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방주에 오를 당신에게
지난 1부 '총성 없는 전쟁' 편에서, 우리는 AI 기술 패권을 둘러싼 국가들의 거대한 현실을 마주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개인은 그저 무력한 존재일 뿐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 해답의 실마리는 의외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있습니다. 최근 AI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해외 파트너에게 메일을 보내려다, ‘Sincerely’라는 기계적인 끝인사 대신 서툴지만 제 마음을 담은 문장을 직접 작성했던 경험, AI 이미지 생성 툴이 ‘한글’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해 느꼈던 씁쓸함. 이 작은 경험들은 우리에게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바로 AI 시대의 주권이 국가의 영토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 속에서도 지켜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AI가 제공하는 편리함을 누릴 권리가 있지만, 동시에 그 기술의 주체로서 행사해야 할 권리도 있습니다. 첫째는 ‘질문할 권리’입니다. AI가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고, 왜 이런 편향된 결과를 내놓았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합니다. 둘째는 ‘요구할 권리’입니다. AI가 우리의 역사나 문화를 왜곡했을 때, 이를 지적하고 플랫폼 기업에 수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시민에게 요구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¹이며, 기술의 편리함에 잠식당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바로 설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입니다.
권리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릅니다. AI 시대 시민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스스로를 단순한 ‘기술 소비자’가 아닌 ‘문화 데이터 생산자’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남기는 온라인 서점의 서평 한 줄, 맛집에 대한 진심 어린 리뷰, 아이의 성장 과정을 기록한 블로그 포스팅 하나하나가 모두 '한국어 AI'를 더 똑똑하고, 더 지혜롭게 만드는 귀중한 학습 데이터가 됩니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언어와 삶의 기록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데이터 방주'를 함께 채워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소중한 우리말과 글의 데이터를 더 많이 생성하고 공유하는 것, 그것이 바로 AI 시대에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가장 적극적인 실천이자 의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4대 1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 우리는 거대한 충격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을 코앞에 둔 지금, 그 두려움은 ‘데이터 팬데믹’이라 불릴 만한 거대한 현실이 되어 우리를 덮치고 있습니다. 챗GPT, 제미나이, 딥식과 같은 글로벌 AI 선두주자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지만, 우리 문화의 정수를 담을 '데이터 방주'는 이제 막 돛을 올리려는 참입니다.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 역사에 새겨진 DNA를 돌아보면, 좌절하기에는 이릅니다. 우리는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숱한 침략을 견뎌내며 끝내 '우리'의 시간을 쟁취해 온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기에, 정부의 지원과 국민의 응원 속에서 묵묵히 '한국어 AI'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네이버 하정우 AI 이노베이션 센터장과 같은 전문가들의 행보에 시선이 쏠리는 것입니다.
AI 기술이 21세기의 '총성 없는 국방'이라면, 데이터 주권은 그 국방의 근간을 이루는 영토입니다. 하루빨리 완전한 '데이터 주권'을 확립하고, 우리의 5000년 역사와 K-컬처의 독창성을 무기 삼아 세계를 이끄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서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3부에서 계속)
용어해설 (Glossary)
¹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정보를 찾고, 평가하고, 공유하며, 새롭게 생성할 수 있는 종합적인 능력을 의미합니다. 특히 AI 시대에는 기술이 제공하는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넘어, 그 정보의 배경과 편향성을 읽어내는 비판적 사고 역량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됩니다.