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태어나고 죽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찌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본인의 의지로 할 수 없는 일이고 죽는다는 것 역시 본인의 힘으로 결정 지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물론 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인생의 대한 부적절한 마감도 있으나,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될 가장 못난 짓이고 독한 짓이기에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새삼스럽게 삶과 죽음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오늘이 아버지의 친구분 의 발인 하는 날이었기에 괜히 센티멘탈 해져서는
생각의 꼬리를 늘어놓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좋은 죽음과 나쁜 죽음은 있을까?
좋은 죽음이라 함은 지금 발인을 앞두고 있는 아버지의 친구분의 죽음이 아닐까 한다.
창녕이라는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그곳이 삶의 터전이 되어 농사를 지으며 다소 힘든 일상을 보내 셨을지라도 아버지의 친구분은 가정을 지키셨고 자녀들을 번성케 할 기반을 일구셨던 것 같다. 그러하니 평소에 쌓아온 인덕과 좋은 평판으로 맺어진 수많은 인연들의 문상객들은 고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했고 더 좋은 곳으로 가시길 손 모아 기원하고 축복하셨던 것이다. 고통스럽지 않게 깊은 잠을 자듯 그렇게 생을 마감하신 아버지의 친구분의 죽음이 나의 아버지의 죽음으로 귀결되어진다면 과연 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좋은 죽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아버지는 필요 이상으로 건강관리에 힘쓰고 계셨다. 대장암 판정을 받으시고 입원과 동시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가셨고 다행히 경과가 좋아 항암치료를 받으시고 지금은 완쾌되어 나름 건강한 삶을 살고 계신다. 아침마다 꽤 먼 거리를 매일 같이 걷고 운동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했다.
" 아버지 너무 무리해서 걷지 말고 적당히 운동삼아 걸으세요. 그러다가 더 아프시면 어쩌시려고 그러세요?"
"개안타. 그라고 내는 느그들 한테 짐은 되기 싫다. 아프서 누워있음 느그들 우짤라고"
"느그들 한테 해준것도 없고 물려준것도 없는데 아프기 까지 해서 짐짝 신세 되기는 싫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버지도 참"
"아프시면 병원 가시면 되고 치료받으시면 되죠. 아무튼 너무 무리하게 운동하지 마세요"
나의 지인들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빌어 보면 부모님 두 분 모두 건강하게 살아 계신 다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부러움을 샀던 것 같다. 그래 부보님이 몹시 힘든 지병이 있으셔서 지금 투병생활을 하고 있더라면 자식 된 도리로 어찌 그냥 보고만 있겠는가?
그래서 부모가 병이 깊으면 자식이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러하니 '긴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의미를 모아보면 나는 부모님이 다 살아 계시니 얼마나 다행이고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옛날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한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들은 한 부모를 못 거느린다.'
부모는 자식이 많아도 잘 키우지만 자식들은 한 부모도 잘 모시지 못한다는 말이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이지 않은가.
아버지는 아침부터 말씀이 없으셨다.
친구분의 무덤으로 발길을 옮기시는 내내 말씀이 없으셨다.
조용히 친구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마을 어르신 들게 인사를 드리고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가야겠다고 말씀드리자
마을 어르신 들께서 고생 많았다고 말씀들을 하셨다.
" 아부지 모시고 조심히 가거라"
" 네 어르신 "
" 아부지 건강 잘 챙겨드리고 잘 지내고"
"네 어르신"
너무나 추워서 더 맑았던 창녕의 겨울 풍경은 미끄러 지듯이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대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간간이 들려오는 마른기침 만이 무거운 차 안 공기를 가르고 있었고.
어쩌면 정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아버지의 고향 방문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의 침묵으로 가득하기만 했다.
아버지는 며칠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시고 누워 계셨다.
어머니가 끓이시는 미음으로 만 식사를 하시고 며칠 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무게 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아들로서 살고 있는 나는 아들의 아버지로서의 삶도 함께 하고 있다.
아버지의 아들로 살며 아들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 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나이가 들어 철이 드는 것일까? 철이 들어 나이를 먹는 것일까?
나의 아버지를 원망했던 모습에서 이해하려는 마음을 처음으로 갖게 된 아버지의 고향방문.
'삶과 죽음' '이해와 용서' 그리고 사랑에 대해 또다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