다 실직상태인 현재가 떠오르면서 열등감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탓이었다. 정명의 의도가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은 맘대로 제어가 되질 않았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나에게 구명튜브를 던져준 그를 향해 왜 호화크루즈를 보내지 않았냐며 화를 내는 꼴이었다.
“좀 기다려 보자구.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으니까.”
투정을 부리는 듯한 태도에도 그는 오히려 나를 달래려들었다. 그나마 내게 양심은 남아있었던지 무안함이 찾아왔다. 괜히 국밥을 한 숟가락 가득 담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곤 다 늦은 감사인사를 했다.
“고마워. 여러 가지로 신경 써줘서.”
하긴 그가 고마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갑작스런 연락으로 부부사이의 핫라인을 점검할 수 있었던 것도, 나의 현재위치와 상관없이 언제든 핫라인 버튼으로 발사 가능한 정보위성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덕택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4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까지 개발하게 되지 않았는가.
“고맙긴. 내가 해준 것도 없는데. 한 번씩 찾아와, 저녁이라도 같이 하게. 너 맥주마니아잖아. 여기 맛있는 맥줏집 많아.”
나를 향한 호칭이 이제는 너로 바뀌었다. 소탈하면서도 속 깊은 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 참. 얼마 전에 K사에 면접 봤어. 그들이 원한 분야가 내 전공과 다른 프레스 쪽이라 보기 좋게 떨어졌고.”
K사 역시 정명이 근무하는 H사의 협력업체라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었다.
“K사라고? 그 회사 김 사장,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그런데 면접에서 떨어졌다고? 가만 있어봐. 이 양반 전화를 한 번 해봐야지.”
급히 전화기를 꺼내 통화버튼을 누르는 그는 어미닭 곁을 떠난 병아리를 포착해 수직 급강하하는 한 마리 매였다. 난 불안감에 휩싸였다. 갑질성 인사 청탁의 당사자에 목격자라는 이중신분 보유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뒤를 이었다. 이야기를 잘못 꺼낸 걸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명의 병아리 사냥은 실패로 돌아갔다.
“전화가 안 되네. K사라면 진즉에 내게 얘길 하지. 그럼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면접을 보았다는 걸 보니까 합격했으면 다닐 의향이 있었던가봐?”
그의 눈빛에는 먹잇감을 놓친 아쉬움이 가득했다. 아쉬움은 코로나 바이러스만큼 전염성이 강했고, 인간의 이중성은 박쥐만큼 훌륭한 전염매개물질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금방 아쉬움에 전염되었다.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 합격만 하면 어딘들 가고 싶지 않겠어.”
그 사이 우리들의 그릇은 깨끗이 비워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까지 정명은 나를 위로하기 급급했다.
“알았어. 거기도 내가 나중에 연락해보께. 그리고 이곳이든 저곳이든 연락이 오는 대로 알려줄 테니 조급해하지 말고 진득하니 기다려봐.”
날씨는 내 손에 든 우산을 어색하게 만들다 못해 양산으로의 용도 변경을 종용했다. 햇살아래서 난 계산을 하느라 조금 늦는 정명을 기다리면서 숙희를 생각했다. 날씨가 우산의 용도를 바꾸어놓듯 세월은 우리를 연인에서 타인으로 바꾸어놓았다. 안타까운 건 우산의 용도가 가역적인데 반해 우리 관계는 불가역적이란 점이었다. 정명이 밖으로 나왔다. 그는 통화 중이었다. 관심이 쏠렸지만 반쪽대화로 전체맥락을 더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늘 바로 만나고 싶다는 말씀이세요?”
“…….”
“그래도 그렇지.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
“가능은 해요. 지금 서울에 있으니.”
“…….”
“오후 두 시. 서울역요.”
“…….”
“일단 알았어요. 그렇게 전할게요.”
정명이 웃는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잡았다.
“황 대표가 급하긴 급한가보네. 광주 본사에 있는 줄 알았더니 이 선수 지금 서울 출장 중이라고 박 전무를 오늘 서울에서 만나고 싶다는데? 이력이 자신이 원하던 바와 꼭 일치한다면서. 두 시에 서울역 주변에서 보쟤. 아, 만나자는 장소가 여기 벌써 문자로 왔네. 두 시면 지금부터 서둘러야겠는데. 빨리 가봐. 면접 잘 보고.”
그는 슬그머니 나에 대한 호칭을 박 전무로 또 한 번 바꿔놓았다. 실업과 취업을 오가는 내 처지를 암시하는 의도적인 수사일까? 뿐만 아니라 문자로 수신된 지도까지 보내주었다. 급작스런 상황의 전개에 난 어찌된 영문인지 어리둥절해했다. 분명한 건 내가 선택의 굴레에 빠졌다는 점이었다. 냉동상태의 과거도 지금 이후의 미래도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면접 날짜를 조정할 수는 없을까? 숙희와의 약속을 미룰 수는 없을까? 막연히 그런 질문만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남은 시간도 펼쳐진 상황도 결코 내 편이 아니었다.
“뭐해 안 가고. 늦겠어. 나도 점심시간 끝났으니 들어가야지. 자 그럼, 면접 후에 연락 줘.”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총총히 사라졌다. 난 그와 반대방향으로 무턱대고 걷기 시작했다. 자야지 할수록 불면의 밤이 깊어지듯 생각할수록 헤어날 길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참을 걸어온 것 같았다. 한 시 반이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후회는 남는 법, 마음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문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가득 채워진 글자들을 다시 한 번 읽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 후 단호하게 송신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핸드폰의 전원을 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