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 내도 안다

조상님들이 굽어 살피신다

by 인성미남

'삶은 죽음에 의하여 완성된다'

-B. 브라우닝-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명절이면 꼭 아버지의 고향인 창녕에 가시는걸 너무나 귀찮아하고

가기 싫어했다. 특히 설날명절에 작은 산이지만 산 꼭대기에 올라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아가며 아버지를 따라 돗자리를 들고 벌벌 떨며 족히 열 번은 절을 하고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반복적으로 들어야 하는 게 너무나 싫었다.


" 여가 할아버지 산소 고 그 옆에가 할머니 산소데이"

"그리고 저 위가 증조할아버지 산소고 그 옆이 증조할머니 산소데이"

"그다음 위가 고조 할아저지 산소고 그 옆이 고조할머니 산소데이"


어린 마음에 기억도 나지 않는 할아버지 와 족보에 만 나와 계신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의 산소는 말 그대로 그저 무덤이었다. 매년 매번 추운 겨울에 벌벌 떨며 마음속으로 인사를 드리는 일종의 연중행사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 인마야! 절을 할 때는 마음속으로 "할아버지 올해는 모든 일이 잘되게 해 주세요 "라고 비는 기다. 알긋나!"

"안다 내도 안다 아부지"


멀 알겠나. 어린 마음이 무엇을 안다는 말인지

그저 빨리 그 행사를 끝내고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가 듣고 싶어 하는 대답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어린 마음이 조상의 은덕과 조상이 돌보 신다는 그 의미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게 몇 해가 지나 그 어린 마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청년이 되었을 때도

아버지가 신앙처럼 품어온 조상의 대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늘 힘들게 사셨고 정작 눈에 보이는 가족에 대한 사랑은 너무나 인색하셨는데

신앙 같은 조상에 대한 마음은 원망이 들 정도로 강하고 절대적이었다.

돈이 없어도 꼬박꼬박 명절땐 양손 가득히 선물을 사들고 고향 친척분들을 찾아가시고

벌초를 할 때도 단 한 번도 남의 손에 벌초를 맡기신 적이 없었다.

돈이 없어서 가정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힘이 들었는데도 아버지의 신앙심은 단 한 번도

약해지거나 버리지 않으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 모습들이 너무나 역설적으로 보이고 가식적으로 보였다.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는데 , 아버지가 그렇게 간절하고 절실하게 모시는

조상님 들은 왜 단 한 번도 도움을 주지 않으시는지

꿈에서 로또 번호 라도 좀 알려 주시지 않느냐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난 죽으면 절대로 무덤 같은 건 만들지 않을 거야"

"그냥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화장해서 강에다 뿌리든지 바람에 날리든지

편하게 하라고 할 거야."


그렇게 세상에 퍼부어야 했던 원망을 난 아버지의 고향 창녕 선산(先山)에

퍼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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