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 의 청춘들

포근했던 지하철 2호선

by 인성미남

지수와 나는 숙소라는 곳으로 가기 위해 신도림 역에서 내려 10분 정도 함께 걸었다. 여전히 낯을 가리는 까까머리 숫기 없는 낭랑 18세 녀석은 가방끈을 어깨가 아플 정도로 세차게 댕겨 메고는 애꿎은 땅만 보며 걸었다.


" 이름이 머야? 난 아까 사장님 있을 때 말해준 거 같은데"

" 나.. 는. 원규라고 해"

" 아무튼 반갑다 얘~ 나이는 몇 살이야? "

" 어. . 열여덟.."

" 나랑 같구나 열여덟" " 잘 지내보자. 원규야~~"

"응.."


나는 도무지 즐겁지가 않았다. 지수는 머가 그리 즐거운지 지하철에서부터 숙소로 오는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빨간 허리띠에 차고는 유난히 곱실거리는 파마머리에 머리띠 대신일지도 모르는 작은 헤드폰을 쓰고 있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굳이 화장을 하지 않았어도 뽀얀 피부가 예뻐서 참 이뻤을 텐데,

진한 화장과 빨간 립스틱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인형의 모습이었다. 일부러 표정을 숨기고 어색한 웃음을 항상 짓고 있는 어린 광대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어린 광대 같은 이상한 화장을 한 여자아이의 손에 이끌려 걷고 있는 남자아이의 발걸음은 도무지 즐거울 수가 없었다.

지수가 헤드폰을 벗어 들고는 이야기했다.


"짜잔 ~~ 여기가 우리 숙소야"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계단을 대 여섯 개 올라서면 보이는 파란 대문이 보였다.

제법 커 보이는 집이었고 담장이 꽤 높아 보이는 집이었다.


'끼익 ~ 철컹'


대문을 들어서자 넓은 마당이 보이고 2층으로 된 하얀색 페인트와 빨간 벽돌이 잘 어울리는

집이 보였다.


"1층은 사장님 이 사시는 곳이고 2층은 세 들어 사시는 분이 사는 곳이야"

"우리들은 반지하에 여러 개 방으로 되어 있는 곳에 살아"

'반지하'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려왔다.

지수의 안내를 따라 2층집 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또 하나의 출입구가 보였다.

지수의 말처럼 반쯤 땅밑으로 꺼져 보이는 출입구가 있었고 그 출입구를 들어서자

좌우로 작은 방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케케 한 냄새와 눅눅한 기분이 드는 반지하 방들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 야간조 애들이 다 출근해서 아무도 없네"

" 주간조 애들이 곧 퇴근하면 같이 밥 먹자. 원규야 배 많이 고프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먹게 되면 체할 것만 같았다. 무섭기도 했다.

백열전구 빛에 흔들리는 나의 그림자는 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30분쯤 지나자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주간조 사람들의 발소리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수야 밥 먹자~~" " 응 오빠 ~ 오늘은 사장님이 신입사원 들어왔다고 삼겹살 파티 하래"

" 오 ~ 예 삼겹살. 신입사원이 누구야 어딨어 얼굴이나 보자"

" 원규야 ~ 이리 와봐 인사해야지. 태훈 오빠랑 다른 애들과 인사해 "


오빠? 지수의 친오빠는 아닌 것 같은데. 같이 일하는 오빠인 건가?

지수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한눈에 봐도 엄청 덩치가 큰 아닌 온몸이 근육으로 덮여있는 듯한 야수 같아 보였다. 잘생긴 야수 같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헤비메탈 가수처럼 긴 머리를 연신 흔들어 대는 한마디로 상 남자 같은 사람이었다.


" 오~~ 반가워 신입사원 ~ 악수나 하자 "


악수를 하기 위해 잡은 손에서 엄청난 악력이 느껴졌다. 일부러 세게 잡은 건지 아니면 그냥 잡은 악수가 세게 느껴진 건지 순간 느낀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 아.. 네 . 잘 부탁드립니다."

" 다른 사람들 하고도 인사하고 다들 좋은 사람들이니 잘 지내보자"

" 네..."

" 대구에서 왔다고 하던데 사투리는 전혀 안 쓰네? 남자가 왜 이리 숫기가 없어. 크게 인사해 봐 "


중학교 1학년까지 서울에서 살았던 나는 서울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긴장하거나 낯선 곳에서는 사투리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극도로 긴장하고 있으니 사투리는 쓸 수가 없었다.

