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뜨는 달은 외롭지 않다
밤새 별빛에 물들어 갈테니까
"한사람의 진실한 친구는 천명의 적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
-에센바흐-
상갓집에는 이틀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 밤이 지나면 고인의 시신은 발인을 위해 장지로 가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밤이 깊어가도록 곤한 잠을 청하고 계셨고 별채 툇마루 너머로 어디서 들려오는지도 모르는 개들의 짓는 소리와 상갓집 문상객들의 대화가 섞여 고즈넉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잠시 산책이라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버지 이부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 드리고는 외투를 챙겨 상갓집 문밖을 나섰다.
숨을 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을 들락거렸다. 차갑지만 깨끗한 느낌의 시원함이 추위와는 다른 감정으로 온몸을 감쌌다. 마을 길을 따라 오래된 나무 한그루가 있는 쉼터를 지나니
지금은 폐교가 된 초등학교 운동장이 펼쳐졌다.
아버지를 따라 명절이면 집안 어르신들에게 명절 인사를 드리고는 곧잘 사촌동생과 함께 운동장에서 함께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인기척도 없고 불빛이라곤 하나 없는 운동장에 제법 밝은 달빛이 서려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곤 불을 붙였다.
"후우~~"
하루종일 피우지 않았던 담배였던 탓에 약간의 어지러움과 함께 달빛에 흩날리는 듯 외줄기 담배 연기가 하늘을 향해 퍼져갔다.
" 임마야~ 니 머하노 빨리 피고 가자"
" 기다리 봐라 니는 망좀 보고 있거라"
" 쌤 오면 우얄라고 이카노 빨리 피고 가자"
" 절대 안온다. 내가 한두번 피보나 걱정 마라"
야간 자율학습이 한창이던 저녁시간 나와 내 친구는 대범 하게도 학교 담장을 넘어
길 건너 중국집에 짬뽕밥을 시켜 먹고는 상가 화장실 구석에 숨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친구와 나는 소위 말하는 비행 청소년도 아니었고 모범생도 아닌 어정쩡한 부류의 나름 불의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열혈 고등학생이었다.
성적은 중간에서 적당히 , 노는 것도 적당히, 싸움도 맞고 다니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실력(?)을 장착한 터라 학교 선생님의 전방위 레이다에 걸리지 않고 제법 어른 흉내를 내면서 놀았던 거 같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다. 여유만만하게 즐기던 비행은 결국 들키고 말았다.
" 거 쥐새끼 같이 숨어서 연기 모락모락 내뿜고 있는 쥐새끼 둘 이리 나온나"
" . . . . . .."
" 다 알고 왔데이. 지금 나오면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는 안 할 테니까 퍼뜩 자수해라"
" 열까지 센다. 하나. 둘. 셋. 넷.. "
자수하여 광명 찾는 법뿐이었다. 도망갈 곳도 없었다. 화장실 문 앞에서 저승사자처럼 카운트다운 을 하시는 선생님을 속이고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었다.
쭈뼛거리며 차마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선생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차렷 자세로 섰다.
"이 눔의 자식들 다른 아들은 다 공부한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데, 담배나 피우고 있고"
"인생 포기했나? 으이 느그 부모님들이 쎄빠지게 돈 벌어가 수업료 주고 밥해먹이고 옷사입히고 허리가 휠정도로 일하시는데 이기 머 하는 짓이고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놈들이 담배가 머꼬"
선생님의 호된 꾸중을 듣고 있는 와중에도 삐뚤어진 나는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해주신 게 없어요. 선생님. 저는 학교 다니고 싶지도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 사춘기의 이유 없는 반항이 아닌 사는 게 왜 이리 구질구질하고 힘든 것인지,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당돌하고 원망에 가득 찬 목소리로 자꾸만 묻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 오늘은 처음이니 선생님 이 못 본 척할 거지만 다음에도 똑같이 이런 식으로 선생님을 실망시키면 그때는 정말로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할 거니까 그렇게 알아. 내일 까지 반성문 써서 가지고 오고"
나에게 학교라는 세상은 조금도 희망적이지 않은 그저 거쳐 가야만 하는 관문처럼 느껴졌다. 같은 반 친구들 만이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마치 자기의 일처럼 챙기고 애썼다. 수업시간에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는 늘 그림만 그렸다.
