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줘서 고마워.

힘내라 생명(生命)이여.

by 인성미남

살아줘서 고마워.


이 한마디를 내뱉고 세상이 끝난 것처럼 흐느꼈다.

죽은 줄만 알았던 나의 방울토마토 씨앗이 비로소 싹이 돋았다.

그 순간 작은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은채 나는 울고 있었다.

살아줘서 고마워. 미안해 정말 미안해 라는 말을 쏟아지는 눈물과 함께 연신 되뇌었다.


식물이나 꽃에 조금도 관심도 없던 나는 크게 마음을 다치고 심한 마음 앓이를 하고 난 뒤부터

생명(生命)이라고 느껴지는 식물들을 하나둘씩 사게 되었고 생기(生氣)가 소멸된 나는 필요한 생기를 그 식물들에게서 조금씩 되찾고 있었다. 마치 상처 입고 쓰러진 나를 안쓰럽게 여겨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법을 식물들에게서부터 배우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칫 물을 많이 줘서 썩진 않을까?

햇볕을 너무 못 쬐서 시들진 않을까?

어린아이 돌보듯 난 그렇게 나의 반려 식물들에게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 또 주었다.

관심과 사랑은 생명(生命)의 근원이다. 대견하고 고맙게도 나의 반려식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명의 기운을 내뿜으며 잘 자라주었다.

화원에서 씨앗을 심고 잘 키운 식물들을 사서 나의 공간에 두는 것도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관심이 가고 사랑을 느끼게 된 순간부터는 직접 씨앗을 심고 새싹을 돋게 하여 진정한 나의 반려 식물로 키우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수리 오 형제(어린 시절 참 좋아한 애니메이션) 같은 나의 반려식물오 형제를 키우기로 마음먹었고 일주일 이면 새싹이 돋아 난다는 말을 믿고 조심조심 물을 주고 햇볕을 쬐어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오 형제 모두가 나의 즐겁고 행복한 기다림에 응답을 해주진 않았다. 가장 먼저 골랐던 방울토마토 씨앗과 바질 씨앗은 소식이 없었고 강낭콩과 해바라기 그리고 봉선화는 정확하게 일주일이 되자 새싹으로 자라나

내게 인사를 했다. 발아를 하지 못한 방울토마토와 바질 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더 기다려 보자. 곧 싹을 틔우고 내게 반가운 인사를 할 거야.

하지만 잘 자라는 녀석들과 달리 도무지 소식이 없는 애달픈 방울토마토와 바질에게 안부를 물어보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기다림과 기대에서 포기와 체념으로 마음을 바꾸게 되고 말았다. 잘 자라고 하루가 다르게 생명(生命)의 기운을 선사하는 녀석들 에게 온통 마음을 뺏기고 나니 소식 없는 안타까운 방울토마토와 바질에게

사망선고를 내리고 귀찮은 듯 햇빛도 들지 않는 구석에 물도 한 방울 주지 않은 채언제 버려야지 하는 생각만을 볼 때마다 했다. 숨 쉬고 있고 살아있음에도 버려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일지도 모른다. 죽음은 어떤 식이든 애도하고 기억하려 하지만, 버려지고 잊으려 한다는 것은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의도적으로 기억하려 하지 않으려 하는 못된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를 알아보고 나의 능력을 필요로 한 회사가 있었다.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 뜨거운 열정의 불꽃을 피울 수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너무나 간절히 살고 싶어 졌던 한 달간의 시간. 세상은 원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기도 한다. 나의 가치와 나의 능력을 알아본 것이 아닌 그저 오랜 경험의 숙련자를 회사의 부품처럼 쓰고 싶었던 회사의 실체를 알게 된 순간 나는 버려졌다. 그리고 잊혔다.

이제 곧 싹을 틔우고 햇볕을 쬐고 가치 있는 성공의 열매를 맺을 튼튼한 뿌리와 줄기를 가질 나를 너무도 빨리 포기하고 구석에 처박히게 버렸다. 외로웠고 슬펐으며,

물기가 말라 버린 흙에 갇힌 씨앗처럼 고통스러웠다. 아무런 가치가 없는 인간이 될 바에 죽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가치 없는 삶을 사는 것은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

돈이 없는 삶을 살 수는 있어도 가치가 없는 삶을 살 자신은 내게 없다. 왜 이렇게 사는 걸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위태로운 외줄 타기를 한다.

흔들리는 외줄에 올라서서 때로는 흔들릴 지라도 중심을 잡으려 애를 쓰고 버티고 살아온 나였다.

나의 인생의 외줄 타기는 무려 절반을 건너온 나에게 야속하게도 최선을 다해 위태로운 외줄을 흔든다.

이번에는 기필코 떨어뜨리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흔들어 된다.

흔들리는 외줄은 흔들리는 것이 떨어져야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다.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내게. 이제 그만 버티라는 듯이 흔들고 또 흔들며 떨어지라고 한다.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가고 정신은 점점 흐려져간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온 나의 공간 속에 작은 기적이 이루어졌다.

구석에 처박혀 잊힌 방울토마토가 너무나도 작은 모습의 새싹으로 내게 인사를 건넨다.

저 살아 있어요! 날 버리지 마세요! 날 잊지 마세요! 저에게도 물을 주고 햇빛을 보여주세요!

눈물이 흐른다. 너무 미안해서 너무 고마워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살아줘서 고마워. 버티고 살아줘서 너무 고마워. 새로운 희망과 기대는 아직 도

물기 하나 없는 말라버린 흙속에 갇힌 바질에게서 생겨난다. 기다릴게. 힘내 포기하지 마. 조금만 더 힘을 내. 바질 너도 방울토마토처럼 살 수 있어. 더디고 힘들겠지만 이겨내는 거야.

내가 너를 기다릴게. 버리지 않을게. 다시 나와 함께 따스한 햇볕 속으로 가자.

그리고 보란 듯이 튼튼한 싹을 틔우자.


살아줘서 고마워.

다시 살게 해 주어서 고마워.

내 삶의 위태로운 외줄 타기는 계속될 것이다. 더 많이 흔들릴 것이며 더 많이 버텨야 할지도 모른다.

흔들림 속에서도 잘 살아온 내게 생명의 온기를 전해줄 작은 생명을 기다린다.

힘내라 생명(生明) 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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