잘생긴 야수 같은 사람은 연신 호탕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자신 있게 남자답게 인사하라고 부추겼다. 그럴수록 나는 더 작아지는 듯했다. 어깨동무를 해온 잘생긴 야수의 팔 근육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주간조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숫기 없이 마무리하고 지수와 또 다른 여자아이들 두 명이 작은 부엌에서 열심히 저녁 준비를 하는 걸 지켜봤다. 능숙하게 분담이 되어 있는 듯한 저녁상 차림이 금방 차려졌다. 반지하 방 중에 그나마 조금 커 보이는 방에 옹기종기 모여 지수가 연탄불에 프라이팬으로 잘 구워낸 삼겹살 파티가 시작됐다.

언제 준비했는지 막걸리도 함께였다.


" 오빠 사장님 술 먹는 거 아시면 혼나 난 몰라"

" 괜찮아 ~ 내가 이야기할게. 조금만 마시면 되지 "

" 원규야 ~ 너도 술 한잔 해. 설마 못 마시는 건 아니지?"


순간 지수가 내 얼굴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남자다운 대답을 듣고 싶다는 표정으로 빤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치기가 생겼다.


"네 주세요. 많이 마셔봤어요 막걸리쯤이야"

"오~ 좋아 까까머리 신입사원 원샷이야~~"

"오빠~태훈오빠 안돼~ 잘 못 마시면 어쩌려고"

지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커다란 대접에 담긴 막걸리를 벌컥벌컥 다 마셔냈다.

"한잔 더 주세요~~"

"오 까까머리 ~ 맘에 들었어. 순딩하게 생겨서 재미없을 줄 알았는데 좋아 ~ 한잔 더 해"

야수 같은 잘생긴 아니 그냥 야수 같이 생긴 태훈인지 먼지 이름도 별로인 덩치만 큰 녀석의

술잔을 연거푸 받아내고는 기억이 점점 사라졌다.



모처럼 꿈을 꾸었다.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유원지로 놀러 갔던 어느 해 여름이 꿈속에 다시 나타나 함께 웃으며 맛있는 삼겹살을 먹었던 그때가 꿈속에서 다시 살아 움직였다.

큰 돌을 쌓아서 만든 아궁이 같은 곳에 넓적하고 반듯한 돌 위에 삼겹살이 올려져 있었다.

엄마는 삼겹살을 단 한조각도 태우시지 않고 맛나게 구워 내셨고 나와 동생은 구워지기 바쁘게 우걱우걱 신 김치와 함께 잘도 먹어댔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삼겹살. 다시는 그런 삼겹살은 먹어보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가 말도 없이 집을 나가시고 엄마와 처음 보내게 된 그해 여름 우리 세 식구는 처음으로 가족 여행을 갔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계곡으로 버스를 타고 간 가족 여행이었지만 그날 함께 먹었던 삼겹살은 최고의 만찬이었다.

깨어나고 싶지 않은 소중한 나의 꿈.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좋았을 나의 소중한 꿈.

식곤증이 밀려왔던 것일까. 계곡에 시원한 바람과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한 조각이 포근해서 잠이 든 것일까. 단잠을 자고 있는 날 세차게 흔들어 깨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 원규야~~ 원규야~ 일어나 봐"


엄마. 엄마. 엄마. 잠꼬대 같은 외침 후에 난 눈을 떴다.



지수가 바라보고 있었다. 도무지 햇빛이라곤 들어오지 않을 반지하 방에 환한 햇빛 같은 지수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사장님이 너 깨워서 공장으로 오라고 했어. 어서 일어나 교대시간 늦겠다."

바보 같은 치기로 서울에서 첫날밤을 막걸리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 밤으로 만들고는 서둘러 고양이 같은 세수를 하고 지수를 따라 동대문 자수공장으로 향했다.

엄마 품에서 벗어나 본 적 없는 까까머리 18세 바보 녀석은 그렇게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 어떤 힘든 일이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채로 그렇게 첫 출근을 하고 있었다. 꿈속에 보였던 엄마의 포근함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지하철 2호선은 그렇게 어리숙하고 약한 나를 엄마 대신 포근하게 맞아주었다.





"이번 내리실 역은 신도림 신도림 역입니다".

익숙한 멘트에

무거운 고개를 들어 두리번두리번

실눈을 뜨고 내뱉듯 안도한다.

아직이다.

모두들 바삐 타고 내리는 아침

힘들고 고단한 청춘의

지하철 2호선은 하루의 쉼터였을 테다.

밤새 자수공장의 기계와 씨름하던

피곤한 일상을 못내 안쓰러워하듯

마치 요람인 양 멈추지 않고

돌고 돌고 돌아주는

포근한 엄마품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지하철 2호선

잠든 나의 애달픈 청춘이여

한 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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