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 내 자리다

귀휴의 종착지

by 인성미남

"삶은 죽음에서 비롯된다.

보리가 싹트기 위해서는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간디-





소박하지만 잘 끓여낸 육개장과 밥 한 공기 그리고 소주 한 병을 앞에 두시고

고향 친구분 들과 밤새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시며 간간이 들리는 어린 시절

추억들을 회상하는 상갓집의 밤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잠깐 잠이 들었나 보다. 마을 어디선가 들려오는 첫 닭 우는 소리에

부스스 잠에서 깨어 주위를 살폈다. 아버지는 어디에 계신 거지?

아버지는 어디 계신지 보이지 않으셨다.


" 아주머니 저희 아버지 혹시 어디 가셨는지 아세요?"

" 아주바님 산소에 댕기 온다고 친구분 들과 같이 나갔으예"


난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아버지가 계신 마을 선산(先山)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창녕의 이른 아침은 꽤나 추웠다.

차를 몰고 족히 10분은 가야 할 거리인데 아버지는 친구분들과 어떻게 걸어가셨는지

걱정이 앞섰다. 선산(先山) 입구를 지나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자

불빛과 이른 아침에 찬공기에 묻혀 들리는 어르신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 여가 행님 자리고 저가 내 자리 아입니까"

" 아이다 여가 내자리고 저가 니 자리지"


아버지는 묘(墓) 자리를 보고 계셨다. 무거운 말투로 들려야 했던 아버지와 친척 어르신의

말씀이 어찌도 이렇게 담담하게 편안하게 들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삶은 밝은 것이고 죽음은 어두울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아버지는 죽음을 어둡게 바라보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밝고 편안하고 어떠한 후회도 미련도 존재하지 않는 애달프고 힘들었던 아버지의 일생에 대한 귀휴(歸休)의 종착지(終着地)로 바라보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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