영화를 좋아했던 탓에 영화 포스터를 코팅한듯한 친구들의 책받침은 나의 좋은 그림 재료가 되었다. 연필 한 자루면 행복했고 애 써 똑같이 그린 영화포스터를 친구들이 놀라워하며,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줄 때면 마치 연예인이 된듯한 우쭐함에 싱글 벙글이 었다.
그런 무의미한 시간을 견디게 해 준 그림 그리기가 훗날 나의 직업에 밑바탕이 되어줄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학교를 마치고 작은 아버지 댁에 가기 싫었던 나는 거의 한 달가량을 친구들 집에서 먹고 자고 했었다. 다행히 친구 부모님들께서 다들 좋으셔서 친구집에서 잘 때마다 맛난 음식과 도시락까지 싸주시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찌 좋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불편하셨을 테고
친구들에게 야단도 치셨을 거 같다. 그때의 나는 그런 속 깊은 생각까지 할 수 있었던 나이도 아니었고 사정도 되지 않았으니 넉살 좋게 오늘은 이 친구집 내일은 저 친구집에서 신세 아닌 신세를 지고 있었다.
그 좋은 친구들 중 함께 어설픈 비행청소년 흉내를 내며 담배 피우다 걸려 선생님께 한참을 혼이 나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 왔다.
" 저기 그기 말이다"
" 와 무슨 할 말 있나? 머꼬"
" 그게 있다 아이가"
" 문디 자슥 먼데 이리 뜸을 들이노 와 니 또 담배 피다 쌤한테 걸렸나?"
" 아이다 그게 아이고 .."
친구는 쉽게 하고픈 말을 꺼내질 못했다. 나는 답답한 나머지 거듭 닦달을 했다.
" 빨리 말 몬 하나"
친구는 결심을 한 듯 조용히 말했다.
"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알았나? 사실은 친구들 하고 쌤 하고 조금씩 모았다. 받아라"
불쑥 그렇게 이야기를 던지듯 말하곤 친구는 내 호주머니 속으로 무언가를 쑥 밀어 넣었다.
"먼데 이기 먼데"
편지봉투에 돈이 담겨 있었다.
친구는 내가 여름 방학이 끝나면 학교를 휴학하고 돈을 벌려 가야겠다고 했던 말을 장난으로 여겼다.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왜 내가 돈을 벌러 가야 하는지 왜 학교를 휴학해야 하는지에 대해 흥분하며 물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나서 휴학을 하려면 그동안 내지 못한 수업료와 우유 급식비를 내야 하는데, 걱정이라고 말 끝을 흐렸던 그때를 기억하고
나도 모르게 선생님과 같은 반 친구들에게 내 사정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눈물이 핑 돌았다. 호주머니 속에 돈 봉투를 꽉 움켜쥐고는 한참을 울었다.
친구는 말없이 어깨를 어루만지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존심이고 머고 아무것도 내세울 게 없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던 기억과 으스러지듯 움켜쥐었던 돈 봉투의 따뜻함만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의 뜨거운 응원을 품고 환하게 떠올랐던 운동장의 달빛을 받으며 교문을 나섰다. 슬프지도 원망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반드시 돈을 모아 다시 학교로 돌아와서 떳떳하게 학교 를 다니고 싶었다.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다 견딜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약속을 했다.
오늘 같이 제법 밝은 달이 떠오른 그날
나는 세상과 맞서기 위한 작지만 큰 첫발을 내디뎠다.
혼자 뜨는 달은 외롭지 않다.
밤새 별빛에 물들어 갈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